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⑥/가부키와 주신구라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⑥/가부키와 주신구라
  • 재팬올(japanoll)
  • 승인 2019.03.0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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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극장.
가부키 극장.

 

이훈구 시나리오 작가가 재팬올에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인 대표입니다.

홍콩킹라이언필름(KING LION HONGKONG FILM)을 설립해 중화권 콘텐츠 수입과 제작도 하는 작가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영화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편집자주>

처음 ‘영화’는 일본에서 이류예술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았다. 가부키 배우들 역시 일류 예능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명맥을 유지해 왔기에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초 프랑스 영화가 문학, 이탈리아 영화가 오페라, 미국 영화가 ‘구체적인 시스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면 일본 영화는  일본의 4대 예술인 전통 가면극 노(能), 막간에 상연하는 희극 교겐(狂言), 인형극인 분라쿠(文楽, 人形浄瑠璃) 중 가장 으뜸이라 할 가부키가 기반이 되었다.

에도시대의 서민(町人)문화로 자리 잡았던 가부키는 일종의 음악극이면서 장인(匠人)다운 예(芸)를 연마한 종합예술이었다. 영화가 비록 전통극에 뿌리를 두기는 하지만, 가부키 예능인들이 볼 때 영화는 ‘흙탕 속의 연극(일명 도로시바이, 泥芝居)’에 불과했다. 따라서 배우들의 참여는 전무했다.

1897년 뤼미에르 형제사(社)의 두 촬영기사인 가브리엘 베이르(Gabriel Veyre)와 콩스탕 지렐 Constant Jirel)이 일본에 도착하여 당시 전무후무한 영화 딜러(concessionnaire)였던 이나바타 가쓰타로(畑勝太)와 합작으로 도쿄, 오사카, 교토, 고베에서 여러 편의 거리 풍경 영화(훗날 필름들이 재발견, 복구 되어 1995년 일본 영화 100주년 기념행사 때 상영됨)들을 찍었다.

이어 일본 스텝들을 중심으로 도쿄 화류계에서 ‘게이샤의 춤’을 촬영했지만 1898년에 가서야 비로소 가부키가 영화적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시바타 쓰케미치가 배우인 ‘9대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郎)와 ‘5대 오노에 기쿠고로’(尾上菊五郎)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단풍 구경’이라는 가부키 작품을 촬영한 것이다.

가부키를 영화적 소재로 삼은 데에는 몇 가지 상업적 고려도 있었다. 영화가 일본에 정착된 이후에도 관객 대부분이 어린이들 혹은 저학력 노동자들이었고, 지식인들은 이러한 ‘하급예술’인 영화관을 찾는 것을 꺼렸다.

또한 시스템을 처음부터 구축한 할리우드과 달리 일본은 ‘마키노’(牧野: 마키노 쇼조 가족으로 구성된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의 집안) 영화와 같이 가내수공업적인 영화들도 많았기 때문에 가부키는 가장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부키가 남자 배우들만이 등장하는 장르였고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배우인 ‘온나가타’(女形)가 전통적으로 여자역할을 연기해 왔기 때문에 1920년대 초반에서야 여자배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가부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은 ‘주신구라(忠臣蔵)’다. 일본 에도 시대에 벌어진 무사들의 복수 학살극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제작 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748년 만들어진 분라쿠 인형극을 가부키로 만들었는데 이를 다시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영화 ‘주신구라’다. 

주군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는 47명의 무사(浪人, Ronin)들의 얘기다. 80편 이상이 만들어졌는데 1912년을 기점으로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ᐅ‘일본 영화의 아버지’ 마키노 쇼조(牧野省三)가 1919년과 1928년 두 차례 제작.
ᐅ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 영화 ‘지옥문<地獄門>’으로 1954년 제7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의 첫 유성영화(1932).
ᐅ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영화 ‘우게쯔 이야기<雨月物語>’로 1954년 1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의 1941년과 1942년 2부작 시리즈.
ᐅ와타나베 구니오(渡辺邦男)의 1958년도 시네마 스코프.
ᐅ이나가키 히로시(稲垣浩: ‘미야모토 무사시’로 1954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무호마츠의 일생’으로 제10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의 1962년 작품.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등장했으며 가부키 배우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일생 동안 1000여 편 이상 출연한 일본 최초 국민배우 오노에 마츠노스케(尾上松之助)의 마지막 작품도 바로 '주신구라'다.

신의와 충성, 할복을 테마로 한 주신구라 시리즈는 고전 비극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 발단, 전개, 해결이라는 공식의 틀에서 발전해 나갔다. 프랑스의 ‘삼총사’만큼 사랑 받았으며, 1960년대까지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한편 영화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이래, 오노에 마츠노스케는 물론 수많은 명배우들을 배출하는 통로로 ‘가부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전통을 살리면서 대대로 가문에서 배우들을 배출하는 풍토의 결과물이다. 간략하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ᐅ일본의 명품 배우인 카가와 테루유키(香川照之) ᐅ사극 전문배우인 이치카와 가메지로(市川亀治郎) ᐅ무사역이 잘 어울리는 이치카와 에비조(市川海老藏) ᐅ다케우치유코(竹内結子)의 전 남편으로 더 알려진 나카무라 시도(中村獅童) ᐅ‘가부키계 아이돌’이자 마츠 다카코(佐橋隆子)의 오빠인 이치카와 소메고로(市川染五郎) ᐅ나카무라 칸쿠로(中村勘九郎)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中村七之助)형제 ᐅ나카무라 하시노스케(中村橋之助) ᐅ오노에 마츠야(尾上松也) 등이 그들이다.

가부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나카 아키오(たなか亜希夫)의 만화 ‘가부쿠몬’을 추천한다. 가부키 가문의 혈통이 아니면 주연을 맡기 힘든 가부키 세계에 뛰어든 ‘가문 없는 신쿠로’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가부키 명문인 나카무라 가문의 장남 소타로와의 연기대결이 흥미진진하다. 한국어 번역도 아주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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