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의 재팬토크/ '니어 비어'(near beer) 전쟁
정희선의 재팬토크/ '니어 비어'(near beer) 전쟁
  • 정희선 객원 특파원
  • 승인 2019.01.1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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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제3맥주' 상품인 혼기린.
기린의 '제3맥주' 상품인 혼기린.

오늘은 지난해 닛케이 트렌드가 선정한 ‘일본 히트상품 30위’에 올랐던 맥주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기린 맥주가 내놓은 ‘혼기린’(本麒麟)이라는 ‘제3맥주’다. 혼기린은 엄밀히 말하면 맥주가 아닌 ‘맥주류’다. 혼기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일본 맥주 시장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① 맥주류 구분
한국에서는 일률적으로 맥주라고 부르지만, 일본은 맥아의 함량과 주세법상에 따라 맥주 시장을 맥주, 발포주, 제3맥주로 구분한다. 이를 통틀어 ‘맥주류’라고 부른다. 맥주 시장이 아니라 ‘맥주류 시장’인 것이다.

맥주는 맥아를 원료의 3분의 2 이상 사용한 것, 발포주는 3분의 2 미만 사용한 것, 제3맥주는 맥아나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콩이나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것을 말한다. 이 구분에 따라 주세도 각각 다르게 붙는다.

② 발포주 탄생
발포주가 시장에 나온 것은 1997년. 맥주 소비가 줄어드는 등 소비자 취향에 변화가 일어나면서다. 소비자의 주머니를 감안하면, 맥주보다 가격이 싼 발포주의 탄생은 새로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2003년 세제 개정에서 발포주의 세율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의 ‘발포주 이탈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③ 제3맥주 탄생
이런 우려에서 맥주업계가 새롭게 연구, 개발한 것이 제3맥주다. 맥아를 사용하지 않고 콩이나 옥수수 등을 원료를 해서 맥주에 가까운 맛을 낸 것이다. 맥주라기 보다는 ‘맥주류 음료’다. 그런데 2006년 다시 세제가 바뀌어 제3맥주의 세율도 올라갔다. 고민에 빠진 업계는 이후 제3맥주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제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④ 가격차 절반
제3맥주 350ml 캔은 슈퍼에서 100엔 정도 (편의점에서는 약 120엔)에 팔리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발포주나 제3맥주는 확실히 일반 맥주보다 깊은 맛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맥주가 200엔 이상인데 비해, 그 반 가격인 100엔에 맥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발포주나 제3맥주(‘신장르’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인기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⑤ 초히트 상품 혼기린
이런 상황에서 2018년 3월 기린에서 출시한 것이 혼기린(本麒麟)이라는 제3맥주다. 장기숙성공법을 이용해 맥아 함량이 높은 일반 맥주와 상당히 비슷한 맛을 구현해내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발매 반년 만에 2억캔이 팔리면서 지난 10년간 기린 출시 상품 중 최고 히트를 기록했다.

⑥ 니어비루
일본의 조어(造語) 능력에 혀들 내두를 때가 많다. 제3맥주를 지칭하는 ‘니어비루’(ニアビール)라는 말 때문이다. 니어비루(near beer)는 ‘맥주에 가까운’이란 뜻이다.

니어비루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상품이 기린의 혼기린이라고 한다. 라이벌 회사인 산토리 맥주의 사장조차 “혼기린은 마시기 쉽고, 저렴하고, 부담 없는 것 이외에 고객의 니즈를 잘 살려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기준, 일본 맥주류 시장은 14년 연속 감소했다. 그 가운데 ‘혼기린’ 효과를 톡톡히 본 기린만이 유일하게 판매가 늘었다.

⑦ 소비세 인상
맥주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소비세 인상이다. 올해 10월 소비세가 인상(8%→10%) 되면서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더 얇아질 예정이다. 소비자들이 ‘절약 지향’이 되면서 맥주보다 세율이 낮고, 가격이 비교적 싼 제3맥주의 수요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맥주 4사(아사히, 산토리, 기린, 삿포로)가 신제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니어비어 전쟁’ 불이 붙는 형국이다. ‘신장르 맥주’시장을 개척한 기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발매한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리뉴얼 상품을 발표하고 ‘더욱 더 맥주에 가까운’ 맛 창출에 전력하고 있다.

⑧ 점유율
현재 기린은 맥주 4사중 점유율 2위(2018년 출하량 기준)다. 아사히 39%, 기린 31%, 산토리 17%, 삿포로 12%정도다.

⑨ 카니발리제이션
제3맥주 출시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맥주시장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제살을 깎아먹는다’는 예기다.

소비자들이 맥주 맛에 가까운 제3맥주를 싼 가격에 선택하면, 200엔이 넘는 일반 맥주는 외면 받기 마련이다. 비싼 일반 맥주가 덜 팔리는, 그 마저도 깍여 나가는 ‘카니발리제이션’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 경쟁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은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아닐까.

⑩맥주 기피 현상
젊은층의 맥주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 급격하게 맥주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젋은층은 맥주 대신 하이볼(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칵테일)과 츄하이(소주+하이볼)로 옮아간지 오래다. 

정희선 객원 특파원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 스쿨(Kelly School of Business) MBA
-한국 대기업 전략기획팀 근무
-글로벌 경영컨설팅사 L.E.K 도쿄 지사 근무
-현재 도쿄 거주. 일본 산업,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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