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나무
'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나무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4.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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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올이 ‘야쿠시마 사진전’ 개최(5월 31일~6월 13일, '삼청동 4차원') 사전 작업으로, ‘야쿠시마 B컷 에세이’를 연재 중입니다. 야쿠시마 사진 한 장에서 뽑아올린 단상(斷想)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진하게 우려낸 녹차 빛깔.
숲의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온통 녹색 천지입니다. 이방인에 불과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웁니다.

키 작은 나무들은 발 뒤꿈치를 들고, 굽거나 휘어진 나무들은 목을 쭉 뺀 채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혹시 생채기나 내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숲 사진을 보면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차(茶)를 한잔 끓여 마십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매일 매일 좋은 날)이라는 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영화는 차(茶)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행복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일본 국민배우 기키기린(樹木希林, 본명 우치다 게이코)이 주인공이죠.

비록 가명이지만 기키기린의 이름에는 나무와 관련된 한자가 3개(樹,木,林)나 들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기키기린은 죽어서 아마 나무가 되지 않았을까?”

기키기린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츠마비파(薩摩琵琶) 연주자였습니다. 사츠마(薩摩)는 일본 최남단 현인 가고시마현의 옛 이름입니다. 사츠마비파는 옛날 가고시마에서 일본 전역으로 전해진 전통 현악기입니다. 숲의 고향 야쿠시마는 이 가고시마에 속해 있는 섬입니다.

기키기린은 어릴 적 아버지의 사츠마비파 연주를 들으며 자랐을 겁니다. 그의 뇌리엔 늘 사츠마(가고시마)라는 곳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죽어서 가고시마(야쿠시마)의 나무가 되겠다는 희망(希: 기키기린 이름의 3번째 한자)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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