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시나리오 작가가 재팬올에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인 대표입니다.
홍콩킹라이언필름(KING LION HONGKONG FILM)을 설립해 중화권 콘텐츠 수입과 제작도 하는 작가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영화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글로벌인(人)’ 작가가 본격적으로 일본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그가 외국에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본의 ‘메이와쿠’에 대한 것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메이와쿠는 일본 문화를 관통하는 개념인 동시에 일본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어’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메이와쿠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담은 장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의상 3편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편집자주>
흔히 일본의 문화가 뭐냐고 말할 때 ‘메이와쿠’(迷惑)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한국의 문화가 뭐냐고 말하면 딱히 ‘집단주의’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의미가 부러워진다.
솔직히 한국은 이율배반의 문화를 갖고 있다. 여기에 집단 이기주의가 더해지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눈에는 매우 의아한 상황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예의 바르고 인정 많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저임금과 냉대는 가장 좋은 예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이와 반대다. 예의는 바르지만 어쩌면 차갑기 까지 한 일본인들의 저변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메이와쿠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와쿠(迷惑)는 원래 불교용어에서 온 말로 ‘가르침의 옳고 그름에 주저한다거나 명예나 이익에 눈이 어두우면 판단이 흐려진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일본화’ 되면서 그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곤란하다’든가 ‘형편이 좋지 않다’든가 ‘불쌍하다’는 의미로 정착되어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메이와쿠가 ‘흙탕물을 튀겨 뜻하지 않게 길 가던 여성의 옷자락을 적셨을 때 미안하다고 하는 말’ 정도로 여겨진다. 하여 현대사에서 본의 아니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일본과 중국이 국교정상화를 하던 그 시절 얘기다.
새로이 일본 수상이 된 다나카 가쿠에이가 북경으로 날아가 주은래(당시 모택동 다음의 중국 2인자)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다나카 수상이 중국인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바로 “고 메이와쿠 오 가케마시타”(폐를 많이 끼쳤습니다)였으니 중국인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화적 차이라고 말하기에는 중국에 너무나 상처가 컸다. 중국은 7년 전쟁을 통해 1천 만명이 목숨을 잃은바 있었으니, 같은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메이와쿠는 현재 일본에서 '폐'라는 의미로 쓰인다. 남을 망설이고 주저하게 하는 것 등은 결국 폐가 된다는 의미로, 일본인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철학이 바로 '폐를 끼치지 말라'(迷惑をかけるな)는 말로 정착되었다.
일본인의 문화, 질서라든가 규칙, 교육철학 등은 메이와쿠 아래서 유지된다.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를 바탕으로 한 ‘교육’이 일본의 저력을 말할 때 첫손에 꼽는다. 시작은 가정교육이다.
일본 부모는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매우 엄하게 제재한다. 일본 가정교육을 다룬 ‘일본 엄마의 힘’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이 훈육의 최우선 순위로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는 것’ ‘놀이터 등에서 끼어드는 것’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떠드는 것’ 등을 꼽고 있다.
엄격한 훈육 주제에는 대중교통 매너도 포함돼 있다. 교통질서 준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따라서 지하철 안에서 민폐를 끼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메이와쿠는 일본의 목욕탕 문화에까지 그 영향을 주었는데, 공중목욕탕에서 다른 사람에게 물을 튀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남에게 물이 흩뿌려지는 샤워기 사용도 자제한다. 사우나실에서도 쥐죽은 듯이 앉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땀 한방울 바닥에 떨어 뜨릴까 조심하고 이미 다른 사람이 발을 들여 놓은 탕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주 작은 선물을 받게 되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쳤다고 여기고 답례를 하니, 메이와쿠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훈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