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선구자들/ 지하철의 아버지
일본의 선구자들/ 지하철의 아버지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3.06.1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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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2월 도쿄에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 탄생
하야카와 노리츠구(早川徳次)라는 철도인의 집념
세계 최초로 지하철 만든 영국 시찰 후 건설 결심

「도쿄에 지하철을 만들자(東京に地下鉄をつくろう)」

1914년 영국 철도교통을 시찰하던 한 일본 사내는 런던의 지하철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상의 번잡함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선 제시간에 달리는 지하철에 감동했던 것. 그는 일본에 지하철을 만들 결심을 하며 그렇게 외쳤다.

훗날 일본 '지하철의 아버지'(地下鉄の父)로 불리게 되는 이 사내의 이름은 하야카와 노리츠구(早川徳次:1881~1942)였다. 1908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그가 택한 직장은 만철(満鉄)이라 불리던 ‘남만주철도’였다.

이후 철도원에 들어가면서 철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철도원의 촉탁사원으로 서양의 철도를 시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

그는 첫 방문지였던 런던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런던의 지하철은 일정한 노선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심지어 템즈강은 잠수 터널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하야카와가 귀국하던 1916년의 도쿄 인구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5~1920년 사이, 도쿄의 인구는 280만 명에서 5년 새 80만 명 이상 불어나 교통 혼잡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런던 지하철의 유용성과 선진성을 목격한 하야카와는 지하철 건설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하철 건설을 해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기술과 지식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도쿄는 바다에 가까워 지반이 약해 무리다”(東京は海に近い軟弱地盤だから無理だ), “지하에 전차가 달리다니 우스운 일”(地下を電車が走るなんてそんな滑稽な)이라며 다들 부정적이었다.

일본 '지하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야카와 노리츠구(早川徳次). 1927년 그의 주도로 건설된 일본, 동양 최초의 지하철 개통 당시 모습(우에노역)

 

이에 화가 치민 하야카와는 스스로 지반 조사에 나섰다. 그는 도쿄의 교량과 지층 그림을 가지고 다니며 ‘도쿄의 연약한 지반은 지표로부터 210m~240m 정도에 지나지 않고, 그 아래에는 단단한 지층이 있다’고 확신했다. 또 색이 다른 여러 종류의 콩을 사용해 그 콩의 숫자로 교통량을 조사했다.

지반의 안전성을 확인한 하야카와는 독자적으로 자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1917년 도쿄경편지하철도(東京軽便地下鉄道)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철도전문가들과 기업인 등에게 지하철의 필요성을 전파한 끝에 1920년 도쿄지하철도주식회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1925년 역사적인 우에노역~아사쿠사역 구간 공사가 착수됐다. 원래는 우에노역 ~신바시역 사이 5.8km를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경기 침체와 관동대지진(1923년)의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우에노~아사쿠사선(현재의 긴자선) 2.2km를 건설하게 됐다.

1927년 12월 초 마침내 시운전이 이뤄졌고 12월 30일 ‘1000형’(形)이라 이름 지어진 차량이 일본(아시아) 최초의 지하철 구간을 달리게 됐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런던에 탄생한 것이 1863년, 그 64년 후에 일본에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 하야카와의 나이 46세였다.

승객들의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개통 첫날 오전에만 4만명 이상의 승객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광경을 본 하야카와는 지하철 노선의 확대를 절감했다. 곧바로 우에노~신바시역 사이의 공사에 착수, 1934년 아사쿠사역~신바시역 사이 8km가 개통했다.

하야카와가 심혈을 기울인 지하철 사업은 1941년 설립된 ‘제도고속도교통영단’(帝都高速度交通営団)에 양도되었다. 이 회사는 줄여서 에이단(営団), 운영 노선은 ‘에이단 지하철’이라고 부른다. 도쿄 긴자역엔 하야카와 노리츠구의 인물상이 세워져 있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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