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의 재팬토크/ 6차 산업 현장④
정희선의 재팬토크/ 6차 산업 현장④
  • 정희선 객원기자
  • 승인 2018.12.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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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고헤이의 농장에서 사육하는 당나귀들. 직원들은 이 당나귀를 '동료 또는 직원'이라고 부른다.
스기고헤이의 농장에서 사육하는 당나귀들. 직원들은 이 당나귀를 '동료 또는 직원'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산업, 기업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재팬올의 정희선 객원기자가 일본의 6차 산업 현장을 찾았습니다. 한국 전문가들과 함께 원정대(12월 17~19일 간사이 지역)를 꾸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3곳을 취재하고 그 사례를 소개합니다.

원정대가 찾아간 곳은 ᐅ와카아먀현의 아키츠노 가르텐(秋津野ガルテン), ᐅ미에현의 모쿠모쿠 농장(モクモク手づくりファーム), ᐅ오사카부의 스기고헤이(杉・五兵衛) 농원입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4편에 나누어 글을 싣습니다.>

1편: 6차 산업의 개념과 정의
2편: 귤로 지역 활성화 '아키츠노 가르텐'
3편: 6차 산업의 선두 주자 '모쿠모쿠 농장'
4편: 6차 산업의 효시 '스기고헤이 농원'

1972년 오픈한 일본 최초의 '농업 레스토랑' 스기고헤이.
1972년 오픈한 일본 최초의 '농업 레스토랑' 스기고헤이.

47년 전인 1971년, 대학 농학부에 다녔던 스물두 살의 청년 노지마고헤이(野島五兵衛)는 농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농업에 종사했다. 노지마는 농사를 천직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성만 추구하던 아버지 세대의 농업과는 다른 경영방식을 해보고 싶었다.

당시는 일본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던 시기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외국과의 교역이 증대되면서 외국에서 다양한 작물이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청년 노지마는 “어떻게 하면 농장을 차별화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배(腹)가 아니라 마음(心)을 채울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노지마의 그런 생각은 이듬해인 1972년 ‘스기고헤이’(杉・五兵衛)라는 이름의 농원을 탄생시켰다. 한 마디로 농촌 레스토랑이었다. 노지마의 생각은 적중했다. 당시 일본의 나들이 문화를 이야기 하자면, 가족을 데리고 갈 곳이 거의 없었다. 가족들이 외출 할 기회가 생기면, 주부인 엄마가 도시락을 만들어야만 했다.
 
스기고헤이 농원은 그런 번거로움을 덜어줬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농장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엄마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됐다. 엄마들을 겨냥한 서비스는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농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회사들도 점점 늘어났다.

일본 6차 산업 탐방 원정대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이런 스토리를 가진 스기고헤이’(杉・五兵衛)이다. 오사카부 히라카타시(枚方市)에 있는 이 농원은 유기농 순환농법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일본 언론들은 스기고헤이를 ‘농가 레스토랑의 개척자’(農家レストランの草分けと)라고 표현한다. 농원 이름은 삼나무라는 뜻의 스기(杉)에 농장주의 이름(고헤이)을 합성했다.

이번 원정대의 탐방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곳이 이곳이다. 규모나 시설은 다른 곳에 비해 작았지만, 당나귀, 토끼 등의 동물들과 다양한 식물밭이 어우러진 농장의 모습과 창업주의 철학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이 농장이 내건 ‘농업을 넘어선 농경 농원’(農業を越えた農耕の園)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농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농장은 마치 6차 산업의 현장이라기 보다는 유기농 농원에 가까웠다. 이 농장의 특징은 수십 마리의 당나귀를 농업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원 직원들은 당나귀를 자신들의 동료, 또는 직원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동물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당나귀는 밭 작물, 야채, 건강한 사료만을 먹여 키운다. 그런 당나귀의 분뇨를 퇴비화해 농약이나 화학비료 대신 쓴다. 당나귀 배설물을 먹고 자란 야채와 작물은 농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보낸다. 이런 순환농법에 의해 손님들은 건강한 유기농 밥상을 받게 되는 것. 농원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스기고헤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스기고헤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레스토랑 운영이 스기고헤이 농원의 주된 수익원입니다. 농원에서는 절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가족이 먹어도 될 만한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사실,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왜 이 농원이 6차 산업의 선구자인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점심식사 후 곧 풀렸다. 농장주 노지마 고헤이씨의 철학을 일본 정부가 당초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농원 측에 따르면, 스기고헤이 농원은 일본 정부로 부터 어떠한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곳의 경영 방식을 ‘농업’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노지마씨는 여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스기고헤이만의 ‘미래가치가 있는 가능한 농업’을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도시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농업을 하겠다는 자신의 철학을 묵묵히 실천한 것이다.

이런 노지마씨의 끈기와 열정은 열매를 맺었다. 25년 전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방문, 시찰한 후 “이상적인 농업이 여기 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정부에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농촌 6차 산업화에 영감을 준 ‘일본 최초의 농업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을 인정받은 것이다. 농원 관계자는 스기고헤이만의 6차 산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6차 산업 본래의 의미는 지역의 매력을 이해 시키는 것이며, 땅이 갖고 있는 문화를 손님들에게 알리는 것이죠.”

스기고헤이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식사.
스기고헤이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식사.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맛있게 먹은 점심에는 참으로 건강한 철학이 담겨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뿐만 아니라, 점심 코스요리는 맛과 구색이 정말 일품이었다.

2박 3일 짧은 일정 동안, 일본 6차 산업 현장들을 직접 둘러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 수익성과 고령화에 고민하는 한국 농가들이 찾아야 할 해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분명 그랬다. (일본 6차 산업 취재기 끝)

정희선 객원기자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 스쿨(Kelly School of Business) MBA
-한국 대기업 전략기획팀 근무
-글로벌 경영컨설팅사 L.E.K 도쿄 지사 근무
-현재 도쿄 거주. 일본 산업,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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