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위 달리다 사라진 제지회사①
한때 1위 달리다 사라진 제지회사①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8.10.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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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제지업계 1위를 달리다 한 순간에 사라진 기업이 있다. 다이쇼와제지(大昭和製紙)라는 곳이다. 회사가 없어진 배경 뒤에는 괴상한 사주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경제매체 비즈저널이 10월 1일, 다이쇼와제지의 흥망성쇠를 다뤄 눈길을 끌었다. 이를 번역, 소개한다.

다이쇼와제지(大昭和製紙)의 창업자는 시즈오카현 출신의 사이토 치이로(斉藤知一郎:1889~1961)라는 사람이다. 제지 원료 브로커로 출발한 그는 차례차례 제지 회사를 인수하면서 1938년 마침내 다이쇼와제지를 설립했다.

그의 야망은 따로 있었다. 제지업계 선두를 달리던 오우지제지(王子製紙)를 추월하는 것이었다. 오우지제지는 1873년에 설립된 역사 깊은 회사다. 설립 당시의 회사명은 ‘초지회사’(抄紙会社)였고, 20년 후인 1893년 오우지제지(王子製紙)로 상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우지제지를 넘어서겠다는 아버지의 숙원은 장남인 사이토 료에이(斉藤了英)에게로 이어졌다. 료에이는 ‘도카이의 난폭자’(東海の暴れん坊)라는 별명을 가진 특이한 기질의 사업가였다.

 

아버지의 숙원 오우지제지를 넘다.

하지만 톱의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창업주 아버지가 1961년 2월 사망하면서 45세의 료에이가 2대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아버지의 숙원을 풀어줬다. 해외 확장 전략이 성공하면서 오우지제지를 제치고 톱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 종이 펄프 산업은 심각한 불황을 맞았다. 다이쇼와제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잉 투자, 과잉 재고, 과잉 차입으로 인해 경영위기에 빠졌다. 회사는 주거래 은행인 스미토모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회사 재건을 위해 스미토모의 이사가 다이쇼와제지의 부사장으로 파견돼 왔다.

재건 팀은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골프장을 비롯한 유가 증권 등을 모조리 팔아 차입금 상환에 충당했다. 이 가운데는 료에이가 아끼던 샤갈, 피카소, 마티스 등의 컬렉션도 포함돼 있었다.

료에이는 ‘버블경제’시대 세계 미술품 시장의 큰손으로 유명했다. 스미토모 재건 팀이 자신의 컬렉션까지 팔아 치우자 료에이는 “스미토모는 거지의 이불까지 벗겨 가느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2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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