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는 사교클럽 이름이었다
아사히는 사교클럽 이름이었다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9.01.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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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업계는 1987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종전에 없던 획기적인 상품이 그해 3월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사히 맥주가 내놓은 ‘수퍼드라이’다.

일본 광고학계의 권위자인 야스타 테루오(安田輝男)에 따르면, 당시 맥주에는 드라이한 맛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아사히는 깔끔한 맛을 선호하던 소비자의 입맛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맛을 찾고 있었다.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기호조사도 실시했다.

마침내 ‘이 맛이 맥주의 흐름을 바꾸려고 한다’(この味が、ビールの流れを変えようとしている)는 신문 광고를 내건 수퍼드라이가 선을 보였다. 광고 카피처럼 수퍼드라이는 맥주업계의 흐름을 단숨에 바꿨다. 이때부터 ‘드라이 맥주’가 정착하게 됐다.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일곱번 째는 이런 스토리를 갖고 있는 맥주업계다. 일본 맥주회사들의 시장 점유율 전쟁도 흥미롭지만, 그들이 걸어온 브랜드 역사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가장 먼저 ‘수퍼드라이’로 판도를 바꾼 아사히맥주다.

'아사히'라는 브랜드
 사교모임 아사히칸(旭館)에서 따와

아사히(朝日)맥주의 뿌리는 오사카맥주회사(大阪麦酒会社)다. 1879년 오사카부 사카이(堺)시에 사는 도리이 고마키치(鳥井駒吉:1853~1909)라는 사람이 스물여섯 나이에 사카이주조조합을 설립했다.

10년 뒤인 1889년 그는 오사카맥주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오사카맥주회사는 그 3년 뒤인 1892년, 아침 해를 디자인 한 ‘아사히’를 출시했다. 아사히라는 브랜드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카이시 자료에 의하면, 당시 도리이 고마키치의 주도로 주조업체, 정부 관계자, 기업인 등 간사이 지역 명사들의 사교클럽이 만들어졌다. 그 이름이 4000평(1만3200㎡) 규모의 넓은 정원을 가진 ‘아사히칸’(旭館:あさひかん). 일종의 맥주홀이었다.

지금의 ‘아사히’라는 브랜드는 이 ‘아사히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오사카맥주주식회사가 출시한 아사히맥주의 한자 표기는 朝日麦酒가 아니라 旭麦酒였다는 것. 한자 조일(朝日)과 욱(旭)은 모두 떠오르는 아침 해를 의미한다.

오사카맥주회사에 변화의 바람이 들이닥친 건, 창업 17년 째인 1906년 3월이다. 오사카맥주가 일본맥주(현 에비스), 삿포로맥주(현재의 삿포로)와 합병해 일본 굴지의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오사카맥주의 도리이 고마키치는 사장직 제안을 받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고사했다고 한다.

‘대일본맥주주식회사’의 당시 시장 점유율은 가장 높았을 때가 78.8%에 이르렀다. 과도한 점유율이 문제가 되면서 태평양전쟁 후인 1949년 ‘대일본맥주주식회사’는 재벌 해체 정책에 따라 분할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아사히맥주회사(서일본 기반)와 삿포로맥주회사(동일본 기반)가 탄생했다.

분할 여파로 아사히맥주는 판로 확대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점유율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아침 해를 상징하던 아사히는 한때 '지는 해 맥주'(夕日ビール)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후 절치부심의 기간이 이어졌다.

1958년 일본 최초로 캔맥주를 내놓은 아사히맥주는 1986년 고쿠키레비루(コクキレビール), 1987년 수퍼드라이를 연달아 출시하면서 업계 선두 진출 발판을 만들었다. 이윽고 1998년, 기린을 제치고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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