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올이 일본 전문 중소 상공 여행사(랜드사)를 찾아가 인터뷰 합니다. ‘상생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생존을 위한 홍보에 애로를 겪고 있는 업체에겐 공간을 빌려주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업체는 기획전문회사와 협업하는 자리를 주선해 보려 합니다. 재팬올이 ‘상생 플랫폼’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죠.
그냥 인터뷰가 아닙니다. 인터뷰를 마친 여행사와 랜드사는 다음 인터뷰 대상을 추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OO여행, OO투어를 추천합니다”라는 식이죠.
여행사가 랜드사(또는 여행사)를 추천하고, 랜드사가 여행사(또는 랜드사)를 추천하는 ‘상생의 방식’입니다. 첫 인터뷰 대상은 성지순례 전문 랜드사인 아사히투어입니다. <편집자주>
명함 두 장을 받는 순간, 이름 뒤에 붙은 세례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요셉과 대건 스텔라. 이 세례명을 가진 두 사람은 한 집에 살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아사히투어 이주한(55) 대표 부부다. 이 대표는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을, 아내인 신성혜 실장은 김대건 신부님과 성모 마리아의 별칭 스텔라를 합친 '대건 스텔라'를 세례명으로 쓰고 있다.
3월 15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 있는 아사히투어의 사무실을 찾았다. 아사히투어는 일본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 랜드사다. 랜드(Land)사는 현지 수배업체, 현지 여행사를 말한다.
이주한 대표는 “여행사는 ‘상점’이고 랜드사는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며 “여행사가 전문 상품을 진열하는 상점이라면, 랜드사는 전문 상품을 만들어주는 공장”이라고 개념 정리를 해주었다.
아사히투어는 가톨릭 성당과 순교지가 몰려있는 나가사키현을 주대상으로 한다. 최근들어 홍보하고 있는 상품은 고토열도(五島列島)다. 열도는 가미고토(上五島)와 시모고토(下五島)로 나뉜다.
이주한 대표는 “혹시 기회가 되면 고토에 들러 ‘미사 의식’을 알리는 큰 소라 고동을 한번 불어보라”고 권했다.
나가사키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17세기 초 일본에 천주교를 전파한 신부님 이야기)의 배경지이다. 소설 ‘침묵’은 미국의 유명 감독 마틴 스콜세지에 의해 ‘사일런스’(Silence)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 결혼 1년 만에 IMF를 만났다
이주한 대표가 일본 전문 랜드를 시작한 건 2000년 무렵. 2007년부터는 천주교 성지순례로 방향을 잡아 ‘특화’했다. 그는 예전에 대형 여행사에서 유럽팀장으로 일했다. 거기서 11년 간 일하면서 탄탄하게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IMF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10년 넘게 업계에서 일했는데 제 능력이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 없다는 겁니다. 난감했죠.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제가 받은 충격 중에 가장 컸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직을 해야 했어요. 여행사를 다시 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 ‘그럼 랜드를 해볼까’ 생각했죠. 여행사보다는 랜드가 나을 것 같았죠.”
이주한 대표는 당시 일본 랜드와 인연을 맺고 있던 선배 회사에 합류했다. 그곳이 지금의 아사히투어다. 이후 이 대표는 회사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IMF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 신성혜 실장이 가슴 찡하게~ 한 마디 거들었다. “결혼하고 1년 만에 IMF를 만났어요.”
두 사람은 예전 여행사에서 부부 인연을 맺었다. 이주한 대표가 서울 본사, 아내 신성혜 실장이 부산 지사에서 일했다. 아내 신 실장은 이번엔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서울-부산 사내 커플 1호입니다.”
# ‘장벽 뚫기’…무모했지만 통했다
아사히투어가 성지 순례전문으로 특화한 사연은 뭉클했다. 원래 종교를 갖지 않았던 이주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성지순례 전문 여행사에서 일을 하나 받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더라구요. 자료를 뒤져서 공부를 했죠. 그런데 일이 계속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상품을 만들면 양심상 안되겠구나’라고. 종교(가톨릭)를 믿지 않고는 안될 지경이었습니다.”
아내 신성혜 실장은 “제가 남편을 데리고 성당에 갔다”고 말했다. 이주한 대표는 그렇게 성당 문을 넘었고, 집안이 불교였던 아내도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주한 대표의 ‘장벽 뚫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성지 순례 고객들이 천주교를 믿는 소비자들인만큼 성당의 신부님들을 공략해야 했다. 이 대표는 먼저 여행 상품을 소개한 간단한 인쇄물을 만들었다.
“인쇄물을 발송한 곳만 800군데가 넘어요. 반응을 보인 곳이 몇 군데나 되는지 한 번 맞춰보세요? (잠시 침묵) 5곳이었어요. 상품으로 이어진 건 2건. 성지순례는 종교적인 정서 때문에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사(여행사)를 쉽게 바꾸지 않는 특성이 있어요. 그걸 뚫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단 뚫고 들어가면 그 자체가 방어막이 되기도 합니다.”
이 대표의 인쇄물에 반응을 보여준 곳은 지방에 있는 산골 신부님들이었다. 이 대표는 기꺼이 그곳에 내려가 신부님 사택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친분을 맺었다고 한다. 그렇게 2곳이 5곳으로, 10곳으로 늘어났다. 신부님들의 추천과 입소문이 나면서다.
# 성지 순례 시장만의 특징이 있다
성지순례는 일반 여행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한번 시작한 요금은 잘 바꾸지 못합니다.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죠. 또 고객들의 ‘컴플레인’(불만)이 없는 것도 성지순례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가이드들도 모두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인데, 특히나 가이드 교육에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지순례 시장은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알찬 철옹성’이라고 한다. 대형 여행사들이 쉽게 장악하지 못하는 게 성지순례 분야다. 이주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분야는 대형 여행사에 다 넘어갔어요. 하지만 성지순례 분야는 그렇지 않아요. 고객들이 중소 여행사(랜드사)와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갑니다. 가톨릭 정서엔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로선 다행이죠.”
예전 대형 여행사에서 일했던 그이지만, 고객사(여행사)를 대하는 그의 자세엔 역시 ‘믿음’이 깔려 있다. “저한테 의뢰한 업체를 곤란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 제 철칙입니다.”
# 색깔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
여행업계 전체를 바라보는 이 대표의 고민도 커 보였다. 그는 “중간 규모 여행사들이 자생해야 업계가 건강한데, 완전히 몰락했다”며 “우리 같은 랜드사의 경우 ‘대형 여행사에 붙어서 가느냐, 특화를 하느냐’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이주한 대표가 마지막으로 업계에 던지는 조언은 특별하게 들렸다. “특색 없는 회사가 커지기만 하면 위험해 집니다. 회사를 아주 크게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나름의 색깔이 있어야 합니다.”
성지 순례, 일반 여행 문의: 아사히투어 02-736-6444.
(다음 인터뷰는 이주한 대표가 추천하는 여행사로 찾아갑니다.) <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