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한인 양용씨 죽음으로 본 총기 오남용
생생 미국 리포트/ 한인 양용씨 죽음으로 본 총기 오남용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4.07.30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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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라틴계 커뮤니티 단체들 참여도 높지만 한인사회 무덤덤 역설
월마트의 흔한 총기 매장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지난 5월 2일 오전 11시 58분께 미국 LA 코리아타운의 한 아파트. 40세 한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대응에 의한 총격으로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있던 양용 씨가 흉기를 내려놓지 않자 8초 만에 근거리에서 총으로 쐈다. 조준사격 한 총알 세발은 양 씨의 가슴과 복부에 그대로 명중했다. 

지난 5월 LAPD의 과잉진압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한인 '양용'씨(유족 제공)

유가족은 양씨의 정신질환이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하며 LA카운티 정신건강국(DMH)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정신건강국의 요청을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집안에 있는 양 씨와 닫힌 문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밖으로 나오라고 설득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무장한 경찰이 강제 진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양 씨는 거실 중앙에 서서 왼손에 흉기를 쥔 상태였다. 경찰이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다가오자 곧바로 총격을 가했고 양 씨는 바로 쓰러졌다. 불과 8초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버뱅크의 한 총포상 앞에 총기구입 희망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

▲총기 사용에 대한 단상
비영리단체인JYYPC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LAPD에 의해 총에 맞은 사람들 중 약 31%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다. 또 지역 정신 평가 대응 팀은 정신 건강과 관련된 호출에 3분의 1 미만 비율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1,201건의 살인 사건 중 경찰관이 범죄로 기소된 경우는 12건, 즉 1%에 불과했다. 

물론 백번 양보하여 이러한 사건은 경찰의 방어권으로 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총기문화가 보편적인 미국이라면 좀 더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의 총기 문화(Gun culture in the United States)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제 총기사고는 미국인들 삶의 일부가 됐다. 1968~2017년 약 150만 명이 총기로 숨졌는데, 이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 이후 발생한 미군 전사자 합계를 웃도는 규모라는 것이다. 지난 2020년 한 해의 통계만 놓고 봤을 때도 4만5000명 이상이 총으로 목숨을 잃었다. 2020년이면 코로나 펜데믹이 한창일 때다. 되도록 외출을 자제 하던 시기에도 자살과 타살 건수를 모두 포함한 수치가 그렇다. 2015년 대비 25%, 2010년에 비해서는 무려 43%나 증가한 셈이다. 

지난 2022년 2월 '미국 내과 연례 회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19년 1월~2021년 4월 사이 750만 명이 처음으로 총기 소유자가 됐다. 전체 인구의 3%를 밑도는 규모이니 어마 어마 하다. 이는 어린이 500만 명을 포함하여 1100만 명이 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더 노출됐다는 뜻이다. 조사 기간 중 신규 총기 소지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었고, 40%는 흑인 또는 히스패닉계였다는 점에서 문제는 매우 심각하며 어린이들에 의한 총기사고도 상당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이 이제 총기 규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1969)

▲서부영화와 '더티해리'의 역설
아마도 미국의 총기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영화’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서부영화는 미국의 총기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선례일 것이다. 허리춤에 총을 차고 먼지가 뒤 덮힌 망토를 두른 마초 근성의 사나이가 시가를 입에 문채 우수에 찬 눈 빚과 건조한 표정으로 악인에게 총기를 난사 하는 전형적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9)에서 많은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정당방위’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될 것이다. 

또 ‘더티 해리’(Dirty Harry)시리즈는 어떠한가. 주연 배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라는 공통점 외에도 ‘총이 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네가 먼저 (총을)뽑았으니 나도 (총을) 뽑았을 뿐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총’이 필요하고 또 사용할 수 있다는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과하다는 점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하기 위한 방법이 어찌 ‘총’밖에 없을까 싶은데 실상은 그렇다. 

영화 '더티 해리'시리즈 스틸

따라서 운전 중 시비가 붙어도 창문을 내리지 말라는 경찰의 권고가 있다. 총알이 날아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더티해리의 내용 역시 그렇다. 'S&W M29 리볼버’를 난사하는 액션물이며 형사 '스콜피오 킬러'라는 라이플 연속 살인마를 추적하고 발포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사적 발포’는 자제하는 입장이 그려진다. 

