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뿌리
‘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뿌리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4.1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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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올이 '야쿠시마 사진전 개최'(5월 31일~6월 13일, 삼청동4차원) 사전 작업으로, '야쿠시마 B컷 에세이'를 연재중 입니다. 야쿠시마 사진 한 장에서 뽑아올린 단상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수백 년 전 어느 해 봄날.
땅 속이 답답했던지, 몇몇 뿌리 녀석들이 땅을 뚫고 올라 왔습니다.
처음 보는 양지(陽地)의 모습에 반한 이들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걸 깜빡 잊고 맙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습니다.

“얘들아, 실컷 놀았으니 이제 땅 속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모진 겨울 추위에 땅이 얼어붙어 파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뿌리들은 땅 위의 세계에 눌러앉고 맙니다.

“기왕 땅 위의 나라에 ‘귀화’(歸化)를 했으니 주인(삼나무)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어떨까?”
“어떻게?”
“매년 저 멀리 동지나해(East China Sea)에서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잖아.”
“그게 뭐 어때서?”
“주인님이 숲을 지켜주듯이, 우리도 주인님을 지켜주는 건 어때?”

뿌리들은 그때부터 주인이 폭풍우에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모았습니다. 대왕문어의 빨판처럼 땅에 몸을 붙이고 버티면서 주인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수백 년.
뿌리들의 몸은 삼손(Samson)의 팔뚝에 솟아오른 굵은 힘줄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 힘줄을 지금 사람들이 밟고 숲으로 올라갑니다. <에디터 이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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