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별세①/ 육종학자 우장춘의 사위
이나모리 가즈오 별세①/ 육종학자 우장춘의 사위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2.09.1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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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재우> 일본의 ‘살아있는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이 24일 노환으로 교토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다. 일본에선 이나모리 가즈오를 마쓰시다전기 창업주인 마쓰시다 고노스케(‘쇼와의 경영의 신’)와 구분해, ‘헤이세이의 경영의 신’(平成の経営の神様)이라고 부른다.

가고시마 출신인 이나모리가 교세라를 창업한 건 1959년이다. 그는 ‘바위를 들어올려라’라는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썼다.

<교세라는 자본금 300만 엔, 직원 28명으로 ‘미야키 전기’라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처음엔 교토시에 있는 미야키 전기의 창고 건물을 빌려 1층은 공장, 2층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바위를 들어올려라’ 28쪽 인용, 유윤한 옮김, 서울문화사 2015)

그런 교세라는 현재 연 매출 1조5000억 엔(14조8000억 원), 전 세계 계열사 265개, 직원 7만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했다. 거대 통신기업 KDDI를 만든 것도 이나모리 회장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육종학자 우장춘(1898~1959) 박사의 사위다. 그의 아내 스나가 아사코(須永朝子)가 우장춘의 딸이다. 이나모리 회장이 아내와 인연을 맺은 곳은 교세라를 창립하기 전 근무했던 회사다. 직접적인 인연을 이어준 건 도시락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1958년 12월, 나는 3년 남짓 몸 담았던 쇼후공업을 퇴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특수자기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스나가 아사코와 결혼했다. 그녀와 결혼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다름 아닌 도시락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회사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시절, 점심시간만 되면 책상 위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여러 가지 반찬이 가득 담긴 정성스러운 도시락 선물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초라한 점심만 먹다가 맛있는 도시락을 보고는 정말 밥을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웠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책상 위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누군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염치없이 매일 받아 먹는 사이에 어느 날 그녀가 싸온 도시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 86쪽 인용, 홍성민 옮김, 더난 출판사 2011)

스나가 아사코의 아버지인 우장춘 박사의 일본식 이름은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다. 여기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장춘은 일본에서 힘겹게 ‘우’씨 성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923년 고하루라는 일본 여성과 결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여성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급기야 아내 될 여성은 부모와 의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장춘의 마코토’라는 책은 우장춘이 ‘스나가’라는 성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장춘은 아버지(을미사변에 가담한 우범선)의 후원자였고, 아버지 사후에도 자신들을 돌봐주었던 스나가 하지메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우장춘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한 스나가는 이들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다. 앞으로 태어날 어린애들의 장래를 위해 두 사람(우장춘과 고하루)을 스나가 가문에 입적해 주겠다는 것이었다.(중략) 스나가 하지메에게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사촌이 있었는데, 먼저 고하루가 이 집의 양녀로 입적됐고 우장춘은 데릴사위가 됐다. 이렇게 해 우장춘의 정식 성명은 ‘스나가 나가하루’가 됐고, 그의 자식들은 스나가의 성을 쓰게 됐다. 하지만 정작 우장춘 자신은 그후로도 ‘우’라는 한국 성을 지켰다.> (‘우장춘의 마코토’ 149~150쪽 인용, 이영래 지음, HNCOM 출판 2013)

그런 우장춘은 사위가 될 ‘청년 이나모리’를 처음 보고 집안 식구들에게 “그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녔어, 장래 뭔가를 해낼 사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의 성공 뒤엔 아내의 ‘보이지 않는 내조’가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자서전(ガキの自叙伝)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내를 알고 나서 아내는 지금까지 푸념 한 번 한 적이 없다. 교세라를 창업할 무렵, 먹는 것, 입는 것도 만족스럽게 사주지 못했지만, 불만 한 마디 없었다. 그후로 귀가가 항상 늦었지만, 반드시 자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원문: 妻は知り合ってから今までグチひとつこぼしたことがない。京セラ創業のころ、食べるもの、着るものも満足に買えなかったが、不満一つ言わなかった。それ以来、帰宅するのはいつも遅いのだが、必ず寝ずに待っていてくれた。)

<2편에 계속(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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