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80년대 일본은 그야말로 ‘리즈시절’이었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2010년 작고)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조차 ‘일본의 기적’이라는 말로 칭송했고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통해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한 배경을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라 특유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모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39;발전국가&#39;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들만의 스포츠가 있다? 글로벌 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들만의 스포츠가 있다?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흑인들의 운동신경은 매우 우월해 보인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 체전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두드러진다. 그런데 수영이나 펜싱, 양궁, 테니스, 체조, 하키 등의 경기 등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특히 동계 올림픽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란 더더욱 힘들다. 물론 어떤 분들은 자메이카 밥슬레이 선수단의 고군분부를 그렸던 영화 ‘쿨러닝’(Cool Runnings, 1994)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카리브 해안에서 눈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먹을 얼음도 생생 미국 리포트/ 이민자들 삶에 손내민 아카데미 글로벌 생생 미국 리포트/ 이민자들 삶에 손내민 아카데미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인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지난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있었던 ‘악동’ 윌 스미스의 난동을 상기시키면서 흥행을 예상하며 크리스 락에게 사회자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전해 올 만큼 이번 시상식은 ‘추문’을 남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는 평가다. 이를 의식한 듯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Jimmy Kimmel)은 시종일관 ‘안전’에 대해 강조했다. 89회, 90회에 이어 3번째로 MC를 맡게 재일교포 최양일 영화감독 별세 라이프& 재일교포 최양일 영화감독 별세 재일교포 최양일 영화감독이 방광암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교도 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최 감독은 11월 27일 오전 1시쯤 도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3세. 최 감독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 ‘피와 뼈’(2004) 등 재일동포 사회의 슬픔과 한을 그린 작품들로 평단의 주목받았던 실력파 감독이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피와 뼈’로 재일동포 한 그려최 감독은 1949년 나가노현의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를 다니다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일본 영화 일본 영화 경제학㊺/ 다이에이의 대작 노선과 몰락 라이프& 일본 영화 경제학㊺/ 다이에이의 대작 노선과 몰락 당시 일본의 영화사들 중 메이저 회사들은 모두 주식회사이면서 주식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었다. 그중 다이에이(大映)는 쇼치쿠(松竹)나 도호(東宝)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여러 가지 차별화의 길을 걸은 영화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나가타 마사이치(永田雅一) 사장 체제는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치명적인 약점들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다른 메이저 영화사들이 ‘정년 55세’를 고수(지금까지 전통)하고 있을 때 다이에이는 ‘정년 60세’를 관철 시켰다. 그는 한 마디로 독재자였다. 연고 인물이나 아들, 친인척을 채용하고 자신을 ‘카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㊳ / 황금기 감독열전(2)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㊳ / 황금기 감독열전(2) [‘서사’(敍事)의 장인 구로사와 아키라]“하필 구로사와가...”.이 말은 1950년 일본에서 흑백으로 제작된 범죄 미스테리 영화 ‘라쇼몽’(羅生門, Rashomon, 1950)이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의 유명한 탄식이다.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는 미조구치 겐지나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나루세 미키오(なるせみきお)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심지어 제작자가 “이건 영화가 아니다”고 일갈하며 시사회장을 떠난 일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㊲ / 황금기 감독열전(1)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㊲ / 황금기 감독열전(1) [‘여자의 일생’에 주목한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미국 LA=재팬올 미국대표> 전후 황금기를 다루면서 너무 배우들과 영화제작사에 집중된 이야기들을 이제는 감독으로 옮겨가 보겠다. 1950~60년대 일본 거장 감독들의 작품세계를 다루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중 주저 없이 가장 먼저 필자가 언급하는 감독은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이다. 다른 거장들도 많지만 미조구치 겐지를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당시에는 앞서가는 시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한 많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기본이고,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㉞/ 전후 황금기12(다이에이)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㉞/ 전후 황금기12(다이에이) 초대사장 기쿠치 간(菊池寬)의 다이에이<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일본 영화 역사상 최고의 해라고 불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국적으로 7,500여 개의 영화관이 있었고 관객수만 해도 11억 2,700만 명에 달했다. 연간 제작 편수는 평균 500-~600편에 이르렀으며 당시(1958년) 상영된 전체 영화 중 일본 영화가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자국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은 실로 대단했다. 이중 6대 메이저 회사 중에 다이에이(大映)는 초대 사장인 기쿠치 간(菊池寬)의 분위기가 전후에도 느껴지는 영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㉚/ 전후 황금기8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㉚/ 전후 황금기8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의 국제영화제 출품 러시일찍이 일본의 배우이자 도호(東宝)의 사장이었던 시미즈 마사오(清水将夫)는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흥행수입을 보면 곧 좋고 나쁜 영화를 구분해 낼 수 있다(Donald Rich의 말을 인용)”고 했다. 일본영화의 전후 황금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야망을 가진 감독들이 그들의 기량을 펼쳐 보이며 할리우드와 같은 시스템 구축에도 성공했다는 점이다.당시 영화는 사회적으로 감당할 역할이 있다고 믿었으며 당연히 흥행을 무시해서도 안 된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㉘/ 전후 황금기6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㉘/ 전후 황금기6 1950년 이후 영화 제작 편수 급격한 증가이 시기 일본영화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절정기를 이루게 된 배경을 짚어 보도록 하겠다. 메이저 영화사들이 체제를 정비하고 독립영화사들 역시 밑그림을 그리게 된 그 시기 아직 TV는경쟁력이 없었다. 전후 일본인들에게 영화보다 더 좋은 오락거리는 없었고 극장은 전쟁의 폐허와 패배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위로의 장소가 된다.그 결과로 1946년 불과 69편에 불과했던 제작 편수가 1950년에는 무려 215편으로, 1953년에는 302편으로 증가하였다. 1960년에는 무려 555편의 영화가 제작 칸 그랑프리 일본 여배우와 한국의 봉준호 글로벌 칸 그랑프리 일본 여배우와 한국의 봉준호 1954년 칸 그랑프리 ‘지옥문’의 여배우 사망#. 2주 전인 5월 12일, 일본에서 한 원로 여배우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쿄 마치코(京マチ子), 95세였다. 그녀는 1954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 7회 칸국제영화제의 ‘히로인’이었다. 당시 58세의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 감독이 ‘지옥문’(地獄門)이라는 작품으로 그랑프리(지금의 황금종려상)를 거머쥐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이가 바로 쿄 마치코다.1950년대 초, 일본영화는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성과를 올리던 시기였다.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합니다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합니다 1989년, 세계 영화업계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본 기업 소니가 ‘미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해 버린거다.메이지 유신 이전, 쇄국(鎖國)적이던 일본의 문을 강제로 연 ‘미국 흑선(黑船) 사건’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기업이 호황기 경제력을 포문 삼아, 미국 영화 산업의 거점을 함락시켜 버린 셈이다.소니의 콜롬비아 인수 2년 전인 1987년, 한국에도 충격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배우 강수연(임권택 감독 작품 ‘씨받이’)이 여우주연상을 거머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