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전설적인 산악인의 사고사 ‘평행이론’
한-일 전설적인 산악인의 사고사 ‘평행이론’
  • 노운
  • 승인 2024.06.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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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노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 1100도로. 거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건너편엔 람사르 습지가 있는데, 데크로 조성되어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해발 1100도로 표지석

습지 산책을 마치고 다시 건너편으로 돌아와 휴게소를 둘러본 뒤 오른쪽에 자리잡은 제주사람 산악인 고상돈 공원에 들렀다.

고상돈의 무덤과 기념비, 그리고 동상이 조성되어 있다. 때마침 한 외국인이 공원을 둘러보길래 이 공원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고상돈 공원 옆 휴게소.

고상돈, 1977년 에베레스트 등정...1979년 매킨리 추락사
제주 태생인 고상돈은 어릴 적 제주를 떠나 청주에서 성장했다.(청주상고·청주대) 그런 고상돈은 1977년 9월 15일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산 정복에 성공했다.

2년 뒤인 1979년 5월 29일 북미 최고봉 맥킨리에서 추락하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고상돈의 무덤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산악인 고상돈의 동상

참 공교롭다. 한국과 일본의 전설적인 산악인의 사고사가 평행이론처럼 닮았다. 

1970년 5월 11일 일본산악회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마츠우라 테루오(松浦輝夫)와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가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1차 공격조로 선발된 두 사람은 이날 아침 8513미터 지점의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우에무라가 앞서 나가면서 멀리서 정상을 바라봤다. 드디어 정상이 보였다.

우에무라는 뒤를 돌아보며 선배인 마츠우라가 먼저 등정하도록 권했다. 이에 마츠우라는 “아니야, 네가 먼저 가라”고 신호했다. 하지만 우에무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상에 올랐다. 오전 9시 10분이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모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메이지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세상 탐험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등반 그해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정(1970년) 기록을 세웠다. 몽블랑(유럽), 킬리만자로(아프리카), 아콩가구아(남미) 에베레스트(유라시아), 맥킨리(북미)순이었다. 

산악인 고상돈 기념비

일본 나오미, 1970년 에베레스트 등정...1984년 매킨리 실종사
1970년대는 그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1971년 일본 열도 3,000km를 걸어서 종단했다. 홋카이도 왓카나이에서 규슈 가고시마까지 51일 만에 돌파했다.

▷1974년 12월부터 1976년 5월까지 1년 반에 걸쳐 개 썰매로 북극권 1만2,000km를 탐험했다. ▷1978년엔 개 썰매로 단독 북극 도달(세계 최초), 그린랜드 3000㎞ 종단(세계 최초)을 이뤄냈다. 

고상돈의 무덤 앞에 생화에 놓여 있다. 

그런 우에무라의 모험은 1984년 멈췄다. 그해 2월 12일은 그의 43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세계 최초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 동계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2월 13일 텔레비전 취재 팀과의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실종이었다. 무선 교신 당시, 우에무라는 6000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고상돈의 무덤. '그리던 품 안에 안긴/ 아름다운 넋이여/못다한 꿈을 접고/고이 잠드소서'라고 적힌 돌 표지판.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을 찾기 위해 모교 메이지대학 산악부 OB들이 나섰지만 허사였다. 메이지대학은 2차 구조대를 파견해 매킨리 정상에 우에무라가 꽂은 일장기를 회수했다. 

우에무라는 생전 “모험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우에무라 나오미의 생애는 ‘우에무라 이야기’(植村直己物語)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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