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한 제약사의 '70조 M&A' 교훈
발행인 칼럼/ 한 제약사의 '70조 M&A' 교훈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1.24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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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사회는 두 외국인 CEO의 엇갈린 명암(明暗)을 착잡하게, 놀랍게 지켜봤다. ‘암’(暗)은 익히 알려진대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다. 도쿄검찰청이 곤 전 회장을 전격 체포한 건 지난해 11월 19일이다.

구속기간 만료 석방→재체포→구속 기간 연장→추가기소 등을 통해 ᐅ보수 축소 신고 혐의 ᐅ공금 유용 혐의 ᐅ회사법 위반(특별 배임) 혐의 ᐅ금융상품 거래법 위반(유가증권보고서 허위 기재) 혐의가 적용됐다. 나락으로 떨어진 ‘인기 CEO’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흉흉했다.

다케다약품의 웨버 사장
채무까지 8조가 넘는 M&A 성사
도박일까? 아니면 결단일까?

또 다른 사람. 곤 회장과 정반대 ‘명(明)’의 인물은 다케다약품(武田薬品)의 크리스토퍼 웨버(Christophe Weber‧52) 사장이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프랑스 회장 등을 거친 후 2014년 다케다약품의 첫 외국인 사장으로 영입됐다.

그런 웨버 사장은 지난해 봄, 놀라운 일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사상 전례가 없는 7조엔 M&A였다. 먹잇감은 아일랜드계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Shire:희귀질병 전문 의약품 회사). M&A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두 회사 내부에서 모두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인수가 표면화 된 것은 지난해 3월 말. 다케다측이 제시한 인수 가격과 조건에 대해 샤이아 경영진은 연이어 ‘노(NO)’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거듭된 협상을 거쳐 5월 초에야 합의가 이뤄졌다. 해가 바뀌어 지난 1월 7일 인수 설명회에 이어 다음 날인 8일 정식으로 M&A가 성사됐다.

웨버 사장의 이번 인수는 곤 회장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업계에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7조엔도 감당하기 힘든 금액인데, 여기에 샤이아가 안고 있는 약 1조 5000억엔의 부채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려 8조엔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웨버 사장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친 것이다. 그것도 월급쟁이 사장이. 일본 언론들은 이번 인수를 ‘건곤일척을 건 도박’ 또는 '지나친 쇼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한 의학벤처 회사 사장은 “회사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그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라고 했다. 마카베 아키오 호세이대학대학원 교수는 “현재 다케다약품은 글로벌 랭킹 18 위”라며 “이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웨버 사장의 인수가 도박이 아닌 ‘결단’이라는 것이다.

의사 부모를 두고, 자신은 약학박사 학위를 가진 글로벌 제약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웨버 사장의 결단은 일단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웨버 사장의 말은 압권이다. “(회사가) 천천히 죽어가는 것보다는 임종을 앞당기게 될지라도 지금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다케다약품의 사장이 토종 일본인이었다면, 이런 위험스런 도박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놀라운 건 한 가지 더.

웨버 사장의 연봉이다. 매년 10억엔이라는 돈을 받는다. 과해도 한참 과하다. 이제 일본의 시선은 웨버 사장이 연봉에 걸맞은 몸값을 할지, 더 나아가 인수합병이 결실을 거둘지에 모아진다.

다케다약품의 이번 인수는 일본 기업 부활의 대표적인 증거다. 매출 약 3조 4000억엔에 달하는 일본 첫 메가파마(거대제약사)가 있는 니혼바시 24층 건물(다케다약품 본사)이 더 커보이는 이유다.

그들의 부활을 보면서 한국은 늘상 ‘남의 집 잔치’가 부러웠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거꾸로 글로벌 기업에 먹히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은 기자의 질문이 화제가 됐다. 취지는 다르지만 웨버 사장에게는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도박에 가까운 당신의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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