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카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가 과도한 야심을 보이다가 마약유통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유통 전문의 ‘세이부’(西武)나 ‘파르코’(パルコ)같은 대형 회사들은 문화 수준이 높은 관객들과 영화제를 목표로 80년대에 예술영화들을 제작하는데 전념한다. 유통기업들이 영화에 뛰어든 건 어쩌면 1980년대 일본경제의 호황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당시 전세계 억만장자 중 70%가 일본인이었으며, 세계 1등 갑부가 세이부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로’(堤康次郎)였다. 소니가 할리우드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고 라이벌인 파나소닉이 유니버설 픽처스를 인수(나중 매각)한 마당에 거품경제로 흥청망청 하는 일본에서 유통으로 돈을 번 기업들이 엔터테인먼트에 기웃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간의 약속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인간의 약속’(人間の約束, 1986)이었다. 유통 그룹 세이부에서 영화제작을 위해 세운 계열사 ‘세이유’(西友)에서 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 노인과 죽음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이름이 ‘요시다 요시시게’(吉田喜重)였다. 일본 쇼치쿠(松竹)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배우 오카다 마리코(岡田茉莉子)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요시다 기주’(Yoshida Kiju)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시다 요시시게 감독은 특유의 스타일과 비타협적인 시선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전위적인 영화 세계를 확립했다. ‘이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この愛は誰のためですか―)라는 카피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3세대가 동거하는 일반적인 가정을 통해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정과 같은 문제를 그려 냈다. 일본 노년문학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에 슈이치’(佐江衆一)원작의 노숙가족(老熟家族, 1985)을 바탕으로 요시다 요시시게와 미야우치 후키코가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감독은 ‘계엄령’(戒厳令)이래 12년만에 메가폰을 쥔 요시다 요시시게, 촬영은 야마자키 요시히로(山崎善弘)가 각각 담당하였다.
문제적인 죽음의 두 표상, 즉 ‘개호살인’(介護殺人)과 안락사 문제를 사에 슈이치의 ‘노숙가족’을 통해 그려냈는데 일본어 ‘개호’(介護)는 한국어 ‘돌봄’에 해당한다. 사에 슈이치는 초로의 노부모를 개호하는 노노개호(老老介護)의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해 큰 화제를 모은 개호소설(介護小說)인 ‘황락’(黃落, 1995)보다는 못하지만 미스터리의 수법으로 개호살인을 묘사하는 소설의 내러티브가 친밀해야 할 가족 사이에 숨어있는 적개심과 혐오 등 부정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 ‘후생백서’가 이상적이라고 본 삼 세대 동거 가족 그리고 이른바 ‘핑핑 코로리’(ぴんぴんころり)로 상징하는 건강한 고령자에게도 개호살인이 일어나는 이이러니 한 사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노인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핑핑 코로리’와 ‘넨넨코로리’(ねんねんころり), 이 두 가지로 부르는데 핑핑 코로리란 팔팔하게 지내다 죽는다는 의미이고 ‘넨넨코로리’는 내내 누워서 환자로 지내다가 죽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죽음’과 치매 노인의 안락사 문제를 묘사해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2회 문화청 예술작품 수상작’(第2回文化庁芸術作品賞受賞作品)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시다 요시시게가 아직 영화계에서 활동 중이라는 시그널을 보낸 작품이다.
▲폭풍의 언덕
그 후 그는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나 루이스 부뉴엘 (Luis Buñuel)의 각색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미학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배경을 중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시대의 일본으로 옮겨 놓는다. 바로 ‘폭풍의 언덕’(嵐が丘, Onimaru, Wuthering Heights, 일본, 1988)이다.
일본의 국민 배우 다나카 유코(田中裕子) 와 가수 겸 배우 마츠다 유사쿠(松田優作) 주연으로 요시다 요시시게의 회고에 의하면 이 작품을 구상하는데 무려 2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제41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이시다 에리(石田えり)는 제12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조연 여배우상(1989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인적이고 파격적인 영화를 추구하는 요시다 요시시게의 스타일답게 배우의 안무나 극단적으로 간소하게 만들어진 세트 등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광기(狂氣) 충만한 마츠다 유사쿠의 연기 역시 흥행에 한몫했다.
