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경제학(59)/ 로망 포르노의 플롯
일본 영화 경제학(59)/ 로망 포르노의 플롯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11.0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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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배우 마쓰다 유사쿠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지난 회에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의 여배우들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플롯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는 핑크필름(ピンク映画)을 참고로 하였지만 실험 정신적 파생 장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핑크필름의 감독들이 창조 해 낸 파생 장르 중(나중에 다룰 것이다)에는 ‘핑크 호러’(ピンクホラー映画)도 있었고 정치적인 이슈를 결합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다이에이(大映)가 파산한 그달(1971년 11월)에 로망 포르노 라인을 런칭한 닛카쓰로서는 우선적으로 돈을 벌기로 한다. 사실 격변기에 살아남은 다른 세 영화사인 쇼치쿠(松竹), 도호(東宝), 도에이(東映)는 제작비를 깎는 대신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등 외부 영역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지만 닛카쓰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젊은 층을 겨냥한 영화나 웨스턴 영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게 전략이었다. 따라서 로망 포르노물들 역시 제목이나 줄거리만 유사하게 연결하여 장기간 계속되는 시리즈물로 반복됐다. 그 대표적 예로 니시무라 쇼고로(西村昭五郎)감독의 ‘단지부인 : 오후의 정사’(団地妻 : 昼下りの情事)는 20편까지 늘어났다. 

후지타 도시야 감독

▲다양한 시리즈물로 승부
당시 일본 영화 시장의 40%를 점유했던 ‘로망 포르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과 하위 장르의 범주는 매우 넓고 다양했다. 로망 포르노의 제작 방식은 감독들에게 1주일 안에 각자 원하는 주제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물론 시대극과 현대극으로 나뉘어져 제작된 것이 그 특징인데 나중에는 결국 ‘핑크 호러’처럼 스릴러 장르가 추가되었다. 

시대극의 경우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군들과 처첩들의 이야기를 에로틱하게 그려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따금 에도시대 유일한 교류국이었던 네덜란드 여인들을 금지된 ‘기독교’ 포교를 했다는 누명을 씌워 성고문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확실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했다. 전후 패전의 멍에로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지배를 받았던 일본인들은 서양 여자들을 고문하고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들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고는 했다. 

현대극의 경우에는 성적 판타지가 그 중심이 되었는데 여교사, 여고생, 여대생, 여의사, 여죄수, 간호사, 오피스레이디(OL), 심지어 수녀 등을 주요 소재로 하여 시리즈물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현대극에서는 유럽산 소프트코어를 지역적으로 변용하여 만든 장르를 도입하여 백인여자와 일본남자의 정사영화들을 생산해 냈다. 

틴토 브라스 감독

나중에는 성적인 판타지, 관음증 등 현대극의 소재들이 틴토 브라스(Tinto Brass)같은 이탈리아의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어 서로 다른 버전으로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심지어 자사에서 만들어 성공을 거둔 영화들까지 로망 포르노 버전으로 다시 만들기도 했다. 

또한 경쟁작과의 차별성을 잃어가고 성인용 비디오가 인기를 끌자 비디오 시장 전용인 ‘로망 X 비디오’시리즈까지 등장했다. 로망 포르노 10년의 영향으로 닛카쓰는 나중에 이 장르를 소멸시킨 이후에도 다시 한번 회사의 방침을 바꾸어 가볍게 섹시한 장르로 일반관객을 타겟으로 한다며 ‘로포니카 라벨’(Ropponica label)을 런칭 하기도 했다.

영화 '여고생 리포트 만개한 유코'

‘단지 부인’시리즈 외에도 특히 ‘여고생 리포트’ 시리즈에서는 곤도 유키히코(近藤幸彦)감독이 활약했다. ‘여고생 리포트 : 유코의 하얀가슴’(女高生レポート : 夕子の白い胸, 1971)과 ‘여고생 리포트 : 만개한 유코’(女高生レポート : 花ひらく夕子)로 제목에서 뉘앙스를 풍기듯 여배우 ‘가타기리 유코’(片桐夕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여고생’이다. 곤도 유키히코 감독의 1호 작품이었던 ‘유코의 하얀가슴’은 레즈비언적 성향도 있던 어떤 여고생이 엘리베이터에서 강간을 당한 직후 성에 눈을 뜨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반면 ‘만개한 유코’의 경우는 평범했던 여고생이 기말시험에서 해방된 이후 우연한 기회에 섹스를 하게 되고 성에 눈을 떠간다는 이야기다. 은행원 출신 배우인 가타기리 유코의 연기력이 돋보였지만 당시 사회주의 운동에 회의감을 가져가던 일본사회에서 여고생을 통한 ‘성적 판타지’는 새롭게 다가왔다. 

