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이토록 연호에 집착할까?
일본은 왜 이토록 연호에 집착할까?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3.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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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점심 무렵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새 연호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연 아키히토 일왕이 물러나고, 왕세자 나루히토가 왕에 등극하면서 연호가 새로 바뀌는 것이다. 일본 역사에서 248번 째다. 

새 연호 발표는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 장관의 몫이다. 30년 전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가 그 역할을 맡았다. 일본 연호의 역사와 특징, 존속 찬반론자들의 의견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1989년 1월 7일, 일본 국민과 매스컴들은 온통 이 남자의 입에 주목하고 있었다. 쇼와(昭和) 국왕의 사망(87세)으로 일본의 새로운 연호(新元号)를 발표하는 기자 회견장이었다. 일본에서는 연호(年号)를 원호(元号)로 표기하고 ‘겐고’라고 읽는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연호를 발표한 이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관방장관이었다. 그는 국민들 앞에 평성(平成: 헤이세이)이라는 새 연호가 적힌 액자를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따라시이 겐고와 헤이세이데 아리마스”(새로운 연호는 헤이세이입니다)라고 발표했다.

평성에는 ‘국가에도 천지에도 평화가 달성되도록 한다’(国の内外にも天地にも平和が達成される)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올해 2019년은 평성 31년이 되는 해다.

연호 발표로 주목을 받은 오부치에게는 당시 ‘헤이세이 장관’(平成長官), ‘헤이세이 아저씨’(平成おじさん)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연호 발표가 일본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오부치는 9년 뒤인 1998년 7월, 85대 총리에 올랐지만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한때 ‘식은 피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오부치의 발표는 한 시대의 ‘마지막’과 새 시대의 ‘개막’을 동시에 의미했다. ‘마지막’은 쇼와 국왕의 63년(1926년12월~1989년 1월)에 걸친 치세가 막을 내린 것을 말한다. ‘개막’은 그의 아들 평성 국왕인 아키히토의 새로운 시대를 뜻한다.

아키히토 국왕은 아버지가 87세까지 장수하면서 56세의 늦은 나이에 왕위를 물려 받았다. 올해로 즉위 30년을 맞았다. 아키히토 국왕이 돌연 ‘생전 퇴위’ 의향을 밝힌 것은 2016년 8월이다. 그 2년 7개월 후인 4월 1일, 거의 2세기 만에 국왕의 사망이 아닌 생전 퇴위가 이뤄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루히토 왕세자가 환갑이 가까워서야 왕위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루히토는 올해 58세다. 아버지가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 보다 두 살 더 많다.

현재 전 세계에서 연호를 사용하는 국가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물론 북한이 김일성 생일인 1912년을 주체(主体) 원년으로 삼아 연호를 쓰고 있기는 하다. 대만도 중화민국 건국 해인 1912년을 원년으로 민국(民国)이라는 연호를 사용한다. 하지만 북한, 대만의 연호는 일본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중국의 경우는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연호가 자취를 감추었다.

세계 역사에서 연호가 처음 선을 보인 건 기원전 140년, 중국 전한 한무제 때다. 최초의 연호인 ‘건원’(建元)이 탄생한 것. 그럼, 일본에서는 연호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서기 645년 36대 고토쿠(孝徳) 국왕(재위 645~654) 때의 일로 전해진다. 고도쿠 국왕은 당시, 권신 소가씨(蘇我氏) 일족을 제거하고 국왕의 지위를 회복하면서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당나라 제도를 모방한 당시의 치세 변혁기를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다이카(大化)에서 출발한 일본의 연호는 현재의 헤이세이(平成)에 이르기까지 247개가 사용됐다. 특히 메이지 국왕 이후에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즉, 한 국왕의 시대에 한 개의 연호만 사용됐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 이전에는 한 국왕의 시대에 2개의 연호도 사용 가능했다는 것이 된다. 과거 연호 교체에 대해 일본의 한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8~9세기에는 천황에게 진귀한 거북이가 진상되거나, 아름다운 구름이 출현하는 등 경사를 계기로 연호를 바꾸기도 했다. 10세기부터는 재해 등을 이유로 연호를 바꾸는 일이 많아졌다. 또 무사들이 집권한 가마쿠라 막부와 에도시대 경우에는, 천황의 치세 교체기에 연호가 형식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무사 정권이 결정한 연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일각에서는 연호 폐지론자들도 있다. “연호가 국민주권 원칙과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폐지 반대론자들은 “연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연호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주장한다. 찬반을 떠나 “연호는 일본문화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 부류도 있다. 분명한 건, 일본에서 연호가 사라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 정부는 새 연호에 대해 철통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여러 가지 ‘예상 후보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안’(安) 자를 많이 꼽고 있다. 편안한 세상을 희망하는 바람일 것이다. 연호에 사용되는 단어는 ‘국민들의 이상을 담은 단어일 것, 한자로 두 자일 것, 쓰기 쉬울 것, 읽기 쉬울 것 등’을 고려해야 한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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