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경제학…일본인들 발길 잡는 북촌 한옥카페
골목 경제학…일본인들 발길 잡는 북촌 한옥카페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3.04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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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4차원'카페에서 콘서트를 즐기는 외국 손님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일본 언론사의 한 특파원은 주말엔 수도의 고즈넉한 곳을 걷는 습관이 있다. 서울에 온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습관은 버릇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그가 잘 다니는 곳은 삼청동에서 부암동에 이르는 종로구와 성북구다. 다른 지역보다 한옥 등 한국의 전통미가 상대적으로 더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는 늘 아쉽다고 했다.

“삼청동인 북촌을 예로 들면 말이죠. 한옥들의 내부를 좀 구경하고 싶은데, 모두 사람이 살고 있어서 들여다 볼 수 없더군요. 양해를 구하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일본의 문화가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하지 않아서 말이죠.”

한옥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는 그의 작은 바람은 얼마 전 이뤄졌다. 주말이 아닌 평일 북촌 일대를 잠시 걷다가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서 한 한옥카페를 발견하고서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골목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거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한옥카페가 하나 있더라는 것이다. 가게 이름이 ‘삼청동 4차원’이었다.

그는 그 한옥카페에서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한옥의 포근함에 잠시 젖었다고 한다. 한옥 상태가 깨끗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뒤늦게 그는 그 한옥 집이 140년이나 됐다는 걸 알곤 놀랐다고 했다.

이 가게의 주인은 한때 연예계에서 기획사를 했던 류태영(53) 대표다. 그는 글을 쓰는 기자와 중견가수 임병수씨의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바삐 돌아가는 연예기획사의 일을 접고 좀 더 느긋한 공간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2003년 선택한 곳이 어릴 적 터전인 종로구 일대, 지금의 삼청동 한옥카페다.

콘서트 사회를 직접보는 류태영 대표. 왼쪽은 시 전문 가수 원상은씨.

3월 2일 만난 류 대표는 일본 특파원을 예로 들면서 “사실 이 일대 한옥들이 대부분 가정집이다. 주말엔 사람들이 좁은 골목을 돌며 한옥 안을 기웃기웃하며 주인들을 불편하게 한다”며 “조용하게 살고 싶은 주인들의 심정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북촌 주민다운 말이다.

그런데 한옥 주인들이 집안을 꽁꽁 숨기면서 이상한 효과가 나타났다. 한옥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골목 안에 숨어있는 류 대표의 한옥카페를 삼삼오오 찾게 된 것이다. 특히 몇 해 전부터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잦다고 한다.

특히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일본 사람들이 많다. 낮에 이 가게 안쪽 커피 테이블에선 자주 일본어가 흘러나온다. 류 대표는 “전통 한옥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 우연히 골목 안으로 들어오게 된 손님 두 부류”라며 “찾아오는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한결 같이 ‘분위기가 좋다’고 말한다”고 했다.

“한옥의 통나무를 올려다보면 오래된 집처럼 보이지 않죠? 그런데 이 집이 140년 됐어요. 2~3년 마다 나무 사포질을 해서 묶은 때를 벗겨내기에 마치 늘 새 집처럼 보입니다. 그게 전통 한옥의 묘미죠. 기와도 마찬가지죠. 일본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커피 가격도 싸고(2000원), 빅 사이즈 둥근 잔에 나오는 커피 맛도 꽤 좋다고들 하세요. 거기다 한국의 전통 가옥 구조도 감상할 수 있어서요.”

그런데 류 대표는 요즘 고민이 많다. ‘북촌 문화 지킴이’로 나서고는 있지만, 이 일대의 상가 사정들이 좋지 않아서다. ‘임대’라고 써붙인 가게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물론 우리 지역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코 앞에 있는 청와대의 높으신 분들이 좀 와서 사정을 좀 알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이곳은 조선 왕실의 흔적이 남은 대표적인 전통거리가 아닙니까. 원주인이든 임대상인이든 맘 놓고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류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한 가지 일을 저질렀다. 한옥카페를 무료 전시 공간으로 빌려주기로 한 것. 대여 공간을 빌리기 어려운 작가들을 위해 서슴없이 자신의 가게를 내준 것이다.

'삼청동 4차원' 한옥카페 골목.

“공간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공간을 빌리려면 200~300만원은 족히 줘야 합니다. 경제적 상황이 안되는 작가들은 작품을 만들고도 전시에 엄두도 내지 못해요. 그런 작가들을 보면서 몇 해 전부터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손해 보는 일이지만, ‘문화 지킴이’로 나선 터라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실천에 옮겼습니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의외로 신청 작가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작가들이 2주 전시 기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알리는 기회가 되면 좋은거죠.(웃음)”

또 한가지. 류 대표는 매주 토요일 6시부터 카페 마당에서 작은 콘서트를 연다. 벌써 280회를 맞았다. 6년 넘게 ‘개근’해 오고 있다. 예전 연예기획사와 매니저 시절에 맺은 음악 지인들을 통해 가수들을 섭외한다. 가수들 또한 출연료 없이 무료로 공연 한다. 공연뿐 아니라, 북콘서트, 마술 공연, 비보이 공연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카리스마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주석렬씨.
카리스마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주석렬씨.

사회는 물론 ‘말발’ 좋은 류 대표가 직접 본다. 마당에 펼쳐진 콘서트장 관람객 중엔 외국 손님들이 늘 끼어있다. 원상은, 주석렬 가수가 출연한280회 공연엔 미국과 독일, 멕시코에서 온 남녀 젊은이들이 콘서트를 관람했다.

일본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하야시 마리코씨의 공연도 잦아졌다. 그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일본 가수다. 이렇게 무료 전시, 무료 콘서트를 하고 있는 류태영 대표는 일명 ‘행복 추구파’다.

“뭐 있습니까? 스트레스 덜 받고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아닙니까.”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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