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지진과 영국 지진학자 존 밀른
홋카이도 지진과 영국 지진학자 존 밀른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8.09.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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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벽 홋카이도 삿포로 남동쪽 66km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7)으로 최소 37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직접적인 지진 피해를 겪지 않았던 곳이라 충격은 더 컸다.

그런데 홋카이도에는 한 영국 지진학자와 일본여성 부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영국 BBC, 국제지진센터, 일본 지진공학회, 일본 매체 등을 통해 그 스토리를 소개한다.

2013년 7월 31일, 영국 BBC는 한 인물을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존 밀른(John Milne:1850~1913)이라는 영국 지진학자였다. ‘현대 지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진계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BBC가 기사를 보도한 날은 존 밀른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존 밀른은 1913년 7월 31일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존 밀른은 영국보다 일본에서 더 존경을 받았다. 그가 20년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 지진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존 밀른은 1850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런던대학 킹스칼리지 응용과학부(Department of Applied Sciences)에 들어간 그는 지질학, 수학, 기계학, 광산학 등 다양한 공부를 했다. 이후 지질학과 광산학 전문인 왕립광산전문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23세에 지질학과 광산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질 연구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1875년 스물다섯 살의 밀른은 영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인생의 대전환점이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년)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일본 당국은 선진 학문을 받아들이기 위해 도쿄에 제국공대(Imperial College of Engineering)를 설립했다. 밀른은 그 학교의 지질학 교수로 초청 받았다. 제국공대는 기술전문학교로 성장해, 도쿄대학에 흡수됐다.

밀른이 일본에서 당초 몰두했던 것은 화산 연구였다. 그는 일본의 50여 개 화산에 올라 관측한 후 “화산활동은 지진의 원인과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밀른은 1880년 2월에 발생한 요코하마 지진을 계기로 지진학자로 변신했다. 더 나아가 밀른은 제국공대에 와 있던 영국 출신의 학자들과 일본지진학회를 설립했다.

밀른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은 1878년이다. 쿠릴섬으로 탐사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는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 들렀다. 이곳의 한 사찰에서 밀른은 자신의 반려자를 만났다. 호리카와 토네(堀川トネ)라는 일본 여성이었다. 토네의 아버지는 사찰의 주지였다. 밀른과 토네는 3년간의 ‘원거리 연애’를 거쳐 1881년 결혼했다. 밀른이 일본에 간지 6년째 되던 해였다.

밀른에게 불행이 닥친 건 일본 체류 20년째인 1895년이었다. 그의 집과 실험실에 큰 불이 나 연구 실적과 기기들이 한꺼번에 재로 변한 것이다. 낙담한 밀른은 아내와 함께 영국으로 귀국을 결정했다. 20년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은 것. 그의 일본인 조수 시노부 히로타도 함께 했다.

밀른이 비록 일본을 떠나기는 했지만, 일본의 지진학은 그로 인해 꽃을 피웠다. 일왕은 공로를 인정해 밀른에게 일본훈장(Order of the Rising Sun)을 수여했다. 일찍이 외국학자들이 받아본 적이 없는 훈장이었다. 밀른은 일왕으로부터 평생 동안 연금을 받는 행운까지 누렸다. 영국에 정착한 7년 후인 1902년, 도쿄대학은 밀른에게 명예교수직을 줬다.

영국 남부 아일오브와이트(Isle of Wight)에 터를 잡은 밀른은 자신의 연구실을 전 세계 지진학의 중심지로 키워 나갔다. 그의 연구실엔 전 세계 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밀른은 1913년 7월 31일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다음 날인 8월 1일 ‘런던 데일리 미러’지는 1면에 밀른의 부음을 전하면서, 제목을 활자가 아닌 ‘지진파 모형’으로 대신했다.

밀른 사망 후 그의 아내 토네는 6년 가량 영국에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만난 하코다데에는 부부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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