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과 왕실 자동차에 얽힌 '영일 동맹'
전함과 왕실 자동차에 얽힌 '영일 동맹'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8.12.30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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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8월 31일, 영국 메이 총리가 해상 자위대 요코스카 기지를 방문해 일본 최대 호위함 ‘이즈모’에 승선했다. 당시 방위상 오노 데라는 과거 영국과 일본이 맺은 ‘영일동맹’을 상기시키면서 “영국에서 만들어 준 이즈모함 덕분에 러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일동맹은 1902년 영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의 동진을 방어하고 동시에 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이권을 나눠가지려 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이즈모 전함이 투입됐다. 그 전함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 지금의 이즈모 호위함이다.

#2.
2019년 1월 10일, 런던을 방문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메이 총리는 “대북 압박을 위해 올해 초 영국 호위함(HMS 몬트로스)을 일본 근해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본 일부에서는 ‘제2의 영일동맹’, ‘영일동맹 부활’이라는 말도 나온다.

영국과 일본의 결속은 비단 군사력뿐만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일본 왕실의 전용차조차 영일 동맹을 의식해 영국제를 들여왔다. 재팬올이 그런 역사를 가진 일본 왕실차의 흐름을 짚어봤다.

 

1990년 11월 12일, 도쿄의 궁성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 퍼레이드식이 펼쳐졌다. 검정색 오픈카를 탄 일왕 부부는 길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퍼레이드에 사용됐던 오픈카는 그해 영국에서 4000만 엔에 구입한 롤스로이스 코니쉬 차종이었다.

3년 뒤인 1993년 6월 9일,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도 이 오픈카가 사용됐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내년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다. 가을에 역시 즉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롤스로이스 오픈카가 동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입한지 28년 동안 단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 차는 연식이 오래돼 현재 주행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국산차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굳혔다. 현재 외국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왕실의 공식 의전차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다.

즉위 퍼레이드에 사용되는 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갖는다. 일본 전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일본 왕실이 퍼레이드용 오픈카로 도요타에 특별 주문을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의 차종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 1대: ‘영일 동맹’ 맺은 영국의 다임러 차종 선택

과거 일본 왕실에서 사용했던 차종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변해왔다. 왕실의 전용 의전차를 ‘어료차’(御料車: 일본어로는 고료샤)라고 한다. 왕실 전용차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다이쇼(大正) 일왕 때부터다.

당시 국가 원수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유럽에 조사단이 파견됐다. 다임러, 벤츠, 피아트 등 회사를 방문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영국의 다임러(독일 다임러와는 별개)였다.

다임러가 선정된 것은 당시 일본과 영국의 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912년 다이쇼 일왕 즉위식엔 다임러 란도레(Landaulet)라는 차가 사용됐다. 당시 영국 왕실도 다임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같은 모델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 차가 일본 왕실의 ‘1대 의전차’다.

█ 2대: 왕세자 암살 미수에서 롤스로이스 유리창 뚫려

‘2대 의전차’가 도입된 건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 차종 2대를 들여왔다. 그런데 이 롤스 로이스를 수입한 2년 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도라노몬’(虎ノ門) 사건이다. 당시 롤스 로이스의 유리창이 관통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경과는 이랬다.

1923년 12월 27일 오전 10시 40분, 히로히토 왕세자(훗날 쇼와 일왕)는 제국의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롤스 로이스를 타고 의사당으로 이동 중이었다. 차량이 도라노몬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다. 길가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와 산탄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차 유리창을 뚫었다. 히로히토를 피해갔지만 동승했던 시종장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24세의 난바 다이스케(難波大助)라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다.

사실, 난바 다이스케가 사용한 총은 보통 새 따위를 잡는 살상력이 약한 것이었다고 한다. 저격 상대가 왕세자가 아니었다면 기껏해야 상해미수죄에 그쳤다. 하지만 미래의 왕을 해칠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는 대역죄에 해당됐다고 한다. 난바 다이스케는 다음해 11월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저격 사건의 여파는 엄청났다. 아마모토 곤베이(山本権兵衛) 총리를 비롯해 전 각료가 사직했다. 치안을 책임지던 경시총감이 파면을 당하고 관할지의 일반 경관들까지도 모두 면직 당했다.

█ 3대: 방탄 강화-독일 관계 고려 메르세데츠 벤츠 도입

무엇보다 경호 전략과 의전차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졌다. 특히 사건 이후 의전차는 방탄이 철저하게 강화됐다. 다이쇼 시대가 가고 쇼와(昭和) 시대가 열렸다. 왕세자 시절 롤스 로이스 차량 저격을 받은 히로히토 일왕은 1932년 방탄이 강화된 튼튼한 독일제 메르세데츠 벤츠 770K를 도입했다. ‘3대 의전차’다.

이 차를 수입하게 된 것 역시 국제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군국주의 일본은 독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일본은 1936년 독일과 방공협정을 맺었다. 이듬 해에는 이탈리아도 가입했다. 그런 상황은 1940년 삼국동맹(3국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방법으로 상호 원조할 것을 약속)으로 이어졌다.

█ 4대: 패전으로 미국 통치…GM 캐딜락 리무진 들여와

국제정세는 바뀌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패전국이 되었다. 연합국을 이끈 미국 통치 하에 들어간 일본이 왕실 의전차로 선택한 것은 뭐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맥아더와 GHQ(연합군총사령부)에 의한 지배국이 선택할 수 있는 차종은 미국제 밖에 없었다. 1951년 ‘4대 의전차’로, 미국 GM의 캐딜락 리무진이 도입됐다.

█ 5대: 프린스 로얄, 일본 차로는 처음 낙점 받아

일본 차가 의전차로 처음 사용된 건 1967년부터다. ‘5대 의전차’로 프린스 자동차 공업에서 만든 프린스 로얄이 낙점 받았다. 명성 높던 프린스가 닛산에 합병되면서 ‘닛산 프린스 로얄’이라는 이름이 됐다.

█ 6대: 2006년부터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 사용

닛산 프린스 로얄이 의전차로는 가장 오래 사용됐지만, 닛산의 경영상태가 나빠지고 차량이 노후화 되면서 2006년부터 ‘6대 의전차’로 8인승의 도요타 센추리 로얄이 사용 중이다.

(위 글은 ᐅ일본 자동차평론가 고바야시 쇼타로(小林彰太郞)가 쓴 ‘천황의 어료차’(天皇の御料車, 1993), ᐅ일본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의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 ᐅ일본 근현대 권위자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 ᐅ그리고 일본 언론보도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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