기사 (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80년대 일본은 그야말로 ‘리즈시절’이었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2010년 작고)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조차 ‘일본의 기적’이라는 말로 칭송했고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통해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한 배경을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라 특유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모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39;발전국가&#39;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2)/ 국민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2)/ 국민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 <미국 LA=이훈구 작가> 1970년대의 일본영화사를 정리하면서 언급할 만한 두 명의 여배우가 있어 2회에 걸쳐 차례로 소개할 것이다. 첫 번째 여배우는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이고 두 번째 여배우는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이다. 사실 요시나가 사유리는 1960년대에도 언급된 바 있는데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현역으로 뛰며 활약하는 국민 여배우다. 다만 1970년대는 조금 활동이 뜸했지만 어디까지나 1960년대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를 넘어서기 위한 과정으로 읽혀진다. 다른 한 사람 야마구치 모모에의 경우에는 그녀를 빼고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9)/ 아니메의 우연과 행운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9)/ 아니메의 우연과 행운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17년부터 100년 동안 일본에서 제작하고 발표된 ‘아니메’(anime, アニメ, 애니메이션, 이하 아니메)의 작품 수는 무려 1만 1723개에 달한다. 아니메는 ‘애니메이션(アニメ―ション)’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저패니메이션’(혹은 재패니메이션, Japanimation)이라고도 한다. 만화영화(漫まん画)라는 말도 일본에서는 사라지는 추세이고 ‘아니메’(Anime)하면 전 세계가 알 정도로 유명하다. 심지어 1960-70년대를 살았던 지구촌 사람들이라면 그때의 추억을 기억해 낼 정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8)/ 닛카쓰의 청춘영화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8)/ 닛카쓰의 청춘영화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일본영화역사가의 입장에서 최근 한국 영화의 부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할수록 일본영화의 끈질긴 생존력이 부럽기만 하다. 사실 한국의 영화 제작사들 중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전통의 영화사는 ‘동아수출공사’(東亞輸出公司)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67년부터 2011년까지 총 85편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2천평 규모의 영상 제작 실내 스튜디오인 넥스트스튜디오 인천’을 개관하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순수 영화 제작사로서 100편의 필모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6)/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2) 글로벌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6)/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2)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 여배우들의 캐스팅은 전적으로 외모와 몸매 그리고 기본 노출과 성적 학대 장면의 동의 또한 기본적인 베드씬 등 여러 가지 수고가 따랐지만 차츰 장르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오히려 지원자가 늘어난다. 당시 세계사적으로 볼 때 체제경쟁이 심화 되어 있었던 시기에 서구권과 동구권의 ‘성애영화’ 경쟁도 한몫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고슬라비아는 포르노와 정치를 결합 시킨 작품을 만들어 칸 영화제에 출품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선두 주자는 두샨 마카바예프(Du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5)/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1)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5)/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1)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를 언급하면서 ‘4대 감독’에 대하여 다뤘다면 이번에는 여배우 열전(列傳)이다. 사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은 물론 서구의 포털 사이트에 로망 포르노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여배우들의 이름들이다. 가타기리 유코(片桐夕子), 오가와 세츠코(小川節子), 미야시타 준코(宮下順子), 이즈미 준(泉じゅん), 시라카와 가즈코(白川和子), 다니 나오미(谷ナオミ), 이사야마 히로코(伊佐山ひろ子), 가자마 마이코(風間舞子), 하야시 미키(林美樹), 다마 루미(珠瑠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3) ‘로망 포르노의 선구자’ 소네 주세이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3) ‘로망 포르노의 선구자’ 소네 주세이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닛카쓰(日活)의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 로맨틱 포르노)를 다룸에 있어 사실 가장 먼저 언급할 감독이 있다면 바로 ‘소네 주세이’(曽根中生)감독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를 좀 후반부에야 등장을 시켰다. 그 이유는 좀 더 자세한 자료들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로망 포르노의 선구자임에는 분명하지만 1988년 잠적을 감춘 이후 2011년 잠시 나타나고 이후 2014년 8월 26일 폐렴 때문에 오이타현 우스키시의 병원에서 76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의 행적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 일본영화경제학(61)/ 로망포르노 거장 구마시로 다쓰미 라이프& 일본영화경제학(61)/ 로망포르노 거장 구마시로 다쓰미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는 감독들에게 있어서 각자의 창의력을 발휘할 영역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다. 물론 이따금 대중 앞에 외설물을 상영했다는 혐의로 영화가 적발되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내려지면서 로망 포르노계에 뛰어든 감독들은 정기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이들은 처음 호기심과 표현의 자유, 일본 관객들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점차 일본 민중의 성(性)문화와 우키요에(浮世繪)의 전통, 비일상적인 성행위를 빗댄 정치문제 등을 다 일본영화경제학(60)/ 로망 포르노와 핑크 영화계 라이프& 일본영화경제학(60)/ 로망 포르노와 핑크 영화계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70년대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가 핑크필름(ピンク映画)을 생산하는 이른바 ‘핑크 영화계’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닛카쓰가 제작한 로망 포르노 영화들이 당시 그들만의 직영 극장 네트워크를 통해 배급되었고 차곡차곡 보관되면서 오늘날 DVD로 출시되고 재상영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영세했던 ‘핑크영화계’는 산업 생태계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절에도 에로덕션의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극장들은 존재했고 닛카쓰의 부족한 물량을 메워 준 것이 바로 핑크영화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