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 대표)> 미국의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전기차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기공급이 복잡하고 그 요금이 계속 인상되는 터라 전기 차에 대한 관심까지도 덩달아 식어가고 있다. 지난 2000년 캘리포니아의 전기위기 이후 이른바 ‘전기 자유화’에 따른 심각한 국면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의 서부 미국 에너지 위기로도 알려진 캘리포니아 전기 위기는 주가 시장 조작으로 인한 전력 공급 부족과 소매 전기 가격이 트레이더들에 의해 폭등하여 발생한 사건이었다.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는 대규모 정전사태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 주에서 가장 큰 에너지 회사 중 하나가 파산했으며 경제 붕괴까지 이어져 그레이 데이비스(Gray Davis·민주) 주지사가 입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캘리포니아 전기위기의 교훈
당시 전력 공급사들이 캘리포니아주의 전력수요 초과분 구입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전력도매업체들이 전력판매를 중단했고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정전사태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는 전력 공급사들의 파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주 예산을 동원했고 이로 인해 재정위기의 불씨가 지펴졌다. 에너지 가격 규제는 공급자들에게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전력 공급을 제한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이로 인한 희소성은 에너지 투기꾼에 의한 시장 조작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주 의원들은 경쟁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규제완화 이전 수준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전력 회사들은 임박한 전력 부족에 직면했을 때 현물 시장에서 할인되지 않은 가격으로 전기를 구입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의 전력 수요가 증가했을 때, 도매업자들은 단기적인 이익을 노리고 유틸리티 회사들을 일일 현물 시장에 투입하도록 시장을 조작했다. 메가와트 세탁이라고 알려진 시장 기술에서 도매업자들은 캘리포니아의 전기를 상한가 이하로 사들여 주 밖으로 팔았고 이로 인해 전기 부족이 발생했다.
결국 데이비스는 1911년에 법제화된 소환선거에 31차례나 회부되어 임기 중 도중하차의 쓴 잔을 들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아성이라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공화당의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Alois Schwarzenegger)가 당선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위기가 초래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의 아성인 만큼 가뭄과 신규 발전소 인·허가 지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전기 공급 제도의 모순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전력산업구조는 복잡하다. 미국 전역에 3000여개 이상의 ‘전력사업자’가 존재한다. 사기업만 해도 180여개가 존재하는데 판매전력량의 50%를 감당하고 있다. 50개 주가 각각 다른 ‘주 법’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공기업 2000개사, 협동조합 900개사에 연방 운영 10개사가 존재한다. 1992년 ‘에너지 정책법’에 의거 도매전력시장이 자유화되었다. 1996년에는 ‘행정명령 888’에 의거하여 송전선을 제3자에게 개방하였다. 오늘날 각 주마다 전기요금이 차이가 나는 불씨는 이때부터 생겨났다. 규제와 자유화가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 세탁이 가능하다고?
미국에서는 이른바 ‘메가 와트 세탁’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메가와트(MW) 세탁은 자금 세탁과 유사한 용어로 에너지 시장에서 판매되는 특정 양의 전기의 진짜 기원을 가리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략 1킬로와트(KW)의 1000배가 된다. 돈 세탁을 하는 것처럼 전기 세탁이 가능한 이유는 각 주마다 에너지 시장과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에너지 시장은 에너지 회사들이 주 밖에서 생산된 전기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한 몫 했다. 마치 달러를 가지고 나가 ‘환치기’로 차익을 노리듯 전기를 같은 방법으로 이용해 차익을 얻은 것이다.
캘리포니아 전기 위기 당시 1년 전 평균 메가와트당 45달러였던 것과 달리 1메가와트당 1400달러 이상의 도매가를 지불하고 있었다. 전기도매시장이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미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 ‘발전-송전-배전’이라는 수직 통합된 대규모 민간 전력회사들이 각 주(州)별로 송배전망을 독점 운영해 왔다.
따라서 미국 내 주간 요금격차가 발생하여 동북부와 서부는 비싸고 중남부는 저렴한 기형적 형태였다.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이후 요금인하를 목적으로 정부주도하에 지역독점에서 소매경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썼는데 이때 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서 발전부분 경쟁을 위해 송전망을 개방하면서 운영체제가 독립계통운영자(ISO)와 광역송전기구(RTO)로 나뉘게 된다.
