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사회’로
김성진의 SriLanka Talk/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사회’로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2.11.10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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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을 받는 아이들. 국어, 국어활동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한글학교 교사 연수 후기]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필자가 사는 스리랑카에는 20여 개의 민족이 서로 같으며 한편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 역사가 3,000년이라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오랜 옛날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세상은 이미 다양한 여러 민족, 언어, 문화가 국경을 초월하여 섞여 교류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름의 인정과 공존’을 주장하는 다문화주의를 넘어 이제 학자들은 상호문화주의를 말한다. 문화 간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이념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문화 간의 상호작용, 공유 가능한 문화 창출 등은 상호문화주의가 기반하는 원리이다.

한글학교 선생님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랑스러운 한글을 가르치고 멋진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최일선에 있다. 다른 민족, 문화와 함께 어우러져 산다. 선생님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경제 규모 혹은 다변하는 국제사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우리의 처지는 달라진다.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괜히 주눅이 드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 연수를 통해 만난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존경스럽다. 자신감이 넘치고 활발하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배움에 안달한 아이처럼 명랑하다. 소양 교육 18과목, 역량교육 17과목 어느 하나 부족한 마음이 들어 소홀하게 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황요한 선생님의 메타버스를 활용한 ‘한글학교 수업 운영 방법’은 필자에게는 신기원으로 다가왔다.

한글수업 중인 필자.

필자는 한국어반을 맡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현지인 스리랑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가르친다. 비록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하지만 스리랑카 현지인에 가깝다. 우리 학교 시스템은 다수인 한국 교민의 자녀들을 위해 운영되는 편이다. 그래서 선생인 나도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있다. 유대민족이 쓰던 말인데 태어나 살던 나라를 떠나 다른 곳에 이주하여 사는 모든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김희정 선생님의 ‘영화를 통해 본 재외동포 이민사’에서 각 영화에 언급한 대사를 곱씹어 본다.

“넬시토, 여기서 우리의 역사가 시작됐어. 고국을 떠나 먼 곳에서 살게 된 역사지. 그것이 본질이야. 우리는 그 본질을 지켜야 해.”

"아빠, 아빠가 항상 얘기했었잖아, 사람은 자기 선을 잘 그리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내 선을 잘 그리고 사는 걸까?“
“그 주먹으로 그린 원이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어디나 내가 가는 곳에 노래를 가져갈 수 있잖아.”

“이름이란 무엇인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 것을.”

-아버지, ”너희는 넓은 세상을 봐라.”
-이정호, ”국경선 따위는 내가 없애 줄게.”

이국의 문화를 접하며 살고 있는 필자 역시 '디아스포라'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 한국어반에는 호주, 스웬, 개나리, 민재, 호성, 상원 이렇게 다섯 명이다. 큰애는 열 다섯 살 스웬이고, 나이가 제일 적은 막내는 다섯 살 꼬마 상원이다. 호주는 벌써 글짓기도 할 줄 알고 민재와 호성이는 막 글을 뗀 수준이다. 한국에 다녀온 스웬과 개나리는 아직 멀었고, 막내 상원이는 한글에는 관심이 없고 칠판에다 마구마구 그림만 그려댄다. 

우리 애들은 한국말은 아주 서툴고 영어는 그런대로 한다. 여기서 학비가 아주 비싼 인터내셔널학교에 다녀서 그렇다. 하지만 스리랑카 말을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쓴다고 하는데 학교에 와서는 안 쓴다. 같은 학교 한국 친구들에게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아빠가 귀띔해준다. 

큰일이다. 이놈들. 언어학자는 기발하고 멋진 창의력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태아 때 습득한 소리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운 말을 함부로 대하다니. 학자는 청소년기 이전의 언어는 감정에 대한 이해, 자아 형성, 사회성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 반은 스리랑카 말을 자유롭고 자신있게 쓰도록 하였다.   

필자는 세상이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사회로  더 건강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모어(母語) 또는 모국어(母國語) 혹은 제1 언어(영어: First Language)는 자라나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이다. 영어로는 one's mother tongue, a parent language이다. 우리 반 애들의 모어는 한국말이 아니라 유아기에 소리로 접한 스리랑카 외할머니의 말이었고, 이모, 삼촌,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한테서 들은 스리랑카 말이었다. 

디아스포라는 미래라고 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주인공은 물가나 햇볕이 잘 들면 아무 데나 잘 자란다며 한국에서 미나리를 가져와 키운다. 아버지와 손자 세대는 할머니의 미나리에 물을 주고, 또 미나리를 뽑아 팔고 먹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이다. 

필자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순수 혈통의 한국인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보는 학자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직업을 따라 외국에 잠시 살다가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자녀들은 엄밀히 말하면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물론 어린 나이에 모국을 떠나와 낯선 풍경과 언어마저 다른 외국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래서 외국 각처의 한글학교는 그 아이들의 한글 구사 능력과 교과 학습을 도우려는 프로그램을 애쓰며 지켜나가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은, 현지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소홀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애들에게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배려해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학생 숫자가 적더라도 우리 애들을 위한 한글 교재가 더 넉넉했으면 한다. 거주국 태생 아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세심하게 보았으면 한다. 세상은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사회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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