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에 코 빠뜨릴 뻔’했던 총리의 말실수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뻔’했던 총리의 말실수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8.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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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 그 반대로, 그 말 한 마디가 화근이 되어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일 두 나라 정상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과거 중국과 일본 정상간에는 이런 말실수 사건이 있었다.

1972년 9월 25일 늦은 아침, 베이징공항에 일본항공 특별기가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온 주인공은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1918~1993)였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내각 출범(7월 7일) 두 달 만에 중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중국으로 달려갔다. 9월 29일, 중국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사이에 국교가 수립됐다. (당시 실권자는 마오쩌뚱)

그런데 당시 다나카 총리는 환영만찬 자리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 일본이 (과거) 중국국민들에게 큰 폐를 끼쳤다”며 메이와꾸(迷惑)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사실, 메이와꾸는 중국에서는 반성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단어다. 다나카 총리의 이런 발언은 두 나라의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뻔했다.

만약 마오쩌뚱과 저우언라이가 다나카 총리의 발언에 분개해 ‘판’을 엎었더라면, 중일간 국교는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지도자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면서 다른 방법을 택했다. 바로 선물이다.

다나카 총리는 방중 기간인 9월 27일 중남해에 있는 마오쩌뚱(모택동) 주석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마오쩌뚱은 다나카 총리에게 방문 기념으로 ‘초사집주’(楚辞集注)라는 책을 선물했다. 중국학자 주자(朱子)와 시인 굴원(屈原) 등의 작품을 모은 ‘초사’(楚辞)에 주석을 단 6권짜리 책이었다.

마오쩌뚱이 이 책을 선물한 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메이와꾸(迷惑)의 어원이 담겨있다는 설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우언라이는 다나카 총리와 헤어지면서 “자자손손 우호를 이어가자”고 덕담 했다.
​다나카 총리는 귀국 후 중국의 고전을 모은 ‘신석한문대계’(新釈漢文大系)라는 책에서 ‘메이와꾸’에 대한 대목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다나카 가쿠에이는 비상한 머리에 결단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중일 국교정상화라는 명(明)의 치적과는 달리 ‘어둠의 쇼군(闇將軍)’으로 군림하며 금권정치를 펼치는 암(暗)도 있었다. 심지어 미국 록히드사 여객기 도입에 연루, 수뢰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그런 다나카였지만 중국에서 했던 발언(메이와쿠)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스스로 깨닫고 죽었다. 죽기 전 도쿄의 그의 자택에 장쩌민(강택민) 등 중국 정치인들이 병문안까지 왔다.

현재 마오쩌뚱이 선물한 ‘초사집주’는 ‘다나카 가쿠에이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다나카 총리는 방중 4년 뒤인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몸은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마음은 석산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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