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파나소닉과 발뮤다의 공통점
발행인 칼럼/ 파나소닉과 발뮤다의 공통점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2.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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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1951년, 마쓰시타전기(松下電器: 지금의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당시 56세)이 미국 가전업계 시찰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앞으로는 디자인의 시대야”(これからはデザインの時代やで)

마쓰시타 회장이 미국 방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했던 듯하다. 그는 곧바로 회사 내에 디자인(제품의장과) 부서를 만들었다. 당시 업계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 디자인업계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궁금해서 원문에 가까운 글을 찾아봤다. 치바대학대학원 자연과학연구과 스기아먀 카즈오(杉山和雄) 교수가 2002년 한 회보에 기고한 글(제목:これからもデザインの時代)을 찾았다. 아래와 같다.

<1951年松下電器の松下幸之助が米国を視察し、帰国のタラップを降り立った瞬間、「これからはデザインの時代やで」と述べた話しは有名であり、直ちに社内に製品意匠課を設けたのがわが国における企業内デザイン部門の始まりである。>

대학 교수가 기고한 글이니, 믿고 넘어갈 일이다. 마쓰시타 회장이 디자인 부서를 만들고 나서 가장 먼저 개발한 제품은 뭐였을까. 바로 선풍기였다고 한다.

#. 2010년
그로부터 60년 후인 2010년 4월. 발뮤다(BALMUDA)라는 조그만 가전 회사가 선풍기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당시 2008년 말 불어닥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이 회사의 테라오 겐 사장은 “어차피 망할 거면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제품이나 한번 만들어보고 끝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모터 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출시한 제품이 초절전형의 그린팬(GreenFan)이라는 선풍기였다. 그런데 이게 빅히트(일반 선풍기의 7배인 35만원)했다. 무엇보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2011년 당시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여파로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계획 정전’을 실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2010년에 출시된 발뮤다의 초절전형(가장 약한 모드로 작동시켰을 때 3와트) 그린팬 선풍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자연에 가까운 바람(14개의 이중 구조 날개)과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쓰시타전기(파나소닉) 디자인 부서의 첫 제품과 도산 위기에서 발뮤다를 구한 첫 제품이 공교롭게 둘다 선풍기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일본 경영자 중 디자인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가전업계의 스티브 잡스’라 불릴 정도로 디자인에 철학을 가미한 테라오 겐. 두 사람은 디자인 측면에서는 서로 닮았다.

“앞으로는 디자인의 시대”라고 선언한 마쓰시타 회장의 말이 ‘디자인 경영’의 출발점이라면, 테라오 겐 사장은 ‘디자인 경영’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나소닉의 선풍기 개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7년 12만엔(120만원)의 ‘초초’고가 선풍기를 출시했다. 당시 언론(닛칸공업신문 2017년 8월 27일자) 기사는 이렇다.

<오랫동안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었던 선풍기이지만, 소비자 설문 조사 등에서 가장 부족한 요소로 디자인이 거론됐다. 그런 니즈에 부응한 파나소닉의 ‘린토’라는 선풍기는 짙은 갈색의 목조 디자인을 채용했다. 선풍기 개념을 뒤집은 상품으로 기대되고 있다.>

평범한 선풍기 디자인에 대대적인 혁신 작업을 했다는 보도다. 발뮤다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디자인 분야 저술가인 모리야마 히사코(守山久子)는 발뮤다의 지속적인 성공 요인으로 테라오 겐 사장의 ‘진화하는 디자인 경영의 법칙’을 꼽는다.

테라오 겐 사장은 과거에는 직접 제품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그린팬 출시 이후에는 한 발 물러나 전속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위임했다. 모리야마 히사코는 ‘0.1밀리미터의 혁신’(다산북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발뮤다는 주로 멋진 외형과 쾌적한 사용감을 중시하는 디자인에 공을 쏟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만큼 디자인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디자인적 요소를 억제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 한 가지 더. 발뮤다는 기업들 대부분이 사용하는 로고가 없다. BALMUDA라는 이름이 브랜드고, 디자인이 곧 브랜드다.

재팬올의 발뮤다 시리즈 1,2.3편 기사에 대한 넋두리(후기)가 좀 길었다. 정리하자. 과거의 마쓰시타전기(파나소닉)와 현재의 발뮤다가 가전업계를 넘어 기업 경영에 던지는 질문은 뭘까. 아마 이 한 문장이 아닐까.

디자인이 ‘답’이고 혁신이 ‘정답’이다.

여러분의 조직과 기업은 조직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기업을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가?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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