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립도서관’에서 확인한...‘암호 같은’ 일본 연호
‘경성부립도서관’에서 확인한...‘암호 같은’ 일본 연호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9.04.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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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올이 새 연호 ‘레이와’(令和)의 원전인 만엽집 5권을 남산도서관 서고에서 직접 찾아봤다.

일본 정부가 4월 1일,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를 확정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은 30년 간 이어온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마감하고 레이와 시대를 열었다. 레이와의 출전(出典)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詩歌集)인 만엽집(萬葉集: 만요슈)이다.

레이와의 한자(令和)는 만엽집의 ‘초춘영월 기숙풍화(初春令月, 氣淑風和)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지금까지 일본 연호는 중국의 고전에서 따왔지만, 이번에는 일본의 시가집에서 발췌했다.

그렇다면 만엽집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만엽집은 총 20권 4516수로 구성된 방대한 시가집(詩歌集)이다. 일본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작품으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고향의 집합체로서 받들고 있다고 한다.

서기 347년부터 759년까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실제로는 두루마리 체재이지만 편의상 권이라고 부른다. 일왕의 가족~서민에 이르기까지 작가층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경성부립도서관'이라고 도장이 찍혀 있다. 인쇄년도는 '소화 6년'(1931년). 책은 만엽집 4,5,6합권이다.
'경성부립도서관'이라고 도장이 찍혀 있다. 인쇄년도는 '소화 6년'(1931년). 책은 만엽집 4,5,6합권이다.

만엽집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2가지 설로 집약된다고 한다, 첫째는 ‘엽’(葉)을 시가(詩歌)로 해석해 ‘많은 시가를 모은 책’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둘째는 ‘엽’을 대(代), 세(世)의 의미로 해석해 ‘만세에까지 영원히 전해져야만 할 가집(歌集)’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고용환, 강용자 저 ‘만엽집’)

메이지시대 학자들에 의해 ‘신편국가대관’(新編國歌大觀)이라는 것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이에 노래마다 번호를 붙였는데, 이때 매겨진 번호가 4516수이다. 오늘날은 이 번호가 노래의 번호로서 널리 쓰이고 있다.(강용자 저, ‘만엽집 읽기’)

‘레이와’(令和)라는 말은 만엽집 20권 중 5권에 등장한다. 재팬올이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그 만엽집 원전을 직접 찾아봤다. 재팬올은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남산도서관을 찾았다.

검색 결과, ‘교본만엽집(校本萬葉集) 20권’이 서고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출불가 책이라 신분증을 맡기고 레이와의 원전인 5권을 빌렸다. 한 눈에 봐도 책은 상당히 낡고 오래돼 보였다.

출판 연도를 확인해 보니,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사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이 소화 8년(1931년)에 발간한 것으로 돼 있었다. 경성부립도서관 도장도 찍혀 있었다. 남산도서관은 1922년 개관한 일제강점기의 경성부립도서관이 전신이다.

만엽집 5권 매화 노래(32수) 부분.

페이지를 넘기며 한참을 읽어가던 중 65쪽에서 눈이 멈췄다. ‘매화가삼십이수 서’(梅花歌三十二首 序)라는 글이 보였다. 5권에는 매화 노래 32수가 담겨있는데, 전체 20권 4516수 중에서 815~846수까지가 해당한다. 매화 노래가 시작하는 815수가 65쪽에 해당한다.

책을 좀 더 살펴보니 ‘매화가삼십이수 서’의 왼쪽에 ‘천평이년정월삼십일췌우사노지택신연회’(天平二年正月十三日萃于師老之宅申宴會) ‘야우시초춘령월 기숙풍화매피경전지분’(也于時初春令月 氣淑風和梅披鏡前之粉蘭)이라는 긴 문장이 등장했다.(사진 참고)

레이와의 令(령)과 和(화)는 ‘야우시초춘령월 기숙풍화매피경전지분’(也于時初春令月 氣淑風和梅披鏡前之粉蘭)이라는 문장에 숨어 있었다. 이 문장은 ‘새봄 영월(상서롭고 좋은 달)에 기운은 맑고 바람은 잔잔하며, 매화는 거울 앞에 하얗게 피었으며 난초는 향을 피운다’라는 뜻이다.

일본 언론의 호외.

실제 원전을 확인하고 보니, 상당히 긴 문장(天平二年正月十三日萃于師老之宅申宴會也于時初春令月 氣淑風和梅披鏡前之粉蘭)에서 연호를 발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암호처럼.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장에서 레이와에 대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화합하는 가운데 문화가 자라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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