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닛산의 쿠데타...곤 '죽이기'①
CEO 열전/ 닛산의 쿠데타...곤 '죽이기'①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8.11.22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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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카를로스 곤(Carlos Ghosn‧63) 회장

20년에 가까운 장기 집권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일본 닛산자동차를 부활시켜 ‘기업회생 예술가’(Turnaround Artist)라는 별명이 붙었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63) 회장. 그는 소득 허위 신고 등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긴급 체포됐다.

"닛산 자동차가 조세회피처 회사에 투자 자금을 옮기고, 곤 회장의 자택용 물품을 구매했다"는 말도 흘러 나온다.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반대하는) 닛산 내부에서 특수부의 칼을 빌려 쿠데타를 일으켰고, 특수부도 이에 가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헤어진 전처'가 찌른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1999년 닛산 개혁의 해결사로 일본 땅을 밟았던 그는 현재 닛산, 르노, 미쓰비시(三菱)자동차 3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체포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곤 사마(樣)’로 불렸던 곤 회장은 이제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재팬올이 그의 일본 진출기를 되돌아본다.

아래 기사는 국내에 번역 출간된 ᐃ‘카를로스 곤, 변화와 개혁으로 이끄는 성공 경영’(오토미 히로야스 저, 은미경 옮김, 삼호 미디어, 2002년) ᐃ‘기적을 만드는 카를로스 곤의 파워 리더십’(이타가키 에켄 저, 강선중 옮김, 더난출판, 2002년) ᐃ‘카를로스 곤 효과’ (미구엘 리바스 마이카으므 저, 김현모 옮김, 일신서적, 2008년) 등 서적과 일본 언론들 보도를 참고로 작성했다.

1. 왜 체포됐나?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이 500억 원의 소득 신고를 누락한 혐의로 도쿄 지검 특수부에 의해 긴급 체포된 건 지난 19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곤 회장은 자택 구입 대금을 회사에 부담시키고 유가증권 보고서에 자신의 보수를 약 50억엔(500억원) 축소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NHK방송은 또 “곤 회장이 닛산 자동차로부터 2011년부터 5년간 99억9800만엔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49억8700만엔을 받은 것으로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2. 태생은?

카를로스 곤은 레바논인과 프랑스인 피를 반반 씩 나누어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브라질 이민 1세의 레바논 사람이었다. 곤은 1945년 이민 2세로 브라질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하던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국립이공과학교(에꼴폴리테크닉: Ecole Polytechnique)를 거쳐 국립고등광업학교(에꼴 데민: Ecole des Mines)에서 광산 엔지니어링 학위를 취득했다.

3. 첫 직장

곤의 첫 직장은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 그는 출세가 상당히 빨랐다. 입사 3년 째인 27세 때 공장장, 1985년 30세의 나이에는 브라질 현지 사장에 올랐다. 1989년에는 북미 자회사 사장, 이듬해에는 회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미국 굿리치 타이어를 합병하고 북미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4. 르노와의 인연

젊은 나이에 출세가도를 달리던 곤을 예의주시하던 사람이 있었다. 르노 자동차 회장 루이 슈바이처였다.(루이 회장의 큰아버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알프레드 슈바이처 박사다) 루이 회장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곤에게 입사를 독려했다.

(르노의 대주주는 프랑스 정부이고, 경영진에 관료 출신이 많아 보수적인 회사로 평가받고 있었다. 르노는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고, 1945년 당시 드골 대통령이 르노의 모든 주식을 몰수하여 국유화해 버린 일이 있다.)

 적자가 예상되던 회사라서 주위에서도 만류했지만 곤은 회사를 옮겼다. 1996년 10월 르노에 입사한 그는 12월 ‘넘버 2’의 자리인 수석 부사장에 취임했다.

5. 첫 별명

곤은 인정사정 없는 비용 개혁을 단행했다. 그런 탓에 그에게는 ‘코스터 킬러’(Cost Killer), ‘코스터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곤은 르노 입사 5개월 후인 1997년 3월, 200억 프랑의 비용 삭감 계획을 세웠다.

먼저 1200개 사에 달하던 부품 업체를 150개사로 줄였다. 벨기에 빌볼드 공장도 폐쇄했다.(당시 이 일은 외교 문제로 까지 비화됐다.) 그 결과 자동차 한 대당 약 77만원의 비용을 삭감하여 적자에 허덕이던 르노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2편에 계속>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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