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LA에서 본 오타니 쇼헤이
생생 미국 리포트/ LA에서 본 오타니 쇼헤이
  • 재팬올(japanoll)
  • 승인 2023.03.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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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만화 야구의 주인공 오타니 쇼헤이
WBC 영웅…인성-실력 모두 뛰어난 ‘이도류’
WBC대회에서 MVP를 수상한 오타니 쇼헤이. 사진 이하 오타니 인스타그램, TV캡쳐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WBC가 일본의 14년 만의 우승 탈환으로 막을 내렸다. ‘우물 안 개구리’ 한국야구의 조기 탈락으로 허탈감에 빠진 한국야구계가 자성의 목소리들을 여기저기서 내고 있는 가운데 이곳 로스앤젤레스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지만 이곳 로스앤젤레스의 프로야구팀 중 하나인 ‘LA ANGELS’(엘에이 엔젤스, 이하 엔젤스)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하면 많은 사람들이 ‘LA DODGERS’(엘에이 다저스, 이하 다저스)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엔젤스’도 ‘LA’라는 지역 명칭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연고지는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애너하임’(Anaheim)이다. 그럼에도 광역권이기 때문에 ‘LA’라는 명칭이 쓰이는 셈이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교육의 도시인 ‘오렌지카운티’에 속한 도시이기도 하다. 디즈니랜드가 한때 소유주였고 흥행을 위해서 기존의 에너하임을 LA로 바꿨다.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과 인천 정도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2002년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FA 먹튀들을 양산하면서 매년 가을야구에 실패하여 ‘오타니를 보유하고도 매년 가을야구에 실패하는 막장구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오타니 쇼헤이의 어린 시절

▲이도류(二刀流)
오타니 쇼헤이는 이른바 ‘이도류’로 통한다. 영어로 ‘two-way player’로 투수와 타자를 겸직하는 선수인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원년에 해태 타이거즈의 김성한 선수가 ‘이도류’였다. 이와테현(岩手県) 미즈사와시(水沢市), 현재의 오슈시(奥州市)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였던 아버지 오타니 도오루(大谷徹と)와 배드민턴 선수였던 오타니 가요코(大谷 加代子)의 차남으로1994년 7월 5일에 3남매 가정의 막내로 출생했다. 

야구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음은 물론 어머니 역시 스포츠인이라 타고난 운동신경을 물려 받았다. 형인 오타니 류타(大谷龍太)가역시 사회인 야구 선수로 도요타 자동차 동일본 경식 야구부(東日本硬式野球部)소속으로 뛰고 있으니 야구인 집안인 셈이다. 

오타니 쇼헤이의 부모.

부모의 영향으로 배드민턴과 수영을 배우게 한 후 나중에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초와 유연성 등을 다른 스포츠에서 이식받은 후 야구에 접목시킨 것이다. 물론 우월한 운동 유전자와 타고난 체력도 있었고 운동신경도 있었다. 리틀 야구시절(초등학교 5학년)에도 공식기록으로 ‘130km’의 빠른 공을 던져 포수가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고 한 경기에서 6회까지 17개의탈삼진을 기록할 만큼 타고난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타자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하고 메이저리그로 건너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했던 ‘마츠이 히데키’(松井秀喜)를 투수로는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활약하다가 메이저리그로 건너가 36세인 지금까지도 ‘샌디에고 파드리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르빗슈’(ダルビッシュ有)를 동경했다고 한다.

LA 엔젤스의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

특히 그는 고교 시절 광속구를 뿌리며 지존으로 군림하던 투수 ‘기쿠치 유세이’(菊池雄星)를 동경해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花巻東高等学校)에 진학하면서부터 일본 최고의 투수이면서 ‘160km’의 광속구를 뿌리는 화제의 선수가 된다. ‘파이어볼러’들이 즐비한 학교였으니 경쟁도 있었고 긴장감도 있었다. 특히 감독 ‘사사키 요’(佐々木洋)의 영향이 지대했는데 그는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선수를 육성하는 전문가였다. 

그는 비록 프로야구 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뼈가 성장하고 있는 단계 까지는 ‘야수’로 뛰게 하여 단계적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봄 시즌에는 야수, 가을 시즌에는 투수로 기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점점 구속이 오르더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160km’를 던지는 광속구 투수가 되어 있었고 ‘이도류’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로 성장해 있었다. 

경기를 마무리 짓고 포효하는 오타니 쇼헤이

▲메이저리그를 동경
오타니 쇼헤이는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렸다. 니혼햄 파이터스(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가 1차 지명을 했음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놀랐고 동요도 했다. 평가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미국에서 하고 싶다는 기분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당찬 선수였다. 

