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유니참 창업주의 성공 키워드②
CEO 열전/ 유니참 창업주의 성공 키워드②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8.10.2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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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다카하라 게이치로가 생리용품 시장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그는 아무런 기술도, 관련 정보도 없었다고 한다. 고향의 폐쇄된 영화관을 매입해 공장을 개조했지만 종이를 밀착시키는 기술은 쉽지 않았다.

당시 생리대 시장은 안네(アンネ)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1961년 27세의 사카이 요시코(坂井泰子)라는 여성이 설립했다.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의 일기장)에 생리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시장을 뚫기 위해 다카하라 게이치로가 당시 선택한 방법은 긍정적 의미의 ‘뻔뻔함’이었다. 그는 “뻔뻔하게도 경쟁 회사에 찾아가서 생산현장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당시 여성 생리용품의 선구자이자 최고의 브랜드는 ‘안네’라는 회사로, 내겐 언젠가는 따라잡아야만 하는 목표이자, 다가설 수 없는 큰 벽이었다. 나는 뻔뻔하게도 경쟁 회사에 찾아가서 ‘나도 생리용품을 만들고 싶으니 생산 현장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경쟁회사 안네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몇 번이나 부탁한 끝에 결국은 직접 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 (‘현장이 답이다’ 38쪽 인용)

 

돈키호테식 '뻔뻔함'이 없었다면

오늘날 유니참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뻔뻔함’ 덕분에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필요한 기술과 현장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돈키호테식 ‘뻔뻔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니참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시사매체 슈칸겐다이에 따르면, 생리용품 첫 출시 다음 해인 1964년의 연매출은 1억9200만엔을 기록했다고 한다. 생리용품은 회사의 중심 사업이 됐다. 건축 자재 사업도 순조로웠지만, 회사 이름이 생리용품과 어울리지 않아 1965년 생리용품 전문회사 ‘참’(チャーム)을 만들었다. 현재의 회사 이름인 ‘유니참’(ユニ・チャーム)이 된 것은 1974년이다. 유니는 ‘Universal, Unique, United 3가지 의미를, 참(チャーム)은 매력적(Charm)이라는 뜻이다.

회사는 대형 슈퍼마켓에 생리용품을 도매로 납품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71년엔 마침내 경쟁사 ‘안네’를 앞질렀다. 변수가 등장한 건 1978년이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가오(花王)가 생리용품 시장에 진입하면서 유니참은 처음으로 이익 감소를 맛봤다.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시장 포화를 예상한 그는 생리용품 개발로 축적된 기술을 살려 일회용 기저귀 제조, 판매에 착수했다. 당시 일회용 기저귀 시장의 90%를 P&G가 차지하고 있었다.

유니참은 P&G 기저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1981년 ‘천 기저귀’에서 힌트를 얻어 ‘유아용 입체 기저귀’를 생산했다. 예상 밖의 호평이 쏟아졌고, 2년 뒤에는 P&G의 점유율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자 또 다른 변수가 생겨났다. 이번에는 P&G가 생리용품 시장에, 가오(花王)가 기저귀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또 다시 수익 감소에 처한 유니참은 1987년 성인용 기저귀 시장으로 또 다시 눈을 돌렸다.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를 돌보는 것)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개호 시장은 키츠이(きつい:힘들고), 키타나이(汚い:더럽고), 쿠사이(臭い:냄새나는)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3K(키츠이, 키타나이, 쿠사이의 앞글자들 딴 영어 이니셜)의 현장이었다. 다카하라 게이치로는 성인용 기저귀에 ‘재활팬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3편에 계속: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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