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를 빛낸 유명 광고 스타들
산토리를 빛낸 유명 광고 스타들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9.01.19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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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26일

무하마드 알리-이노키 '세기의 대결'

15라운드 뒤 산토리 마크 방송에 잡혀

마지막 15라운드 경기가 끝나자 두 사내는 서로 다가와 악수를 하면서 잠시 포옹을 했다. 그 순간 경기장 천장에 한 맥주회사 이름이 두 사내와 함께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산토리(Suntory)였다.

1976년 6월 26일. 두 사내는 듣도 보도 못한 혼합무술경기를 펼쳤다. 한 명은 전설의 레슬러 역도산의 제자인 프로레슬러. 또 다른 한 명은 살아있는 전설의 헤비급 복서였다.

프로레슬러는 당시 33세의 이노키 간지(猪木寛至), 안토니오 이노키(Antonio Inoki)로 알려진 인물이다. 브라질식 안토니오라는 이름이 붙은 건 브라질 이민과 연관이 있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운 그의 가족은 브라질로 떠났다. 이노키 간지는 1960년 브라질에서 경기를 하던 한국인 레슬러 역도산(본명 김신락)을 만나 그의 추천으로 프로레슬러의 길로 들어섰다.

상대보다 한 살 더 많았던 전설의 복서 이름은 카시우스 마르셀루스 클레이 주니어(Cassius Marcellus Clay Jr.) 우리는 그를 이슬람식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로 불렀다.

알리는 도쿄 부도칸에서 이노키와 ‘세기의 경기’를 벌였다. 알리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기였으며, 가장 해괴한 경기이기도 했다. 그는 서서, 상대는 누워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나자 이노키는 알리쪽으로 달려가 넘어지면서 다리를 가격했다. 그러곤 드러누워 덤비라고 손짓했다. 알리는 일어나서 싸우자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노키는 누운 채 그를 바라보며 거부했다.

15라운드까지 몇 번의 ‘기브 앤 테이크’가 있었지만 지루한 공방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돈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군중들도 있었다. 스펙타클했지만 기괴한 경기는 무승부 선언으로 끝이 났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의 도쿄 지국장 마이크 타프 (Mike Tharp)는 “경기는 소극(笑劇: farce)이었다”며 “하지만 수백만 명의 일본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세계 챔프를 볼 수 있었다”고 경기를 평가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경기가 끝난 후 두 사내는 링에서 잠시 포옹했다. 경기장 천장에 산토리 글씨가 방송 화면에 노출됐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산토리가 일본 시청자, 더 나아가 경기를 지켜본 전세계 14억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1970년대 그 무렵, 산토리는 미국의 유명 인사들을 등장시켜 상업 광고를 찍었다. 대표적인 이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예인으로 불리는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Sammy Davis Jr.:1925~1990)와 영화 ‘대부’의 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당시 산토리는 세계적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1910년~1998) 감독의 ‘카케무샤’ 촬영장을 배경으로 광고를 찍었다. 구로자와를 스승으로 모시던 코폴라 감독이 촬영 현장을 지켜본 후, 구로자와와 함께 산토리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산토리는 그렇게 당대의 가장 ‘핫’했던 서양 인사들을 광고에 출연시켜 세계 위스키 시장을 공략했다.

경기 이후 결혼식-은퇴 경기 초대

알리-이노키 찬란한 우정 쌓아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알리와 이노키는 그후 어떻게 됐을까. 경기는 해괴했지만, 두 사람은 찬란한 우정을 맺었다. 경기 1년 후, 이노키는 알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결혼식 파티 초대장이었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서너 차례 만나 지속적인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이노키는 알리라는 브랜드를 적절하게 이용해 글로벌 스타덤을 노렸다. 알리의 경기 주제가인 ‘알리 봄 바 예’(Ali Bom-ba-ye)를 ‘이노키 봄 바 예’(Inoki Bom-ba-ye)로 바꿔 사용했다.

도쿄 대결 22년 뒤인 1998년, 이노키의 은퇴 경기(상대는 돈 프라이:Don Fry)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알리가 도쿄로 날아온 것이었다. 링에 올라간 알리는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이노키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이노키보다 10여 년 먼저 은퇴한 알리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30년 넘게 고생하다 2016년 사망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브랜드는 결코 죽지 않았다.

2019년 1월 17일

알리 생일에 맞춰

켄터키주 루이스빌 공항에 '알리 이름'

새해 들어 1월 17일(한국시각), 그의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스빌 공항 당국이 공항 이름을 그에게 선물했기 때문이다. ‘루이스빌 무하마드 알리 국제공항’(Louisville Muhammad Ali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명칭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당국은 1년 넘게 공항 개명을 추진해 왔다고 한다. 명칭 변경을 선언한 그날은 알리의 생일이었다. 당국은 알리가 루이스빌 출신이라는 것을 더 알리고 싶었다. 알리의 아내 로니 알리 (Lonnie Ali)는 “이름 변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로 연관성이 없던 산토리, 이노키, 알리, 구로자와, 코폴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루이스빌 공항은 이렇게 직간접적인 스토리로 연결되어 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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