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경제학(55) /쇼치쿠의 ‘서민 코미디 시리즈’
일본영화 경제학(55) /쇼치쿠의 ‘서민 코미디 시리즈’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07.01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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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괴로워' 시리즈 1편의 아쓰미 기요시와 미츠모토 사치코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70년대 쇼치쿠(松竹)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 영화사이지만 항상 도호(東宝)와 도에이(東映)의 경쟁 구도에서 일종의 ‘넘버3’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3사의 공통점은 배급과 동시에 극장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이른바 ‘프로그램 픽처’를 제작하여 항상 쉴 새 없이 상영관을 돌릴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 전통에 의해 지금도 일본은 도호는 ‘도호시네마즈’(TOHOシネマズ), 도에이는 ‘엔터테인먼트 티조이’(T‧JOY), 쇼치쿠는 ‘쇼치쿠 멀티플렉스 시어터즈’(松竹しょうちくマルチプレックスシアターズ)를 운영하고 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데뷔작 '2층의 타인'(1961)

물론 쇼치쿠의 배급업 진출은 199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본 영화계의 두 가지 배급방식 때문에 쇼치쿠는 1970년대 ‘서민 코미디 시리즈’라는 안전한 전략을 펼쳐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배급방식이란 ‘프리 부킹’(FREE BOOKING)방식과 ‘블락 부킹’(BLOCK BOOKING)방식을 말한다. 

프리부킹은 개봉일과 종영 일을 미리 정해 놓고 상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먼저 시사한 후 상영 규모와 개봉계획을 세워 스크린 수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관객동원이 예상외로 늘 경우 조정이 가능한 형태였다. 따라서 제작사 입장에서도 종영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영화를 개봉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블락 부킹의 경우는 연간 상영스케줄이 고정된 형태로 연간 배급전략을 세운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고정된 스케줄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높고 관객반응에 유연한 대처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야마다 요지 감독

▲‘야마다 요지’의 아성 쇼치쿠
1970년대 쇼치쿠를 지탱해 준 건 오직 단 한사람, ‘야마다 요지’(山田洋次)가 유일했다. 일본 영화 역사가인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는 1970년대 쇼치쿠를 ‘야마다 요지의 제국’(山田洋次の帝國)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그 위상은 대단했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54년에 조감독으로 입사했다. 그의 첫 작품은 ‘2층의 타인’(二階の他人, 1961)으로 역시 코미디물이었다.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幸福の黄色いハンカチ)으로 제1회 일본 아카데미상(日本アカデミー賞)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인정 넘치는 코미디 영화로 동시대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감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장인’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최고의 감독이다. 

'남자는 괴로워'의 도라짱 아쓰미 기요시(왼쪽에서 두번째)

그는 항상 천민 혹은 하층민의 삶에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데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시리즈의 ‘도라짱’(寅らん) 역시 도쿄도(東京都)의 서민동네인 가쓰시카구(葛飾區) 시바마타(柴又)에서 태어난 야시(香具師, 축제일에 길거리에서 행상을 벌이는 노점상)다. 

총 70여 편의 영화를 연출하였으며 2000년대에 만든 사무라이 3부작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淸兵衛, 2002),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隱し劍 鬼の爪, 2004), ‘무사의 체통’(武士の一分, 2006)으로 여전히 일본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대중적 감독이다. 쇼치쿠 영화사를 25년 이상 먹여 살렸지만 한편으로 “그 성공에 안주했던 게 쇼치쿠의 변화를 더디게 한 원인”(쇼치쿠 110년사 발췌)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민족적 영웅이 된 ‘도라짱’
1969년부터 시작된 ‘남자는 괴로워’시리즈는 ‘국민적 인기’를 누린 최장수 시리즈물이다. 1968년에서 1969년까지 후지텔레비전에서 드라마로 먼저 방영이 되었다. 최종회에서 주인공 도라짱이 허브(독사)를 가지러 갔다가 반대로 허브에게 물려 독이 퍼져 죽었다는 허무한 결말로 끝이 나는 바람에 항의가 빗발쳐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젊은 날의 야마다 요지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아쓰미 기요시

