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일본 재계의 ‘허풍 3형제’ 회장님
발행인 칼럼/ 일본 재계의 ‘허풍 3형제’ 회장님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2.06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야나이 타다시 회장, 손정의 회장.
사진=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야나이 타다시 회장, 손정의 회장.

#1.

일본 재계에 ‘허풍 3형제’(大ぼら3兄弟)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실제 형제는 아니다. 주인공들은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회장,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회장,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柳井正) 회장 세 사람이다. 나이로 보면 나가모리(74) 회장이 맏형 격이다. 손정의와 야나이 회장은 60대다.

사업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은 재계의 라이벌인 동시에 동지이기도 하다. 나가모리와 야나이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사내이사로 활동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들이 ‘허풍 3형제’로 불리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나가모리 회장은 매체 슈칸겐다이(2016년 9월 10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야나이씨, 손씨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들도 상당히 허풍을 떨고 있습니다(彼らも非常な大風呂敷を広げています) 그래서 나를 포함해 ‘허풍 3형제’(大ぼら3兄弟)라고 불리고 있습니다.(웃음)”

유력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이 세 명의 공통점은 너무나 높은 경영 목표를 제시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허풍 3 형제’(大ぼら3兄弟)라고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6년 6월 21일자)

#2.

두 매체에 등장하는 ‘오보라’(大ぼら)는 나각(소라 껍데기로 만든 악기)을 의미하는 호라(ほら)에 크다(大)는 말이 붙어 변한 말이다. ‘큰 나각’쯤 된다.

이 ‘오보라’(大ぼら)에 다시 ‘불다’라는 후쿠(吹く)를 붙이면 ‘오보라오 후쿠’(大ぼらを吹く)가 된다. 영어로는 blow one's own horn에 해당하는 말로, 큰 나팔을 불다, 자랑질을 하다. 허풍을 떨다는 뜻이 된다.

나가모리 회장이 슈칸겐다이에 말한 ‘오부로시키오 히게테이마스’(大風呂敷を広げています: 큰 보자기를 펼친다)라는 표현도 같은 뜻이다.

사실 두 표현은 ‘큰 비전이나 큰 꿈을 갖는다’란 의미에 더 가깝다. ‘너무나 높은 경영 목표를 제시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한 니혼게이자이의 풀이가 그렇다. 그러니 ‘오보라’는 곧 ‘비전’을 뜻한다.

#3.

나가모리 회장은 신입사원 훈시에서도 이 ‘오보라’(大ぼら)를 강조한다. “젊은이의 특권은 미래를 향해 ‘오보라를 불어야 한다”며 “그 비전을 현실화시켜 자신과 회사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회사의 젊은 직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기업가라는 것은 장대한 비전(오보라)을 내걸고 실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오보라’를 불어라”(優れた企業家とは壮大なビジョン(大ボラ)を掲げ、実行する人を言う。若者よ、大ボラを吹け)

나가모리 회장은 회사 측면에서는 “2030년에 매출 10조엔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평소 호언장담해 왔다. 그동안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결코 허풍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4.

교토의 가난한 농가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나가모리 회장은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밥 빨리 먹는 사람을 신입직원으로 채용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됐다. 2류 직원을 뽑아 일류로 키우는 게 그의 남다른 능력이다.

지금까지 50여 건의 M&A를 성사시키고 적자는 거의 내본 적이 없다. 구조조정도 하지 않는다. 이런 ‘영속성장’(永続成長)을 지향하는 나가모리 회장의 경영방식을 ‘영수류’(永守流)라고 부른다.

경영자가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다면, 그걸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전함이 마땅하다. 비즈니스 심리학 용어로 이를 ‘비전 커뮤니케이션’(Vision Communications)이라고 하는데, 미국 메릴랜드대의 로버트 바움(Robert Baum) 박사는 200명에 가까운 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 바 있다.

조사 결과 ‘비전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기업 일수록 기업 성장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비전과 꿈의 크기로 따진다면, 손정의 회장도 만만치 않다. 야심적인 프로젝트 ‘소프트뱅크비전 펀드’를 통해 전 세계 유망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 하고 있다.

‘300년 지속 기업’을 꿈꾸는 그의 생각은 일반 경영자들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도 비슷하다. ‘허풍 3형제’라고 농담 삼아 말하지만 그들은 분명 ‘비전 3형제’이다.

#5.

일본은 나가모리 회장처럼 직접 기업을 경영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철학을 전파하는 경영사상가들이 많다. 고인이 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마쓰시다전기 창업자), 도코 도시오(土光敏夫: 전 도시바 사장, 전 경단련 회장)가 그랬고, 현역인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 등이 그러하다.

반면, 한국 재계에는 그런 ‘어른’들이 지금 보이질 않는다. ‘구루’(guru) 같이 가르침이나 큰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허풍 회장님’들 말이다.

자연스레 청년들의 꿈도 쪼그라든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에디터 이재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