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올이 ‘야쿠시마 사진전 개최’(5월 31일~6월 13일, 삼청동4차원) 사전 작업으로, ‘야쿠시마 B컷 에세이’를 연재중 입니다. 야쿠시마 사진 한 장에서 뽑아올린 단상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숲과 맞닿은 일차선 도로를 가다보면 중간중간 원숭이 무리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날은 비가 제법 뿌렸습니다. 급했던지, 비를 피하기 위해 도로 함석판 밑으로 원숭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습니다.
맨 왼쪽 원숭이만 눈을 부릅뜨고 있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오든 말든, 사진을 찍든 말든 딴청을 피우고 있습니다. 정면을 향한 원숭이가 5마리. 등을 보이고 있는 원숭이가 2마리, 엄마 품에 안긴 아기 원숭이가 1마리. 모두 8마리입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왠지 짠해 보입니다. 쓰고 있던 우산을 빌려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야쿠시마에는 흔히 ‘사슴 2만, 원숭이 2만, 사람 2만’이 산다고 말합니다. 야쿠시마에서 만난 향토학자 나가이 사부로(長井三郞, 78)씨가 사인까지 해준 ‘야쿠시마발, 청경우독(屋久島発, 晴耕雨読)이라는 책에는 “산 정상 부근에는 사슴들이, 산 중앙에는 원숭이들이,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나가이 사부로씨는 와세다대를 나온 엘리트임에도 고향 야쿠시마로 내려와 자연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책에서 “1960년대까지 야쿠시마에서는 원숭이가 ‘산의 대장’(山の大将)이라고 불렸다”고 썼습니다.
그랬던 ‘산의 대장’이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1000마리 이상이 포획돼 열도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동물원용이 아닙니다. 교토대학영장류연구소를 통해 전역으로 보내져 장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등 의료 실험용으로 쓰였다는군요. 야쿠시마 원숭이들이 많이 포획된 건, 이곳 사냥꾼들이 산 채로 포획하는 기술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읽고 비를 피하는 원숭이들 사진을 다시 보니, 더 짠해집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야쿠시마엔 비가 내릴테고, 또 다른 원숭이 무리들은 비를 피하며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고 있겠죠. 아마도.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