여고생 시리즈들이 만들어지자 자연스럽게 ‘여교사’시리즈도 시작됐는데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영화는 물론 야동에도 패러디 되는 장르이다. 사실 사춘기를 거친 청소년들에게 ‘여교사’라는 주제는 한번쯤 생각해 봤을 ‘판타지’이기도 하다. 닛카쓰는 이 부분을 캐치하여 1973년 ‘고누마 마사루’(小沼勝)감독의 ‘여교사 : 달콤한 생활’ (女教師: 甘い生活)을 시작으로 ‘여교사’시리즈를 한동안 내놓는다. 

고누마 마사루 감독

고누마 마사루는 ‘소네 주세이’(曽根中生)와 함께 로망포르노 계열의 선구자나 마찬가지였다.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의 영화인 ‘꽃과 뱀’(花と蛇, 1974)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가학적인 성에 대해서도 다루고 매를 맞거나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것, 묶이는 것, 욕설이나 외설적인 단어를 말하는 ‘하드코어’물들을 다수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리즈물에서도 스타가 탄생했다. ‘다니 나오미’(谷ナオミ)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시대극과 현대극을 가리지 않고 사도마조히즘 영화에 자주 주연을 맡았다.

 

배우 가타기리 유코

▲차별화된 제작시스템
또한 로망 포르노는 관객의 30% 정도가 여성이었다. 꾸준한 여성관객층이 존재했다. 따라서 여성 시각의 성적 판타지와 동성애, 양성애 등의 작품들도 기획이 되었다. ‘성애영화’이면서도 일본 전국에 걸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극장 네트워크가 있고 정식 장르로 런칭 된 로망 포르노는 여성들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었다. 

‘핑크 필름’ 혹은 그 외 성애물들이나 포르노물들이 ‘음지’에서 남성들이 은밀히 즐기는 외설적 요소가 강했다면 로망 포르노는 극장에서 정식으로 상영되는 성인영화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닛카쓰 측에서 처음부터 로망 포르노 라인의 경우 ‘올 칼러 와이드스크린’포맷을 도입하여 ‘핑크 필름’의 ‘부분 칼러’와 차별화를 두었고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라는 것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여성관객에게도 부담이 없었다. 

영화 '도쿄 채털리 부인'

이렇게 된 데에는 회사 내부적인 훈련을 통해 고도의 능숙한 실력을 가진 연출자, 촬영감독, 세트 디자이너, 다양한 영화관련 기술자를 포함한 폭넓은 ‘인재 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훗날 매니아 층들의 향수를 고려하기도 했으며 대중화를 위해서 1970년대 후반 이래로 할리우드 풍의 블럭버스터를 제작하여 영화 산업을 장악했던 출판 재벌 ‘가도카와’(かどかわ)와의 협업을 통해 외연 확장을 하기도 했다. 

가도카와는 1945년 일본의 국문학자인 가도카와 겐요시(角川源義)가 창업했다. 일본의 국문학 관련 서적에 강점을 갖고 있던 가도카와는 1970년대에 들어서며, 창업자 미나요시의 아들 가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가 요코미조 세이시(横溝正史)의 작품을 필두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가도카와 문고를 통하여 노선의 변경을 추구하는 한편 다이에이를 인수하며 영화계에 진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이때 가도카와의 배우들을 기용하는 파격도 이어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 배우는 마쓰다 유사쿠(松田優作)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이른바 ‘비질출자’(非嫡出子, 혼외자의 일본식 표현)로 태어났다. 보호사(保護司 : 보호(保護) 관찰소에서 보호관찰(保護觀察)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리)출신 아버지의 엄격함과 출생의 비밀, 한국인 어머니라는 핸디캡 때문에 그는 늘 외로웠다고 한다. 하여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이모부부가 사는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언어소통과 이모의 이혼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일본으로 복귀한 케이스였다. 그는 청년영화 장르와 로망포르노의 경계 선상의 영화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대극에 등장한 배우 '우츠노미야 마사오'

