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경제학...이민자들과 맞바꾼 '커피 콩'
커피의 경제학...이민자들과 맞바꾼 '커피 콩'
  • 에디터 김재현
  • 승인 2018.09.1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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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커피 소비 대국이다. 일본 근대 커피 역사는 이민사(移民史)와 맞물려 있다. 시간은 19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 4월 28일, 한 척의 배가 고베항을 떠났다. 배의 이름은 이민선(移民船) 카사토마루(笠戸丸)호, 목적지는 브라질이었다. 이 배에는 브라질로 가는 이민자 781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이민선에 몸을 싣게 됐을까.

당시 브라질은 전 세계 커피 생산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커피 재배에는 노예들이 동원됐다. 그런데 1888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커피 농장 노동력이 크게 부족하게 된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전세계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이민자들을 받아 들이기로 한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도 이해타산이 맞았다. 당시 일본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러일 전쟁(1904∼1905) 참전 군인들의 실업 문제도 심각했다.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브라질 이민이다. 그 중심에 미즈노 료(水野龍:1859~1951)라는 인물이다.

 

1만5000여 명 브라질 커피 농장으로 이민

그 대가로 브라질로부터 커피 무상으로 받아

미즈노는 황국 식민 합자회사(皇国殖民合資会社)와 해외흥업주식회사(海外興業株式会社)를 만들어 이민자들을 브라질로 보냈다. 제1회 이민 송출이 1908년 4월 28일 이뤄졌다. 이민단 단장인 미즈노는 이민자 781명을 이끌고 브라질 산토스항으로 향했다. 도착한 날은 출항 50일이 지난 6월 18일. 이후 10회에 걸쳐 1만5000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건너 브라질 땅을 밟았다. 이들이 투입된 일터는 커피농장이었다. 가혹한 노동 환경 탓에 제대로 정착한 사람은 4분의 1 정도였다고 한다.

브라질 정부는 일본 이민 정책에 보답하기 위해 미즈노에게 매년 커피 콩을 무상 공여하고 독점권을 줬다. 미즈노는 그 브라질 상파울로산 커피를 제공받아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 긴자에 ‘카페 파울리스타’(cafe paulista)를 오픈했다. 현존하는 도쿄의 가장 오래된 커피집이다. 1910년대 초의 상황이다. 카페는 장소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커피를 뜻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민자들과 커피 콩을 맞바꾼 ‘커피의 경제학’쯤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아쿠다가와도 브라질 커피 예찬

저렴한 가격 덕에 빠르게 대중에 확산

당시 다른 커피집의 커피 가격은 1잔에 30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울리스타는 5전으로, 상당히 저렴해 인기가 많았다. 주위 신문사의 언론인들과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같은 문인들이 이 가게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아쿠타가와는 원고를 보내는 등 만남의 장소로 파울리스타를 애용했다. 그는 자신의 책 ‘주유의 언어’(侏儒の言葉)에서 “오늘의 민중은 브라질 커피를 사랑합니다. 즉 브라질 커피는 선함에 틀림 없습니다.(今日の民衆はブラジル珈琲を愛しています。即ちブラジル珈琲は善いものに違いありません)라고 찬양했다.

부자의 고급 기호품이었던 커피는 그렇게 대중속으로 빠르게 파고 들었다. ‘카페 파울리스타’ 개업 초기, 여기서 일했던 일본 커피의 선구자 두 사람이 있다. ‘키(KEY)커피’ 창업자 시바타분지(柴田文次)와 ‘마츠야커피점’(松屋珈琲店) 창업자 쿠로야나기 마츠타로(畔柳松太郎)다.

시타바분지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 카페 파울리스타에서 일하던 당시 19세의 시바타가 요코하마에 커피집 ‘목촌상점’(木村商店)을 연 건 1920년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로 성장한 현재의 키(KEY) 커피주식회사의 전신이다. 목촌은 시바타의 구성(旧姓)이다. 시바타는 목촌가(木村家)와 인척 관계에 있던 시바타가(柴田家)에 사위양자(婿養子)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성을 얻게 되었다.

1928년 목촌상점은 목촌커피점(木村コーヒー店)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시바타에 의해 본격적인 커피 로스팅과 판매가 시작됐다. 현재의 브랜드에 KEY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왜일까. 그것은 시바타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커피는 일본 사람들의 새로운 문화와 시대를 여는 열쇠(키)가 될 것”(コーヒーは日本人の新しい文化と時代を開く鍵(キー)になる)이라고 확신했다. 마츠야커피점의 쿠로야나기는 시바타보다 2년 먼저인 1918년,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키커피와 마츠야커피, 두 회사의 커피 역사가 100년을 이어온 셈이다. 이렇게 일본 커피의 역사는 브라질 이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에디터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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