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마라
CEO 한줄 어록/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마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0.10.27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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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경력: 파나소닉(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평가: ‘경영의 신’ 별칭
▶태생: 오사카
▶생몰연도: 1894~1989년

10월 25일 타계한 삼성 이건희 회장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를 존경했다고 한다. 고노스케 회장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1951년(당시 56세) 어느 날, 고노스케는 미국 가전업계 시찰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앞으로는 디자인의 시대야”(これからはデザインの時代やで)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미국 방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한 고노스케는 곧바로 회사 내에 디자인(제품의장과) 부서를 만들었다. 당시 업계로서는 최초였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이건희의 공통점
이건희 회장은 1989년 기업 디자인 전문가 후쿠다 타미오(福田民郞)를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데려온 인물이다. 후쿠다는 1993년 이건희에게 “삼성의 디자인 수준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라며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을 발표하는 촉매제가 됐다. 

두 사례로 보면,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이건희 회장은 종전까지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던 제품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다니던 회사 ‘오사카전등’을 그만두고 독립해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설립한 건 1917년이다. 직원은 아내와 처남 이우에 도시오(井植歳男), 달랑 세 사람이었다. 이듬해인 1918년 3월 7일 오사카의 2층집을 월세로 빌려 ‘마쓰시타전기’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창업 90년을 맞은 2008년 회사명을 파나소닉으로 바꾼다.)

마쓰시타전기가 오사카에서 만든 개량형 전기 소켓이 히트치자 도쿄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마쓰시타는 처남을 도쿄에 상주시키면서 도쿄 시장 개척에 나섰다. 처남 이우에 도시오는 훗날 독립해 일본 가전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산요전기(三洋電機)를 창업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외동딸(幸子) 하나만 뒀다. 그래서 경영은 데릴사위 양자인 히라타 마사하루(平田正治:1912~2012)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히라타 마사하루는 양자가 되면서 ‘마쓰시타 마사하루’(松下正治)가 되었다. 

“사소한 것을 소홀 하지 말아야 성공한다"
이후 고노스케는 회장(1977년)으로 물러나면서 창업가의 일원으로 경영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다 1989년 4월 27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사위를 두고 “가능한 빨리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고노스케는 많은 경영서와 수많은 어록들을 남겼다. 1950년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의 미래를 간파했던 그다. 그 사소했던 디자인이 이젠 기술보다 우위에 있는 ‘디자인의 시대’가 되었다.

고노스케는 이와 관련해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인생(사업)을 큰 성공으로 이끈다”(些細なことをおろそかにしない心がけが人生を大きな成功へ導く)고 강조했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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