이때 송전망의 소유와 운영이 분리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전력산업 규제기관은 연방정부(FERC)와 주정부(SPUC)기관으로 나뉘게 되었고 연방정부기관이 도매, 송전기구관리 및 주정부가 소매, 발전설비, 송전망 허가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력 회사가 고객을 대신하여 전력을 구입하여 공급해주는 구조로 한국으로 말하면 ‘전력거래소’가 여러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넓은 국토와 지역별 특수성
현재 미국 전력 공급망은 넓은 국토와 지역별 특수성 때문에 FERC(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NERC(North American Eletric Reliability Corporation)의 관리하에 크게 3대 전력계통(Texas, Easten, Western)과, 8개의 세부권역으로 (Regional Reliability Council)로 나뉘어 있다.
이를 세분화하면 ▲시장운영기관(ISO/RTO) : 한국의 전력거래소와 유사하여 하루 전 발전사와 전력 판매사업자 간 중개역할을 하며 전력가격을 산정, 도매전력 시장의 설계, 시장가격관리, 전력망 혼잡관리, 전력조류 제어, 예비력 등 계통운영서비스 및 송전망 확대계획 등 업무 수행 ▲송전망 소유자 : 송배전 변전소와 철탑 등 관리, 고압 송전 선로 제어권 (운영)을 ISO에 양도하고 송전망 접속료 징수 ▲공급자원소유자 : 화력, 수력, 원자력, 풍력, 태양광 등 발전자원과 에너지저장장치를 공급하는 곳이며 발전사업자는 공익사업자(EU, Electricity Utilities)와 독립발전사업자(IPP, Independent Power Producers)로 나뉨. 전력수급에 따라 주(州, State)간 전력거래도 발생 ▲부하공급사업자 : 소비자에게 전기 판매, 도매전력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으로 부하공급사업자 (LSE : Load Serving Entities)와 에너지서비스회사(ESCO : Energy Service Company)가 있다.
▲구리 절도범 기승
이러한 복잡한 구조뿐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전력망 현대화’가 시급하다는 점이다. 국가 전력망 확장 및 현대화를 위한 130억 달러 조달 및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주로 가공선(지상에 전선을 설치)이 많다. 그러다 보니 최근 전선의 재료인 ‘구리’를 훔쳐 파는 경우들이 속출하고 있다. 구리 절도가 기승을 부리면서 LA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가로등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전기차 충전소까지 구리 절도범들의 타겟이 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LA 일원에 구리 절도가 기승을 부리면서 결국 다운타운의 명물인 ‘6가 다리(Sixth Street Bridge)’마저 암흑으로 변했다. 시 당국과 언론들에 따르면 최근 절도범들의 공격이 계속되어 약 7마일 구간의 배선을 벗겨내고 구리를 훔쳐가면서 6가 다리 대부분 구간이 어둠에 휩싸였다. 지난 2022년 개통된 6가 다리는 아름다운 조명이 더해지며 ‘빛의 리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지만 이후 구리 절도범들의 타겟이 되며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지역의 케빈 드 레온 시의원 사무실 측은 “훔친 구리들은 아마도 거리에서 약 1만1000달러에 팔렸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 정부는 배선 교체 등 복구에만 약 200만달러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정책 역시 실패하였다. 탄소중립 정책을 너무 과도하게 실현한 까닭에 셸 개스 등 채취를 하지 않아 역대 최고의 ‘개스비’를 내는 형편이다. 미국은 원래 물 값이 개스 값보다 더 비싼 곳이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복잡한 전기 정책에 다가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으니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인 셈이다. 따라서 전기와 개스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의 수요가 더 많은 형편이다. 전기차를 장려하면서 정작 전기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이러한 기형적 구조가 결국 구매를 꺼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잠재적 전기차 소비자들은 구매 이전에 충전 문제를 먼저 생각한다.
미국에는 현재 약 175,800개 충전소가 있으며 매주 평균 900개의 새로운 충전소가 문을 열고 있으며 이중 약 41,400개는 ‘DC 고속 충전소’이고 나머지는 쇼핑, 작업 또는 식사 중 충전할 수 있는 저속 충전소다. 게다가 미국 전기차 충전소 분포는 주로 동서부의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교외 지역에는 아직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며 심지어 가장 많이 분포된 충전기는 레벨 2 충전기로, 미국 전역 공공 충전소 중 약 80%를 차지하고, DC 급속 충전기는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 때문에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둔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기차를 활성화 시키려면 우선 인프라 확충과 전기생산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