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두려워했던 ‘이것’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두려워했던 ‘이것’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8.10.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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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성병인 매독 감염 보고 사례가 2년 연속 5000명대를 넘어섰다.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는 10일 “매독의 감염 보고자수가 올해 5081명(1월~9월 30일)”이라고 발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연구소를 인용 “올해는 44년 만에 5000명대(5824명)를 기록했던 지난해를 웃돌 기세”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의 영어판 매체 재팬뉴스는 “매독은 도쿄 1284건, 오사카 874건, 아이치현 338건, 가나가와현 280건, 후쿠오카현 229건으로 대부분 도시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전했다.

성병 치료를 주로 하는 도쿄의 한 개인클리닉의 관계자는 재팬뉴스에 “많은 환자들이 성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그들의 남성 고객”이라며 “매독에 감염된 남편이 아내에게 전염시키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는 매독균이 일본에 처음 나타난 건 언제일까. 일본 과학저널리스트 사토 겐타로는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사람과나무사이)라는 책에서 매독 치료제 살바르산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해답을 주고 있다.

유럽에서 창궐하던 매독이 일본에 상륙한 건 1512년 무렵이라고 한다. 유럽(포르투갈)에서 일본에 조총이라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게 1543년이다. ‘또 다른 서구 문물’ 매독은 그것보다 33년 전에 일본에 전파됐다. 다음은 책의 내용이다.

<1512년에는 오사카가 있는 일본 간사이 지방에 매독이 상륙했고, 이듬해는 수도 도쿄가 자리한 간토 지방에 까지 퍼져 나갔다. 일본에서 매독은 그야말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맹위를 떨쳤다. 당시 전국시대였던 일본에서는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요시타가, 마에다 도시나가, 아사노 요시나가 등 내로라하는 무장들이 매독에 걸렸다고 추정된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154쪽 인용)

에도막부를 연 쇼군 도쿠카와 이야야스도 매독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저자 사토 겐타로는 이렇게 썼다.

<세키가라하 전투에서 동군을 총지휘했던 도쿠카와 이에야스도 매독이 두려워 윤락여성들 근처에도 가지 않는 등 평소에도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하통일의 판도가 매독이라는 병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같은 책 155쪽 인용)

건강에 유독 신경을 쓴 이에야스는 당시로서는 장수했다. 75세까지 살다 사망했다. 책은 에도시대 일반 환자의 70~80%가 매독 환자였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이후로도 매독은 유곽 등을 통해 퍼져나갔고, 서민계층에 만연했다. 스기타 겐파쿠(에도시대 양방 의사로 ‘해체신서’하는 해부학 번역서를 출간한 인물)는 “환자 1000명이 있으면, 700~800명은 매독 환자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책 156쪽 인용)

저자 사토 겐타로는 흥미로운 케이스 한 가지도 소개한다. 일본 근대 사상가인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 사례다. 오카와 슈메이는 패전 후 진행된 재판에서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A급전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일본주의를 부르짖으며 태평양전쟁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죄목이었다.

저자는 “그런데 그는 재판이 벌어질 무렵, 이미 매독 합병증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켜 도쿄재팬 법정에서 도조 히데키(태평양전쟁 A급전범)의 뒤통수를 때리는 기행을 연출했다”며 “당시 영상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같은 책 15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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