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도매상→부동산 재벌…모리家 이야기①
쌀 도매상→부동산 재벌…모리家 이야기①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8.10.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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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胡潤) 연구소가 10월 16일 ‘중국 최고 부자 여성 2018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양후이옌(楊惠姸·37) 부회장이 가장 부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산 가치는 약 1500억 위안(약 24조4180억원)으로, 전 세계 여성 기업가 중 1위로 추산됐다. 양 부회장은 2007년 아버지(양궈창(楊國强) 비구이위안 회장)의 지분 70%를 상속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처럼, 일본의 최고 여성 부자도 부동산 재벌가의 사람이다. 모리빌딩그룹을 이끌었던 모리 미노루(森稔: 1934~2012) 회장의 부인 모리 요시코(森佳子)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일본 50대 부자 순위’에서 요시코는 16위에 올라 있다. 포브스는 요시코의 재산을 26억 달러(2조 9491억원)로 추산했다.

요시코의 남편 모리 미노루는 도쿄의 번화가인 롯폰기 일대를 개발한 일본의 대표적인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자)다. 그가 경영했던 모리빌딩그룹은 일본 3위 규모의 부동산 개발 업체로, 도쿄 중심부에만 110여 개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2년 3월,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77세였다. 니혼게이자이, 아사히신문 등을 참고해 모리가(家)의 3대 경영을 살펴봤다.

모리가(家)의 재산 불리기는 모리 미노루의 아버지 모리 다이키치로(森泰吉郎:1904~1993)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미나토 구에서 태어난 다이키치로의 집은 쌀 도매상을 했다. 대학(히토츠바시 대학)을 졸업하고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태평양전쟁 후부터 본격적인 투자업에 나섰다. 예를 들면, 미나토 구의 토지를 사들여 빌딩 사업에 진출한 것.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받았고, 그 돈으로 새로운 부동산을 사는 방식으로 사업을 늘려갔다.

그러다 1949년에는 요코하마 시립대 상학부의 교수를 맡게 되었다. 2가지 일(사업, 교수)을 병행하던 다이키치로는 1955년 모리빌딩의 전신인 모리부동산을, 다음해에는 모리 트러스트‧홀딩스의 전신인 ‘태성’(泰成)을 설립했다. 그가 대학을 떠나게 된 건 1950년대 말이다. 1957년 학장선거에 출마했다가 ‘학자와 기업인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2년 후인 1959년 학교를 사직했다.

부동산 사업의 지나친 확장은 우려도 낳았다. 1970년 경에는 자본금 7500만엔에 차입금이 58억엔까지 치솟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물경기가 도와줬다. 버블 경기 등 고도 경제성장기와 맞물리면서 도시에 오피스 기능이 집중됐던 것. 사업은 확대일로를 걸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다이키치로는 1991년(순자산 150억 달러)과 1992년(순자산 130억 달러) 전 세계 부호 1위에 올랐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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