야마다 요지의 기획력이 빛을 발한 작품으로 주인공을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처음부터 일본 예능인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구루마 도라지로’(車寅次郞, 이하 도라짱)는 ‘미치광이 떠돌이’라는 뜻으로 ‘후텐노의 도라’(フーテンの 寅)로 불렸다. 극중 도라짱은 게이샤 어머니와 야시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 혼자 키웠지만 16살 때 부자지간에 큰 싸움을 하고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아쓰미 기요시’(渥美清)가 1편부터 최종 48편까지 꾸준한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도라짱’(寅らん)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일본 영화의 모든 스타들과 사랑을 나누며 관객들의 자유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영국의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프랑스에 페르낭델(Fernand Joseph Désiré Contandin)이 있다면 일본에는 단연 아쓰미 기요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당연히 1983년 이후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의 영화 시리즈’로 기록된 영화임에도 이 시리즈가 48편에서 중단된 원인 역시 아쓰미 기요시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다. 1969년부터 1996년까지 1년에 두 번씩 에피소드를 개봉하여 열성팬들의 지지를 받아 명실공이 ‘도라짱’을 ‘민족적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다.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는 폭발적 인기 탓에 당대 최고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등장할 정도였다. 

▲캐릭터 중심의 영화 – 남자는 괴로워
세계적으로는 흥행에 실패를 했는데 그건 단순한 연출과 동일한 포맷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야마다 요지는 언제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코미디 장르를 잘 이해해서 웃을 때 웃고 울릴 때 울릴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처음부터 일본 예능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도라짱의 성을 ‘구루마’(車)라고 한 것도 에도 시대(江戶時代)의 유랑극단을 지배하던 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구루마 겐시치(車善七)에서 따 왔다고 한다. 또한 ‘도라지로’(寅次郎)라는 이름 역시 전쟁 전 쇼치쿠 희극의 일인자이자 일본 희극의 일인자였던 ‘사이토 도라지로’(斎藤寅次郎)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그가 왜 일본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인지를 짐작케 한다. 

‘야시의 역사성’이 영화에 녹아 있다. 도라짱은 가족과 인연을 끊고 야시이며 도박꾼이자 천상 떠돌이로 1년 내내 일본각지를 다니다가 예고 없이 가쓰시카의 숙부집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에피소드가 된다. 당연히 당대 일본 영화의 공식인 여주 ‘마돈나’(マドンナ)가 등장하는데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미츠모토 사치코와 바이쇼 치에코

도라짱이 마돈나에게 연정을 품고 고백을 할 즈음 진짜 애인이 나타나 실연의 상처를 받는가 하면 한껏 공을 들이지만 결국 연애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끝이 난다. 간간이 시리즈 상에서 마돈나가 도라짱에게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그가 도망을 간다. 시리즈 1편의 미츠모토 사치코(光本幸子)를 필두로 국민 여배우였던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와카오 아야코’(若尾文子), 기시 게이코(岸惠子), 아사오카 루리코(浅丘ルリ子)같은 최고의 여배우들이 마돈나로 등장한다. 

후부키 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동생 ‘스와 사쿠라’역의 ‘바이쇼 치에코’(倍賞千恵子)이다. 그녀 역시 시리즈의 처음부터 마지막 48편까지 모두 출연했다. 마지막 48편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후부키 준’(風吹ジュン)이 등장하는데 지금은 참한 아주머니 역할에 자주 나오지만 과거에는 섹시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는 48편까지 똑같은 포맷으로 만들어졌다.

모리사키 아즈마  감독.

▲모리사키 아즈마(森﨑東)
그렇다고 쇼치쿠에 야마다 요지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맛의 달인’(美味しんぼ, 1996)으로 낯익은 모리사키 아즈마 역시 두각을 드러냈다. 야마다 요지를 보조하면서 초기 ‘남자는 괴로워’시리즈에 공헌을 한 그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숨은 분노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는 야마다 요지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쿄토대학의 법학부를 졸업했다. 1956년에 입사했으며 야마다 요지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역시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1968년 ‘희극 여자는 배짱’(喜劇 女は度胸)으로 데뷔했는데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맛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현지에서는 ‘지다이야의 마누라’(時代屋の女房, 1983)가 사랑을 받아 2편까지 제작되고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맛의 달인'(1996)과 '지다이야의 마누라'(1983)

