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보다 개성...어느 서점의 '행복 경제학'
수익보다 개성...어느 서점의 '행복 경제학'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8.12.10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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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개성있는 책 구비 '행복서점' 운영

폐점 이후엔 '행복다방'으로 간판 바꿔

40년 째 행복한 남자가 있다. 물론 일본 사람이다. 그에게 행복은 결코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직업은 책방 주인. 수익보다는 개성을 강조했다. 비록 간판은 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행복이라는 단어를 안고 산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올해 2월 20일, 도쿄 시부야의 요요기 우에하라(代々木上原) 역 근처에 있던 한 서점이 간판을 내렸다. 이날 저녁, 평소 이 서점을 애용했던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주인장과 아쉬운 이별을 하기 위해서다. 언론들도 이 서점의 스토리에 주목했다.

책방이 문을 연 건 1977년. 도쿄의 미나미나가사키(南長崎)라는 곳이다. 이후 1980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와 새로 개업했다. 가게의 이름은 고후쿠쇼보, 즉 ‘행복서점’(幸福書房)이다. 주인장 이와다테 유키오(岩楯幸雄‧68)씨 부부가 남동생 부부와 함께 운영하던 개인서점이었다.

이 서점의 책 구색은 특이했다. 서점의 규모와 실적에 따라 출하 수량을 결정하는 배본(配本) 시스템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유키오씨가 개성적인 출판사의, 개성적인 책을 한 권 한 권씩 구매했다. 또 단골손님의 취향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을 사들였다. 개성있는 책방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지역 주민들과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행복서점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 하야시 마리코(林眞理子)의 덕이기도 했다. 어느 날 행복서점을 들른 하야시 마리코에게 주인장 유키오씨가 사인을 부탁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하야시 마리코의 신간이 나올 때 마다 팬들에게 사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전국에서 팬들의 방문이 어어졌고, 행복서점은 하야시 마리코 책을 구매하는 ‘성지’가 됐다. 그렇게 독자들에게 배달된 하야시 마리코의 사인 책이 1만 권에 달했다.(하야시 마리코의 아버지도 서점을 했었다)

하지만 서점 경영 상황이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최근 10년 사이 출판 시장의 침체가 더 심해졌다. 행복서점 역시 여느 서점처럼 잡지 수익이 전체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잡지는 그만큼 회전율이 좋았다.

행복서점은 잡지를 팔아 수익을 올리면서, 한편으로는 학술서 등 소위 ‘딱딱한 책’을 구입해 왔다. 그런데 잡지 판매 부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유키오씨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결국 40년간 지속하던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개성있는 책방으로 언론에 자주 소개됐던 행복서점의 폐점 역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유키오씨 얘기가 끝난걸까. 아니다. 그에겐 드라마 2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폐점 8개월 후인 10월 20일, 유키오씨는 집이 있는 시나이 마을(椎名町) 인근에 북카페를 열었다. 이름은 ‘행복다방’(幸福茶房). 책방의 상호 '행복'을 그대로 가져왔다.

가게에 들어서면 다양한 책이 구비된 책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구입도 가능하다. 가게는 커피와 간단한 음료를 판다. 행복서점에서 인연을 맺은 작가 하야시 마리코도 종종 들른다고 한다.

행복서점에서 행복다방으로. 간판은 바꿔달았지만 주인장 유키오씨가 손님들에게 진정 팔고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행복’이 아닐까. 

서점조사회사 ‘알 미디어’에 따르면, 일본의 서점 수(5월 1일 기준)는 지난해 대비 500개가 줄어든 1만 2026곳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비해 30%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삼계탕(1만5000원) 한 그릇 값의 책 한 권이 주는 효용의 가치는 때론 삼계탕보다 더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고, 때론 삼계탕보다 더 많은 영양분을 몸에 제공하기도 한다. 유키오씨의 책방처럼 개성있는 작은 서점들이 사라지는 추세가 아쉽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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