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소닉과 산요는 ‘매형&처남’ 회사였다
파나소닉과 산요는 ‘매형&처남’ 회사였다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9.03.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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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파나소닉2)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가 누나의 중매로 ‘이우에 무메노’라는 여성과 결혼한 건 1915년이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무렵이다. 마쓰시타는 1917년 다니던 회사 ‘오사카전등’을 그만두고 독립해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를 세웠다.

직원은 아내와 처남 이우에 도시오(井植歳男), 달랑 세 사람이었다. 이듬해 3월 7일 오사카의 2층집을 월세로 빌려 ‘마쓰시타전기’라는 간판을 달았다. 당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23세, 아내는 21세, 처남 이우에 도시오는 15세였다.

마쓰시타전기가 오사카에서 만든 개량형 전기 소켓이 히트치자 도쿄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마쓰시타는 처남을 도쿄에 상주시키면서 도쿄 시장 개척에 나섰다.

마쓰시타가 비록 회사를 세우긴 했지만, 본가(本家)의 도움은 전무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마쓰시타가 독립하기 전에 사망했다. 2명의 형과 5명의 누나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마쓰시타가(松下家)의 피를 물려 받고 살아남은 것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 역시 몸이 약했다. 그런 탓에 아내와 처남 이우에 도시오에게 크게 의지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마쓰시타전기 역시 재벌해체 대상으로 지정됐다. 자산 동결과 오너 가족 경영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어쩔 수 없이 1947년 처남 이우에 도시오는 일부 공장과 직원 15명을 데리고 나와 별도의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가 한때 일본 가전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산요전기(三洋電機)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처남 이우에 도시오(1902~1969)가 산요전기의 창업주인 것이다. 마쓰시타전기와 산요전기는 이렇게 매형과 처남간의 인척회사였다.

마쓰시타는 독립하는 처남을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자전거용 발전 램프 제조권과 램프에 붙은 상표명 ‘내쇼날’ 브랜드를 쥐어줬다. 산요가 독립해서 처음 생산한 제품은 당연히 자전거용 발전 램프였다.

산요전기는 이를 기반으로 업계에 두각을 드러내며 업계 톱10 근처까지 도약했다. 특히 리튬이온전지 분야에서는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전성기 시절, 산요전기의 리튬이온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은 23%에 달했다. 8%대인 파나소닉과 비교하면 산요전기의 기술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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