그는 서민을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바라보는 야마다 요지와는 대조적인 시각을 항상 견지했다. 두 사람이 법학도 출신에 시나리오 작가이며 ‘남자는 괴로워’라는 시리즈를 통해 작품을 함께 했지만 코미디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가족이나 민족이라는 관념도 결국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에 지나지 않아 해체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는 종종 쇼치쿠와 충돌했으며 급기야 추방까지 당한 후에는 1974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끝에 1985년에 이르러 ‘살아 있는게 꽃이지, 죽으면 끝장이야 당 선언’(生きてるうちが花なのよ死んだらそれまでよ党宣言)이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만들기에 이른다. 

급속히 다민족화해 가는 슬럼가를 무대로 무정부주의(아나키즘)감각이 다분한 코미디를 만들었다. 그는 또한 지난 2013년에 제15회 전주국제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키네마 준보 선정 베스트 1위 작품인 ‘페로코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ペコロス、母に会いに行きます, 2013)로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페코로스’라는 별명의 유이치는 낙향해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다. 환갑을 넘긴 아들과 어머니의 자잘한 일상을 경쾌하게 그려내는가 싶더니 주변 인물들을 세세하게 스케치 하면서 따듯한 코미디로 마무리 한다. 

제 42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 자비출판으로 지역서점 1위. 정식 출간 즉시 일본 전국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NHK제작 다큐드라마 방영 등 화려한 원작을 토대로 잘 만든 영화라는 평단의 지지를 받은바 있다.

▲마에다 요이치
쇼치쿠의 코미디 노선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에다 요이치(前田陽一)이다. 그는 사실 컬트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다. 평소에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의 전매특허인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 요란스럽고 과장되며 저속한 코미디)를 일본 최초로 시도한다. 

1968년에 연출한 ‘전진! 자가즈 적전상륙’(進め!ジャガーズ 敵前上陸)이 바로 그것으로 ‘유머 미스테리’를 주로 다뤘던 나카하라 유키히코(小林信彦)의 공동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장 뤽 고다르를 노골적으로 패러디 한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다. 일본 그룹 사운드 ‘재규어 밴드’(ザ・ジャガーズ)의 첫 주연 작품으로 여러 난관을 겪으면서 제작비 조차 펀딩이 안되자 궁여지책으로 ‘히가시마루 간장’(ヒガシマルしょうゆ)의 협찬을 받게 되는데 영화 속에 갑자기 ‘CM’이 등장하기도 한다. 

재규어 밴드

실패한 여자 스파이를 꼬치로 죽이기도 하고 엔딩에서 악역들이 모여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블랙코미디로 흘러가 버린다. 포스터 부터가 매우 파격적인데 오스틴 파워와 묘하게 오버랩 된다. 이외에도 ‘야마네 시게유키’(山根成之) 감독은 쇼치쿠에서 비록 코미디 노선에 속해있었지만 특이하게도 닛카쓰의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을 모방하여 색채와 자막을 통해 화면에 이화작용(異化作用, 주인공이 자신을 마치 타인처럼 설정하여 연출하는 기법)을 나타내기를 좋아한 감독이다. 

영화 '갑자기 폭풍우 처럼'(1977)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필름과 색채를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 해 주었는데 물론 미술감독 ‘기무라 다케오’(木村威夫)의 미술 때문이기는 했다. 그는 ‘퍼머넌트 블루 한 여름의 사랑’(パーマネント・ブルー 真夏の恋, 1976), ‘갑자기 폭풍우처럼’(突然、嵐のように, 1977)같은 걸작을 남겼는데 역시 시나리오를 직접 쓴 작품들이었다. 

특히 ‘갑자기 폭풍우처럼’은 당대의 청춘스타들인 ‘고 히로미’(郷ひろみ)와 ‘아키요시 구미코’(小野寺久美子)가 연기한 최고의 청춘영화였다. 도쿄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사는 외로운 청년과 간호사가 교통사고를 계기로 알게 되고 사랑하며 동거에 들어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갈등하면서 결국 헤어질 때까지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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