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일본이 리더를 키우는 법
발행인 칼럼/ 일본이 리더를 키우는 법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10.04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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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이든, 스포츠 세계든, 절대강자란 없는 법이다. 럭비 월드컵(9회 대회)으로 들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올해 1월 2일 열린 전국대학 럭비선수권 준결승전. 이날 ‘대사건’이 일어났다. 9년 연속(2009~2017) 무적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테이쿄대(帝京大)의 연승에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테이쿄대는 간사이 리그 챔피언 텐리대(天理大)와의 경기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9년 전 첫 우승하던 날로부터 3279일 만에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는 충격중의 충격이었다.

테이쿄대(帝京大) 9년 연속 대학 럭비 '절대강자'
일본 대학에선 전통적으로 게이오, 와세다, 메이지, 도시샤, 텐리대 등이 럭비 명문으로 꼽힌다. 그런데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곳이 바로 테이쿄대다.

이 학교가 처음부터 강자였던 것은 아니다. 테이쿄대는 원래 간토 지방 대항전의 단골 하위팀으로, 절대약자였다. 1996년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이와데 마사유키(岩出雅之) 감독이 부임하기까지는 그랬다.

이와데 마사유키의 조련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08년 45회 선수권부터다. 테이쿄대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전통 강호 와세다대에 패했다. 기적은 이듬해부터 이어졌다.

2009년 46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테이쿄대는 9시즌 연속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학교의 이름에 들어간 한자(帝)처럼 '제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매년 전력이 바뀌는 ‘학생 스포츠’에서 연승 군단을 만드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그걸 9년 동안 해냈다. 일본 스포츠계는 그의 전략전술을 두고 ‘제왕학’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
이런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이 냉철한 승부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리더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 스포츠 매체(산스포 1월 9일자)에 따르면,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럭비만으로 살아갈 선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대부분의 부원들은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ラグビーだけで生きていける選手もいるが、それはほんの一握り。ほとんどの部員たちは、ラグビー以外の人生で勝者になってほしい)

이 말을 두고 한 스포츠 기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무적의 테이쿄대 럭비부지만, 졸업생 대부분은 한 명의 사회인으로 인생을 걸어간다. 중요한 것은 연승 군단이라는 직함이 아니라 직장에서 신뢰받고, 동료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걸 지휘관(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강해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되길 부원 전원에게 요구해 왔다. 재능 있는 선수도,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결코 대충하지 않고 묵묵히 플레이를 계속하는 것이 테이쿄대 스타일이다.>

‘왜 인사부는 럭비부 출신자를 좋아하는가’
테이쿄대 럭비 부원들의 사회 첫발은 어떨까. 일본 기업은 인사 채용에서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한 럭비부 출신들을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야구보다 우선 순위다) 협동심과 조직의 힘을 배우는 경기 특성 때문이다.

럭비의 발상지 영국에서도 럭비는 리더를 키우는,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스포츠로 여겨져 왔다. 과거 영일동맹(1902년)을 맺는 등 영국과 강한 유대감을 가져온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럭비를 육성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재계에는 럭비부 출신 CEO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취업 분위기를 반영하듯 ‘왜 인사부는 럭비부 출신자를 좋아하는가’(なぜ人事部はラグビー出身者を好むのか)라는 매체의 기사도 있다.(일본어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종주국 영국이 럭비로 리더 키우던 것처럼, 일본도
다시 ‘럭비 월드컵’. 1987년 1회 대회를 시작한 럭비 월드컵은 이번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열렸다. ‘아시아속 유럽’을 추구하는 일본이 들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쿄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대대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멤버 31명 중 ‘절대강자’ 테이쿄대 출신자가 7명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9년 연속 우승하다 덜미를 잡힌 테이쿄대 이야기는 적잖은 교훈을 주고도 남는다. 절대강자도 패배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 이는 절대약자도 승리하는 날이 온다는 걸로 바꿔 말할 수 있을 터.

아울러 “럭비 이외의 인생에서 승자가 되길 바란다”는 테이쿄대 이와데 마사유키 감독의 말도 무겁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일본이 리더를 키우는 법,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에디터 이재우(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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