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본사에는 왜 ‘일본 정원’이 있을까
나이키 본사에는 왜 ‘일본 정원’이 있을까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8.10.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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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이곳 교외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본사가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거주하는 일본 저널리스트 마츠무라 타로(松村 太郎)씨는 9월 22일 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쿄돔 약 35개 규모의 캠퍼스(본사 부지를 지칭) 중심에는 넓은 연못이 있다. 직원들의 휴식처인 이 정원은 ‘니쇼 이와이 가든’(Nissho Iwai Garden: 日商岩井 Garden)이다. 이곳은 봄이 되면 벚꽃 나무가 만개 한다. 일본 정원은 나이키의 성립과 일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이는 마츠무라씨가 나이키 공동 창립자인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80/이하 필 나이트)와 가진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오리건대 재학 시절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당시 육상부 감독이었던 빌 바워만(Bill Bowerman)과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스포츠 용품 회사를 차렸다. 나이키(1971년 론칭)의 전신이다. (빌 바워만은 1999년 88세를 일기를 세상을 떠났다.)

필 나이트는 육상 선수였지만,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보다는 스포츠화를 만드는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슈독’(SHOE DOG)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창업 당시 스토리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은 2016년 10월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옮긴이 안세민, 사회평론)됐다. ‘슈독’은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나이키와 일본 정원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어떤 이유로 미국 나이키 본사에 ‘니쇼 이와이’라는 일본 정원이 만들어진 걸까. 이야기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 나이트는 대학원(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수료한 직후였다. 그는 그해 일본을 방문해 운동화 수입판매를 타진했다. 상대 회사는 오니츠카(현재의 아식스)였다. 협상은 잘 풀렸고, 300켤레의 오니츠카 운동화를 주문받아 미국 서부 13개 주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자금 융통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 필 나이트를 위기에서 구해준 곳이 일본 상사 니쇼 이와이(日商岩井: 현재의 소우지츠:双日) 포틀랜드 지점이었다. 니쇼 이와이는 오늘날의 벤처캐피탈과 같은 형식의 회사였다.

니쇼 이와의 후신인 소우지츠(双日)의 ‘역사관 홈페이지’에는 당시 일화를 담은 글이 올라와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 나이트는) 자국 은행의 포틀랜드 지점에 대출 상담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담당자가 “거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가면 니쇼 이와이가 있으니 가서 상담해보라”고 말했다. 필 나이트는 사전 약속도 없이 뛰어 올라갔다. 니쇼 이와이는 스포츠화 판매의 장래성에 주목, 나이키사와 거래를 시작했다. 1977년부터 일본에서 나이키 제품의 판매를 시작했고, 1981년에는 나이키와 니쇼 이와이의 합작인 ‘나이키재팬’이 설립됐다.>

니쇼 이와이를 찾아가던 당시, 필 나이트는 미국 경제잡지 ‘포춘’지에 나온 일본 종합상사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일본 상사들이 벤처 캐피탈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내용이었다.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 한국 번역판은 이 대목을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 필 나이트가 미국 은행에 퇴짜를 맞은 후 다시 대출을 요청한 은행은 도쿄은행(지점)이었다고 한다. 필 나이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얼마 전 ‘포춘’에서 일본의 무역상회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보면 무역상회의 대출 조건은 좀 덜 까다롭다고 하던데, 무역상회를 좀 소개시켜줄 만한 곳은 없습니까." 담당직원은 “일본에서 여섯 번째 규모의 무역상회가 바로 이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있습니다”고 했다.>(‘슈독’ 한국 번역판 238p 인용)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있던 일본 회사가 바로 니쇼 이와이였다. 다시 이야기를 마츠무라씨쪽으로 돌려 당시의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도요게이자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 나이트가 캘리포니아 은행 계좌가 동결된 상태에서 자금 사정 개선을 위해 의지한 곳은 니쇼 이와이 포틀랜드 지점의 회계 담당 이토씨였다. 이토씨는 나이트를 궁지에서 구하기 위해 회계장부까지 제출을 요청했다. 필 나이트는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다.

“나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만약 이토씨가 No라고 하면, 회사는 바로 도산이었기 때문에 니쇼 이와이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토씨는 대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들(니쇼 이와이)은 우리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야기는 잘 진행됐다. 그들은 우리에게 100만 달러의 대출을 제공해 줬고, 그것을 오니츠카 신발 수입에 충당했다.”>

필 나이트는 인터뷰에서 “니쇼 이와이는 나이키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그래서 캠퍼스(본사) 중심에 일본 정원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니쇼 이와이(소우지츠)의 역사관 홈페이지는 당시에 대해 “1990년 일본의 열광팬인 필 나이트 사장의 제안으로 나이키 본사 부지 내에 건설된 일본 정원은 ‘니쇼 이와이 가든’이라고 명명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니쇼 이와이와 나이키의 수십 년에 걸친 신뢰와 인연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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