이번 양용씨의 사례를 보면 광폭해지는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로 총을 난사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월마트에서 총과 실탄을 구입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 총을 들었는지 죽이기 위해서 총을 들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기가 막힌 일은18세부터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미국에서 술을 사려면 21세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전미 총기협회의 로고

▲전미총기협회(NRA)
전미총기협회(NRA)는 미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익단체 중 하나다. 정치인을 로비하는 데 많은 돈을 쓸 뿐만 아니라 5백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숫자도 무시 못할 원인이다. NRA는 대부분의 총기 규제에 반대하며 연방 및 주 차원에서 기존의 총기 소유 규제를 철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연간 예산은 대략 2억5천만 달러(한화 약 2854억 원)로 교육 사업, 총기 시설, 회원 행사, 후원, 법률 활동 등에 사용되고 있다. 

지난 24일 있었던 양용씨 관련 기자회견, 좌로부터 그레이스 유 LA 시의원 후보, 고 양용씨 부친 양민씨, JYYPC의 박지영 오거나이저

이들의 지지자들은 총기 사고가 늘어 날 때마다 “총이 많을수록 더 안전하다”거나 “총기에 대한 규제를 철폐 하라”라는 구호 외에도 심지어 “총이 무슨 죄냐”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대형 총기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치인들은 규제를 할 때가 되었다는 성명을 앞다투어 내놓고 경찰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지만 그때뿐이다. 오히려 총기협회는 총기 소유에 대한 추가적인 제한을 가해선 안 된다며, 대신 학교 주변의 보안을 강화하고 미국의 ‘고장 난(broken)’ 정신 건강 시스템을 고치고, 더 많은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촉구할 정도다. 

이 때문인지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총기 소유권을 보호하겠다고 공약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바이든식 규제' 를 없애겠다", "가장 총기 친화적인 대통령" 등의 발언을 전미총기협회에서 했을 정도다. 전미총기협회의 로비는 공화당에만 집중된 것도 아니다. 민주당 역시 겉으로는 총기규제 강화를 이야기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심지어 NRA가 총기 규제 문제와 관련해 의원들을 마치 학점을 매기듯 A에서 F 등급까지 분류해 ‘관리’하고 있으며 총기 문제에 관한 NRA 입장을 지지하면 A 등급이고, 명백히 반대하면 F 등급을 받는다고 한다. 총기 사고 뉴스를 추적하는 비영리기관 더 트레이스(The Trace)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져 ‘총기=공화당’이라는 편견마저 깨졌다.

지난 2017년 LA 폭동 25주년 '한·흑 평화대행진'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과잉진압
이처럼 총기문제와 과잉대응은 미국의 가장 큰 문제다. 게다가 이번 양용씨의 경우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대한 문제다. 정신건강국 DMH(Department of Mental Health)마저도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PMRT(Psychiatric Mobile Response Team)를 현장에 파견해 전문적으로 대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LAPD도 SMART(Systemwide Mental Assesment Response Team)을 가동시켜야 옳았다는 지적이다. 

두 팀 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문 대응팀’을 뜻하는데 결국 과잉진압으로 끝나면서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양용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양용 정의구현 시민위원회(이하 JYYPC)는 지난 24일 LA 한인타운이 포함된 10지구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인 그레이스 유 후보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28일 LA 코리아타운 윌셔광장에서 열리는 3차 시민집회에 남가주 한인들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매번 집회 때마다 흑인과 라틴계 커뮤니티 단체들의 참여도는 높지만 한인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이나 한인들의 참여율은 매우 낮았다. 물론 이번 사건이 인종적인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에 대한 항의의 성격도 강했고 총기사용에 대한 우려를 담은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총기에 대한 우려 보다는 ‘너도 총을 갖고 있으니 나도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그 어느 커뮤니티보다 높은 한인사회로서는 되도록 주류사회와 부딪히기를 꺼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한인들 역시 지난 1992년 흑인폭동 때의 트라우마로 상당수 총기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당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잘 규율 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8년 대법원은 논란 끝에 수정헌법 2조가 전반적인 총기 소지의 권리 근거를 제공하며, 개인용 무기를 소지하는 데 까다로운 등록조건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을 내린바 있다.  

근래 대법원은 권총과 같은 개인용 무기의 소지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두 차례나 판결했던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기 위해 촛대를 훔쳤다”는 유럽의 격언처럼 그것이 아무리 헌법에 보장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범위가 오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면 후유증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3개월이 지나도록 양용씨에 대한 LAPD측의 답변은 현재까지는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처럼 억울한 죽음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총기 사용’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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