마츠다 유사쿠는 반항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일본의 제임스 딘(James Dean)이라 불렸던 배우로 이듬해 할리우드 진출작인 리들리 스캇(Ridley Scott)의 ‘블랙 레인’(Black Rain, 1989) 촬영 중에 암 선고를 받았음에도 투병 사실을 숨기고 강행하다가 결국 그 해 4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마츠다 유사쿠는 사후에도 그를 캐릭터로 한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추모 영화로 ‘소울 레드: 마츠다 유사쿠’(Soul Red: 松田優作, 2009)가 만들어졌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였다. 비극적이고도 운명적인 사랑과 복수, 증오 그리고 용서라는 인간의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원작이 워낙 인간본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터라 해석이 매우 중요했는데 일본 고전극인 ‘노’(能)의 형식을 빌어 세상에 내놓은 파격도 있었다. 노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무대예술로 일본 판 뮤지컬이다. 가부키(かぶき)가 현실 세계를 그린다면 노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몽환적 세계를 그린다. 일본 문화 특징의 하나인 양식화를 지닌 대표적 예술 장르다. 이러한 형식의 원조는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이다. 영화 ‘거미의 성’(蜘蛛巣城, 1957)은 셰익스피어의 ‘멕베스’(Macbeth)를 원작으로 한다. 역사적 배경을 일본의 전국시대로 옮기고 각색해 노로 재해석한 게 이 영화의 특징으로 아마도 추측 하건데 요시다 요시시게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구마이 게이
일본 사회파 영화의 거장 ‘구마이 게이’(熊井啓) 역시 1980년대 예술적 위기로 신음하는 일본 영화계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감독이다. 대량학살화학무기, 대규모 건설개발, 인신매매, 전시 생체해부실험, 옴 진리교 등 일본 현대사의 뜨거운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재조명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그럼에도 감정적으로 몰아가지 않는 신중하고 냉정한 연출로 주목을 받았다.
그 역시 세이부 덕에 ‘센 노 리큐 : 차 달인의 죽음’(千利休 本覺坊遺文, 센 노 리큐: 혼가쿠보의 유서, Death of a Tea Master , 1989)을 촬영할 수 있었는데 원작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둔황’(敦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가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절묘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낸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아름답고도 애절한 대서사시로 유명한 원작이었기에 영화는 다도(다조, 茶祖)의 대가인 ‘센 노 리큐’(千利休)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다.
일본이 낳은 국제적인 스타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가 마지막으로 맡은 주요 배역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종종 일본 영화계는 대배우 ‘미쿠니 렌타로’(三國連太郎)와 비교 하고 있다. 구마이 게이는 사회파 영화를 지향하지만 한편으로는 미학적 아카데미즘과 가톨릭 신자이자 작가였던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다. 그의 영화들은 종종 그리스도교 정신이 접목되는데 ‘바다와 독약’(海と毒薬, 1986), ‘깊은 강’(深い河, 1995), ‘사랑한다’(愛する,1997) 등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그의 첫 시대극 ‘오진 님’(お吟さま, 1978)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1962년 배우이자 감독인 ‘다나카 기누요’(田中絹代)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와 센 노 리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차 달인의 죽음’은 ‘오진 님’의 연장선에서 바라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오진 님’은 지루하다는 악평에 시달려야 했고 전후 최초로 중국 로케이션을 시도한 ‘텐표의 기와지붕’(天平の甍, 1980)까지 연이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던 까닭에 ‘센 노 리큐: 차 달인의 죽음’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또한 1980년대 구마이 게이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다와 독약’(海と毒薬, 1986)일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전시 미군 전쟁포로에 대한 생체해부 실험에 개입한 일본 의사들을 다룬 걸작 중 걸작이다. 이 영화는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가 선정한 베스트 텐에서 세 번째 1위를 차지했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은곰상을 받았다.
사실 구마이 게이의 대표작은1968년 작 ‘쿠로베의 태양’ (黒部の太陽)일 것이다. 당대 스타들인 미후네 도시로, 이시하라 유지로 (石原裕次郎), 사노 슈지 (佐野周二), 다카미네 미에코 (高峰 三枝子), 다키자와 오사무(滝沢修) 등 스타들이 총 출연하고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후지테레비 (フジテレビ)개국 50주년 특별드라마로 지난 2009년에 리메이크 된 바 있다. 이 영화는 전후 일본의 전력란을 해소하기 위해 댐을 건설하는 근로자들과 건설회사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특별히 쿠로베 댐 건설에서 가장 난공사 중 한곳인 터널 공사를 맡게 된 쿠마가이 건설과 용역을 맡은 쿠라마츠반,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심도 있게 다뤄 호평을 받았다. 비록 인명피해까지 일어나게 되지만 ‘일본의 전력난 해소’라는 큰 임무를 맡았기에 자신들의 일을 꼭 완수하리라는 목표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애와 집념, 도전, 끈기, 동료애들을 보여줘 감동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