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⑤/ 오모이야리의 힘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⑤/ 오모이야리의 힘
  • 이훈구 작가
  • 승인 2019.02.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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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끊이지 않는 일본의 상황에서 ‘메이와쿠’ 교육은 저력으로 다가 오기도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메이와쿠 가케루나)라는 말은 일본인의 문화양식이며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 입학 첫 수업에서 배우는 사회윤리 교육의 핵심이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질서’라는 이름으로 교육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문화 때문에 일본인들이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도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는 성향과 높은 문화의식 수준을 갖게 된 것은 민족성이라기보다 교육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뇌리에는 '메이와쿠 가케루나'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관념이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줄서기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은행에서 번호표를 주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다면 분명 무질서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선 새치기를 하면 경범죄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게 되는데,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것은 범죄로 보기까지 한다. 그 줄이 아무리 길더라도 불평을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이러한 메이와쿠 문화는 사회 곳곳에 심어져 있다.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해서도 안 되고, 청소기나 세탁기 소리 같은 것도 오래 내서는 안되며, 아파트 내에서 소음을 내는 것도 안 되니 ‘층간소음’은 더더욱 안 된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벽을 보고 혼자 밥을 먹게 되어 있는 식당도 즐비하고 편의점 도시락과 혼밥 메뉴들도 즐비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저력은 대재난 속에서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지진이 잦고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메이와쿠 문화는 적어도 무질서와 혼돈을 막아주고, 질서정연한 수습을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 혹은 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 많다. 교육의 키워드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정직’, 중국은 ‘돈 벌기’, 프랑스는 ‘관용’, 그리고 영국인의 정중함과 예절은 '영국 신사'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훈적으로 늘 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딱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공부 잘 해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동사무소에서 등본, 초본을 떼고 있다. 게다가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대접 받지 못한다. 그러니 그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과연 대재난 속에서 어떠한 모습과 대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본은 싫어도 배울 게 참 많은 나라임에는 분명한 건 아닐까? 적어도 일본의 가정교육은 대인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보다는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일본 부모는 아이를 훈육하고 야단치면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한다. 또 공공장소의 예절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인사교육까지 완벽하게 시킨다. 그런 친절과 질서, 예의 바른 민족으로 각광받는 그들은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특히 ‘메이와쿠’를 교육한 이후에는 반드시 ‘오모이야리’(배려)를 가르친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이 말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게 되는데 ‘입장 바꾸어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이웃나라의 교육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저 내 자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공교육도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본래 한민족도 남을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문화가 ‘서당 문화’, 즉 ‘회초리’문화다. 김홍도 화백의 유명한 그림인 ‘서당그림’을 보면 회초리에 맞고 우는 학동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회초리’에는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회초리를 미리 준비한 훈장님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즉석에서 학동에게 구해오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학동은 회초리를 꺾어 서당으로 돌아오는 동안 죄에 대해 반성하게 되고 스승은 그 분을 삭이는 것이다.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체벌, 더 나아가 사제지간의 ‘정’까지 생기는 일종의 ‘배려 문화’가 존재했던 것이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본은 ‘애’보다는 ‘증’에 더 가까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배울 것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메이와쿠 문화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이겨낸, 그리고 대지진과 자연재해를 이겨낸 원동력이라면 우리에게도 뭔가 얻을 것이 있지는 않을까?

외국 관광지에서 단체로 몰려다니며 무질서를 보여주는 중국인들, 메이와쿠 문화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일본인들, 그 사이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본인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환영 받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들이 마냥 비판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은 애석하게도 외국인들이 “너희의 문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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