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김우중과 일본 나카우치 이사오의 닮은 점
한국 김우중과 일본 나카우치 이사오의 닮은 점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12.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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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다케우치 이사오 전 다이에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다케우치 이사오 전 다이에 회장

 

일본 유통업계엔 지금도 회자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30년 전쟁’이다. 유통그룹 다이에와 전기전자업체 파나소닉(마쓰시타전기의 후신)이 30년 동안 유통 가격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던 사건을 말한다.

다이에는 전후(戰後) 일본의 슈퍼마켓(GMS) 여명기를 시작으로 유통 혁명 시대를 연 기업이다. 다이에의 설립자 나카우치 이사오(中内 㓛:1922~2005)는 ‘유통 혁명아’로 불리는 인물. 그런 나카우치 이사오가 '30년 유통 전쟁’을 벌인 상대는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였다.나카우치 이사오는 왜 ‘경영의 신’으로 칭송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기나긴 전쟁을 했을까.

결론적으로 이 ‘유통 전쟁’은 다이에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다이에의 흥망성쇠는 한국의 ‘대우 신화’를 연상케 한다. 

1965년 마쓰시타전기와 다이에 ‘맞짱’

나카우치 이사오와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전쟁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은 다이에에겐 큰 도약의 해로, 수도권 진출과 다점포 전개를 목표로 ‘레인보우 작전’을 펴고 있었다. 당시 다이에는 마쓰시타전기 제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반면, 1964년은 마쓰시타전기(파나소닉)에겐 큰 고비의 해였다. 그해 금융긴축과 경기 후퇴로 마쓰시타전기의 판매회사들과 유통 대리점 상당수는 적자 경영에 빠졌다. 당시 마쓰시타전기는 특약점을 조직하고 가격 유지와 적정 이윤 확보를 통한 ‘공존 번영’을 표방하고 있었다. 즉 정가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유통 혁명과 가격 파괴를 기치로 내건 40대 초반의 ‘다이에 설립자’ 나카우치 이사오는 제품의 가격 결정권을 제조업체가 결정하는데 반대했다. 가격 결정권은 기업이 아닌 소비자가 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가 고수에 가격 파괴로 맞서

정가를 고수하려는 마쓰시타전기와 그 유통 구조를 깨려는 다이에. 결국 전쟁이었다. 선수를 친 쪽은 다이에였다. 운영중인 점포에서 마쓰시타전기 제품을 할인 허용 범위(15%) 이상인 20% 할인 판매를 실시해 버린 것. 마쓰시타전기는 발끈했고, 다이에에 출하정지 조치를 취했다. 이에 반발한 다이에는 마쓰시타전기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전쟁이 ‘확산일로’ 커진 건 1970년이다. 당시 다이에는 PB(Private Brand: 유통업체에서 직접 만든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가격 파괴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BUBU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13인치 컬러TV였다. 다이에는 제조업체의 가격보다 무려 절반이나 싼 5만9000엔에 이 TV를 판매하면서 마쓰시타전기를 자극했다.

보다 못한 마쓰시타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협상에 나선 건 1975년이다. 당시 80세의 고노스케는 50대 초반의 나카우치 이사오를 교토의 한 암자로 초대했다. 고노스케는 “더 이상 패도는 그만두고, 왕도를 걷는 게 좋지 않겠는가”(もう覇道はやめて、王道を歩むことを考えたらどうか)라는 말로 설득했다. 하지만 나카우치 이사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4년, 고노스케 사후 5년에 전쟁 끝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카우치 이사오와 마쓰시타 고노스케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이후 두 창업자의 톱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화해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89년(당시 95세)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도 몇 년이 더 흘렀다. 다이에와 마쓰시타전기 양사 사이에 거래가 재개된 것은 고노스케 사망 5년 후인 1994년이었다. 1965년 시작된 ‘유통 전쟁’이 1994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된 것이다. 일본 컨설팅그룹 ‘일본종합연구소’(The Japan Research Institute: JRI)는 이 전쟁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고도 성장기를 맞이하여 일본 유통 구조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일어난 다이에와 마쓰시타전기의 ‘30년 전쟁’은 정가 판매를 견지하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신념과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려는 나카우치 이사오의 신념이 부딪쳤다고 말할 수 있다.>

1975년 6월 편의점 로손 1호 탄생시켜

‘30년 전쟁’은 많은 화제를 낳았고, 나카우치 이사오는 ‘유통왕’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다시 1975년.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교토 회담을 가진 그해 6월, 나카우치 이사오는 미국 로손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오사카의 도요나카스(豊中)시에 편의점 로손 1호점을 론칭했다. 나카우치 이사오는 사세 확장을 발판 삼아 프로야구에도 진출했다. 1988년 퍼시픽리그의 난카이 호크스의 주식을 난카이전기철도로부터 사들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탄생시켰다.

버블 붕괴로 몰락…2015년 이온 그룹 손에

하지만 다이에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점포 운영 방식이 문제였던 것. 새로운 매장 진출을 하면서 땅을 샀고, 땅값 상승으로 담보 가치를 높였다. 다시 그 담보를 바탕으로 은행에서 돈을 차입, 새로운 땅을 사고 점포를 열었다. 이런 선순환이 결국은 악재가 되어 돌아왔다. 1990년대 후반, 버블 붕괴로 땅값 하락과 소비 하락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실적 악화를 불러왔던 것.

경영 부진에 빠진 다이에는 로손 등 우량 자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로손(이후 미쓰비시상사 자회사)과 다이에 호크스(이후 소프트뱅크에 인수) 등이 새 주인에게 넘어갔고, 2014년 다이에는 도쿄증시 1부에서 상장 폐지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1월, 다이에는 이온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는 종말을 맞았다.

창업 1세대에서 경영 문 닫고 별세 나이도 같아

한때 일본의 소매업을 주름잡던 다이에. 하지만 지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매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창업 1세대에서 흥망성쇠를 다했다는 점에서 나카우치 이사오는 한국의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과 닮았다. 그런 나카우치 이사오는 2005년 9월 9일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였다. 공교롭게도 12월 9일 타계한 김우중 전 회장 역시 83세(1936~2019년)였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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