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일본에서 찾아온 뮤지컬 팬들
발행인 칼럼/ 일본에서 찾아온 뮤지컬 팬들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4.29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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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로니 김철호(왼쪽)와 박진우. 대학 동기인 둘은 오랜 친구 사이다.
뮤지컬 배우 로니 김철호(왼쪽)와 박진우. 대학 동기인 둘은 오랜 친구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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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초년병 시절,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가장 먼저 통성명을 나눈 연예인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였다. 동기 둘과 함께 문화부 고참 선배를 따라 갔다가 최씨의 공연을 보고 가벼운 맥주 뒷풀이를 함께 했다. 그땐 뮤지컬이 지금처럼 인기 분야도 아니었고, 최정원씨 역시 지금과 같은 최정상급도 아니었다. 1995년 겨울의 일이다.

당시 몸 담았던 회사가 매년 한국뮤지컬대상이라는 행사를 개최했기에 뮤지컬 배우들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지 않다. 요즘엔 뮤지컬 배우들의 안방 나들이도 많아진 게 사실이다. 연예 프로그램, 드라마 등에서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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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뮤지컬 전용 무대가 아닌 ‘작은 공간’에서 팬들과 만나는 배우들도 있다. 4월 2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카페 ‘삼청동4차원’에서 마주한 두 배우도 그랬다. 뮤지컬 배우 겸 가수 로니(Ronnie) 김철호와 박진우(39)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을 다녔고, 전공도 같고, 게다가 뮤지컬로 뭉친 오랜 ‘절친’(친한 친구)이다.

한옥카페 ‘삼청동4차원’에선 매주 토요일 마당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주인장 류태영 대표가 가수들을 섭외하고, 가수들은 무료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공연을 펼친다. 이날은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가 뮤지컬 노래로 색다른 무대를 꾸몄다. 로니 김철호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섬세하다면, 박진우는 경쾌하고 흡인력이 강하다.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는 ‘참 예뻐요’(창작뮤지컬 ‘빨래’ 중), ‘나를 태워라’(뮤지컬 ‘이순신’ 중)
‘지금 이 순간’(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중) 등의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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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날 박진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일본 여성 관객 두 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자는 공연 전 50대의 이 여성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요코하마에서 왔다는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공연 마지막 무렵, 박진우가 ‘나를 태워라’의 <먼 옛날 아주 먼 옛날 남쪽 해안에 거북이가 살고 있었네~>라는 도입부를 부르자 마유미씨가 작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물었다.

“저 노래 제목이 뭐죠”(마유미씨)
“굳이 붙이자면 ‘오레오 모야스’(おれをもやす: 나를 불태우다) 정도 되겠죠”(기자)
“아 그렇군요. 듣고 보니 그런 분위기가 좀 나는 것 같아요.”(마유미씨)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마유미씨는 앉아서 차분하게, 유코씨는 신이 난 듯 일어서서. 마유미씨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가방에서 하얀 색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했다.

공연 도중 ‘몰래 카메라’ 같은 순간도 있었다. 막간의 토크 타임, 박진우가 아무것도 모른 체 관객을 향해 “가장 멀리서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라는 멘트를 날렸다. (기자가 옆에서 귀띔을 해주자)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손을 들며 “요코하마”라고 대답을 했다. 박진우의 입에서 “오~”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냥 한국 관광을 하다 우연히 들렀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프라이즈 만남’이 이뤄졌다. 

박진우가 일본 팬들에게 CD선물을 전해주고 있다
박진우가 일본 팬들에게 CD선물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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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 공연이 끝이 났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하는 박진우와 일본 손님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순간, 박진우는 깜짝 놀랐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그냥 이곳 북촌 일대를 지나가다 공연에 들른 게 아니었다. 박진우는 자신의 공연 내용이나 일상을 ‘인스타’에 자주 올리는데,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그걸 보고 찾아 왔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박진우의 입에서 웃음과 놀라움이 섞여 나왔다. 큰 무대의 환호에 익숙한 그이지만, 일본 팬들 앞에서는 수줍은 배우였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공연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로니 김철호와 박진우, 두 친구의 공연에 일본인 두 친구들은 행복해 보였다. 환해진 표정의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좋았어요, 좋았어요”라며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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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이든 일본 팬이든, 이런 팬들 하나 하나가 모여 크게는 ‘팬덤 현상’을 불러 오는 법이다. 팬덤은 장소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팬덤은 경제와도 직결된다. 북촌 일대는 상권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눈에 띄게 공실도 늘었다.

이런 기대를 해본다. 공연을 즐겁게 본 마유미씨와 유코씨가 북촌 일대 상가에서 ‘더 즐겁게’ 지갑을 열지는 않을까. 다음 방문 때는 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을 방문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유미씨와 유코씨는 사전 기자에게 “우리 얼굴 정면 사진은 SNS에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름 역시 가명이다.)

뮤지컬 ‘삼총사’의 히어로 박진우는 5월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안나 카레니나’(5월 17~7월 14일)에서 스티바 오블론스키 역을 맡았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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