이후 수차례 설득과 차후 메이저리그 진출과 및 ‘이도류’ 보장 등을 약속 받은 후에야 입단을 하게 되었는데 구단에서는 ‘오타니 쇼헤이군 꿈으로 가는 길’로 시작되는 30페이지 분량의 자료까지 제시하며 설득을 병행했다고 한다. 4000개가 넘는 일본 고교야구팀 중에서 ‘고시엔’(甲子園)에 진출하는 것도 대단한데 전체 1순위로 지명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2013년 그는 고졸신인으로서 1군에 등록되어 투수, 우익수, 지명타자로 활약하게 되는데 개막전부터 2안타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사실 개막전 고졸신인의 멀티히트는 1960년 야노우라 쿠니만(矢ノ浦国満)이후 53년만의 대기록이었다. 

5월 2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東京ヤクルトスワローズ)에 선발로 첫 등판 ‘157km’를 기록한 이래 2017년 통산 4명째 달성한 ‘40승 40홈런’ 선수를 기록하고 비로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된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등 명문구단 포함 총 9개 구단이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의외로 ‘LA 엔젤스’를 선택해 MLB 팬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데뷔 시즌이나 마찬가지였던 2018년도에는 빠른 적응에도 불구하고 부상 등으로 위기도 있었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1년차 일본인 출신 메이저리거의 홈런기록을 갱신하는 등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이 시즌은 타자로서 104경기(대타 22경기)에 출전해, 타율 285, 22홈런, 61타점, 10도루. 투수로서는 10경기에 선발 등판해 4승 2패, 방어율 3.31의 성적을 남기고, MLB 사상 최초의 ‘10등판, 20홈런, 10도루’을 달성하면서 화려하게 시즌을 종료했다. 

시즌 후 ‘토미 존 ’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재활하여 꾸준히 투수와 타자로 활약하는 한편 2020년부터 ‘Two-Way Player’(이도류 선수)가 MLB의 룰상 정의되어 오타니 쇼헤이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이도류 적용 선수’가 되었다. 2021년도에는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투수로 출장하더니 팬투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9월 15일 타임지(TIME)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을 발표한 가운데 야구계에서 유일하게 선출됐다. 2022년 4월 8일에는 역시 타임지의 표지에 등장하는 한편 스포츠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ESPY상’을 수상하게 된다. 

WBC 일본국가대표팀과 오타니 쇼헤이

▲2023 WBC의 ‘MVP’
한국야구의 몰락을 목격한 이번 WBC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대회를 지배하는 ‘정복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3월 9일 중국전에서 투수 겸 지명타자로 활약하더니 이후의 한국전, 체코전, 호주전에도 출전해 1차 라운드에서만 전 4경기에서 타점을 기록하고 12타수 6안타, 타율 500,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호주전에서는 장내의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대간판에 홈런을 직격시켜 화제가 되기도. 일본 대표팀은 4전 전승으로 그룹 리그를 1위로 돌파해 1차 라운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준준결승의 이탈리아전에서는 투타 동시 출전, 상승부터 메이저리그 이적 후 가장 빠른 164km의 속구를 축으로 5회까지 5탈삼진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더니 타자로는 상대의 의표를 붙이는 번트 안타로 승리에 공헌했다. 

그리고 22일 WBC의 결승전. 미국전에서 3번째 투수와 지명타자로 출전한 오타니 쇼헤이는 불펜-벤치를 왕복해 릴리프의 준비를 진행하면서, 9회에 지명타자를 해제해 마운드에서 미국 대표팀의 캡틴이자 엔젤스의 동료선수인 ‘마이크 트라웃’(Mike Trout)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사무라이 저팬’(侍ジャパン)의 3번째 우승을 확정 지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이도류로 출전, 투수로서 2승 1세이브, 타자로서 23타수 10안타로 타율 435, 1홈런, 8타점의 성적으로 대회 MVP가 되었다. 실로 만화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어 이른바 ‘만화 야구’의 원조가 된 셈이다. 

우승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는 일본대표팀

그러나 그는 실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성’도 세계 최고였다. 전세기 이동 등 초특급 대우를 받으며 일본 대표팀에 합류하면서도 거듭 몸을 낮췄으며 “일본 대표팀에는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많다”고 말해 동료들에게 감동을 안겼고, 상대 팀도 깍듯이 예우했다. B조 1라운드에서 일본과 상대한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체코, 중국, 호주 선수들이 모두 공개적으로 “오타니와 경기해 영광”이라고 밝힌 것이 그 증거다. 

오타니는 이런 인사에 거듭 몸을 낮춰 화답했으며 이른바‘오타니 미담’을 끊임없이 양산해 냈다. 자신을 삼진으로 처리한 투수가 ‘삼진 공’을 내밀자 웃으며 사인해주는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부분 아마추어로 구성된 체코 야구 대표팀’을 향한 존경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MVP 수상 소감에서도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라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으로 WBC 역시 ‘야구의 세계화’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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