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CEO 한줄 어록/ 다다미 위 '수영 연습'은 헛짓이다 경제&비즈 CEO 한줄 어록/ 다다미 위 '수영 연습'은 헛짓이다 ▶이름: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경력: 파나소닉(마쓰시타 전기) 창업자▶평가: ‘경영의 신’ 별칭▶태생: 오사카▶생몰연도: 1894~1989년속담 ‘다다미 위의 수영 연습’(畳の上の水練)일본엔 ‘다다미 위의 수영 연습’(畳の上の水練)이라는 속담이 있다. 다다미 위에서 수영 연습을 해봤자 실제로 수영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다미가 아니라 실제로 물에 들어가야 한다. 때론 물을 먹어가며, 때론 발버둥치는 안간힘을 써가며, 때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헤엄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론보다 실행이 CEO 한줄 어록/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마라 경제&비즈 CEO 한줄 어록/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마라 ▶이름: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경력: 파나소닉(마쓰시타 전기) 창업자▶평가: ‘경영의 신’ 별칭▶태생: 오사카▶생몰연도: 1894~1989년10월 25일 타계한 삼성 이건희 회장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를 존경했다고 한다. 고노스케 회장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1951년(당시 56세) 어느 날, 고노스케는 미국 가전업계 시찰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앞으로는 디자인의 시대야”(これからはデザインの時代やで)라고 중얼거렸다고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는 일본 전자기업들 경제&비즈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는 일본 전자기업들 일본 전자기업들이 중국계 자본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①파이오니아(홍콩펀드) ②샤프(대만 홍하이) ③도시바의 백색가전(중국 메이디) ④도시바의 PC부문(대만 홍하이) ⑤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 백색가전(중국 하이얼)⑥ 가전양판 라옥스(중국 쇼녕전기) 등이다.ᐅ파이오니아(2018년)/ 홍콩펀드가장 최근의 사례는 파이오니아다. 일본 음향기기 제조업체 파이오니아는 3월 27일,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상장 폐지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홍콩펀드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으면서다.파이오니아는 1938년 마츠모토 노조미(松本望:1905~1988)라 중국계 자본의 ‘먹잇감(일본 기업) 길들이기’? 글로벌 중국계 자본의 ‘먹잇감(일본 기업) 길들이기’? 파산 직전이다.(5년 연속 적자) 곳간도 텅텅 비었다.(자기자본비율 0.9%) 직원들도 짐을 싸야 한다.(1000명 감원) 진두지휘하던 장수도 말에서 내렸다.(회장 과로로 퇴임) 온다던 ‘왕서방들’의 돈도 감감 무소식이다.(중국계 자본 투입 연기)이런 기업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좀 낯선 이름인 ‘재팬디스플레이’(이하 JDI)라는 회사의 현주소다. JDI는 미국 애플사에 중소형 액정 패널을 제공하는 대기업으로, 점유율에서는 세계 최고다. 하지만 JDI는 애플 부진 영향과 수익성 악화가 겹치면서 사실상 링거를 꽂고 있는 창업 66년 만에 사라진 브랜드 S.A.N.Y.O 브랜드 창업 66년 만에 사라진 브랜드 S.A.N.Y.O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산요)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처남 이우에 도시오는 회사 이름을 왜 ‘3개의 대양’이라는 산요전기(三洋電機)라고 붙였을까? 이는 그의 출생지와 관련이 있다. 이우에 도시오가 태어난 곳은 ‘효고현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아와지시마(淡路島)다.범선을 소유한 그의 아버지는 교역을 생업으로 삼았다. 이우에 도시오는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커서 선원이 될 꿈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소학교 졸업 후 견습으로 배를 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트렌드 2011년 2월 18일)은 어린 이우에 도시오가 품었던 꿈을 이 파나소닉과 산요는 ‘매형&처남’ 회사였다 브랜드 파나소닉과 산요는 ‘매형&처남’ 회사였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파나소닉2)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가 누나의 중매로 ‘이우에 무메노’라는 여성과 결혼한 건 1915년이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무렵이다. 마쓰시타는 1917년 다니던 회사 ‘오사카전등’을 그만두고 독립해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를 세웠다.직원은 아내와 처남 이우에 도시오(井植歳男), 달랑 세 사람이었다. 이듬해 3월 7일 오사카의 2층집을 월세로 빌려 ‘마쓰시타전기’라는 간판을 달았다. 당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23세, 아내는 21세, 처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