▲외국문학과 영화를 그 소스로
사실 당시 유럽에서도 ‘소프트코어 포르노’라는 장르의 영화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한국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덜 야한’ 포르노라는 뜻이 되는데 1974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엠마누엘 부인’(Emmanuelle)이 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성적 행위에 대하여 사실적 묘사로 주목을 받았고 당시 22세 네델란드 출신으로 청순한 이미지의 ‘실비아 크리스텔’(Sylvia Kristel)이 이 영화로 일약 유명해졌으나 정작 프랑스에서는 상영금지와 원작 소설의 출판금지까지 내렸고 미국에서는 X등급(17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한국의 ‘애마부인’에도 영향을 준 영화다. 비록 1994년이 되어서야 개봉이 되었지만 주제가 만큼은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가수 ‘삐에르 바슐레’(Pierre Bachelet)가 부른 영화 ‘엠마누엘 부인’의 주제가가 MBC FM4U에서 매일 오후 2시~4시 시간대에 방송되는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의 시그널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배우 시마 이즈미

당연히 1975년에 ‘도쿄 엠마누엘 부인’(東京エマニエル夫人)과 속편 ‘도쿄 엠마누엘 부인 개인교수’(東京エマニエル夫人, 個人敎授)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한국에서 가끔 프랑스 영화의 원 제목이 ‘엠마누엘’임에도 불구하고 ‘엠마누엘 부인’, ‘개인교수’로 불리는 까닭은 일본의 영향이기도 하다. 후지이 가츠히코(藤井克彦)가 연출하고 다구치 구미(田口久美)가 주연했다. 그녀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와의 혼혈로 노스캐럴라이나 출신이라는 ‘강점’으로 주연을 맡아 당시 3억엔(3億円)이라는 흥행수입을 올리며 로망 포르노 스타 중 넘버원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후지이 가츠히코 감독은 이 여세를 몰아 ‘도쿄의 채털리 부인’(東京チャタレー夫人)까지 제작한다. ‘엠마누엘 부인’ 시리즈 이후 이른바 ‘패션 포르노’(ファッション・ポルノ)라고 불리면서 ‘제2탄’으로 제작된 영화다. ‘패션 포르노’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상류사회’의 성문화를 다룬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로망 포르노계의 신예 스타 ‘시마 이즈미’(志麻いづみ)가 주연이며 일본무용을 대학에서 전공한 까닭에 전형적 일본여인이나 상류층부인 역할에 주로 등장했다. 

배우 다니 나오미

당연히 D. H. 로렌스의 영국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을 영화한 것을 일본식으로 변주한 것이다. 역시 주연은 ‘실비아 크리스텔’의 영화였고 ‘엠마누엘 부인’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이후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는 두 가지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외국 소설과 혼혈 여배우다. 우리에게는 카지 메이코(梶芽衣子)주연의 ‘수라설희’(修羅雪姫, 1973)로 유명한 후지다 토시야(藤田敏八)감독의 영화 ‘위험한 관계’(危険な関係, 1978)가 대표작이다.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1741~1803)의 소설인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는 사실 많은 감독들이 영화화 하기도 했다. 

아마 한국에서는 콜린 퍼스(Colin Firth)의 ‘발몽’(VALMONT, 1989)으로 제목이 더 알려져 있으며 좐 말코비치(John Malkovich)와 미셸 파이퍼(Michelle Pfeiffer)주연의 1988년 작 ‘Dangerous Liaisons’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2003년에는 이재용감독이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로 조선시대 버전으로 만든바가 있고 2012년에는 허진호 감독이 중공에 건너 가 장동건, 장쯔이(章子怡) 주연으로 만든 바 있다. 성적인 술책이나 이중 거짓말을 다루는 세계적 명작이다. ‘우츠노미야 마사오’(宇津宮雅代)가 주연이었는데 그녀는 사진을 보면 어렴풋이 기억하는 한국 팬들이 많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걸그룹 '골든하프', 전 멤버가 혼혈출신의 걸그룹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카무라 루나(高村ルナ)를 소개하고 이번 연재를 미칠까 한다. 로망 포르노의 스타이면서 다구치 구미가 미국계 혼혈이라면 그녀는 독일계 혼혈이다. 일본과 독일 혈통의 J-팝 가수이자 댄서로 소개할 수 있다. 그녀의 경력 후반에 로망 포르노를 찍게 되는데 이게 큰 히트를 쳤다. 바로 ‘격리된 수녀 : 루나의 고백’(Cloistered Nun: Runa's Confession, 修道女ルナの告白, 1976)이 그것으로 고누마 마사루감독의 ‘수녀 착취’ 영화중 하나다. 

그녀는 멤버였던 유명 걸그룹 밴드(GOLDEN HALF)가 해체 되었지만 이 영화 한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골든 하프’라는 걸그룹 역시 전원이 ‘혼혈 일본인’이었다. 물론 그녀는 한편에서는 ‘육체와 영혼 모두 발가벗은 타락한 아이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사실 일본은 혼혈 여배우들을 영화계에서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국적인 혈통’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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