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도매상→부동산 재벌…모리家 이야기②
쌀 도매상→부동산 재벌…모리家 이야기②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8.10.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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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모리빌딩그룹을 일군 모리 다이키치로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부전증이다. 그는 생전에 약정한대로, 재산의 일부인 30억엔을 게이오대학에 기부했다. 다이키치로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게이오대 교수이던 장남은 그보다 3년 먼저인 1990년 사망했다. 대학 기부도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이키치로 사망 당시, 차남인 모리 미노루(森稔)와 3남 모리 아키라(森章)는 모리빌딩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차남과 3남은 그렇게 아버지의 부동산 제국을 물려받았다.

모리빌딩그룹은 모리 다이키치로 사망으로, 모리빌딩과 모리빌딩개발로 분리됐다. 차남 모리 미노루가 전무에서 ‘모리빌딩’의 사장으로 취임했고, 상무였던 3남 모리 아키라는 ‘모리빌딩개발’의 사장직을 맡았다. 5년 동안 분할통합을 거쳐 모리빌딩개발은 다른 회사가 되었다. 이 회사는 모리 트러스트로 이름을 변경했다.

‘모리빌딩’이라는 회사를 세운 건 아버지 모리 다이키치로지만, 실질적인 창업주는 그의 차남 모리 미노루다. 1959년 도쿄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회사에 이사로 입사한 모리 미노루는 상무(1964년), 전무(1969년), 사장(아버지 사망하던 해인 1993년)직에 올랐다.

그는 도쿄의 과밀화 해결책으로 고층빌딩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빈 토지를 사들여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도쿄 롯폰기힐즈 (Roppongi Hills) 단지 개발로 이어졌다.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것이다. 이후 일본을 넘어 101층의 중국 상하이국제금융센터(Shanghai World Financial Center)를 건립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리 미노루는 2011년 회장에 취임했지만, 1년 뒤인 2012년 3월 8일 77세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사인은 아버지와 같은 심부전증이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3월 14일 “도쿄를 만든 남자, 모리빌딩의 모리 미노루 회장이 사망했다”(東京 を作った男 森ビル・森稔会長死去)는 제목을 달았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부인인 모리 요시코가 재산을 상속받아 일본의 최고부자 16위에 올랐다. 부부 사이에는 딸이 둘 있다. 모리 미노루 부부는 사업 이외에 유명한 모리 미술관(MAM:Mori Art Museum)을 만들었다. 모리빌딩의 가장 높은 층(52, 53층)에 있는 모리 미술관의 이사장직은 부인 모리 요시코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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