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㉜/ 전후 황금기10(도에이)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㉜/ 전후 황금기10(도에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0.06.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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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이(東映)의 간판스타였던 고 다카쿠라 켄.

도에이(東映)는 1949년 도쿄영화배급(東京映画配給)이란 이름의 배급전문 회사로 출발하여 만영(灣映)에서 활동하던 네기시 간이치(根岸寛一)가 합류, 도요코 영화(東横映画)와 오이즈미 영화(太泉映画) 2사를 흡수합병 하여 자체 제작 분야를 갖춰 1951년에 새로 설립하게 된 회사다. 후발회사인 셈인데 쇼치쿠나 닛카쓰 같은 회사 보다 먼저 전후 황금기에서 언급을 하는 이유는 당시 일본 영화계의 경향 때문이다.

도에이를 이끄는 세 주축은 만영(灣映) 출신과 전쟁 전 시대극(지다이게키, 時代劇)의 스타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로 추방당한 좌익 영화인들이었다. 도에이는 일종의 ‘묻지마 영입’이 주특기였는데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전쟁 전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을 썼다. 당시 시대극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영화제 통행권과 상업적 성공, 휴머니즘과 영웅의 등장 등 시대극의 장점은 많았고 특히 교토(京都)의 시대극 부활이라는 중요한 사명도 있었다.

도에이에 영입된 공산주의자 영화인들은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했고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장르영화에 녹여 내려는 노력을 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와키타 나가마사(川喜多長政), 네기시 간이치(根岸寛一), 기도 시로(城戸四郎) 등은 전쟁 협력자로서 한때 일본영화계에서 추방 당한 바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도에이는 앞서 기술했듯이 전쟁 전의 시대극 스타들을 기용하여 이미 ‘다라오 반나이(多羅尾伴内)’ 시리즈를 히트시키기도 했는데 ‘다라오’는 사립탐정의 이름이다. 일본 사극의 스타 가타오카 치에조(片岡千恵蔵)가 군정 시기에 사극을 금지 당하자 사립탐정이 되어 범죄를 해결하는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특히 1946~1948년까지 다이에이에서 4편, 1953~1960년까지 도에이에서 7편이 제작되며 크게 성공한 ‘다라오 반나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변장‘을 무기로 하여 여러 직업으로 변장해 범인들을 추적하는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변신의 귀재인 사설탐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도에이의 우치다 도무(內田吐夢) 감독과 그의 대표작 '후지산의 혈창'(血槍富士)과  '대보살 고개'(大菩薩峠).

도에이가 만든 시대극을 명품으로 승격시킨데에는 주로 우치다 도무(內田吐夢)의 공이 컸다. 1955년에 내놓은 복귀작 ‘후지산의 혈창(血槍富士, 1955)’은 우치다 도무의 두 번째 전성기를 여는 성공을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긴 여정에 오른 사무라이와 하인의 모험을 그린 사무라이 시대극이면서 아둔한 술꾼 사무라이와 약삭빠른 하인을 통해 봉건제에 대한 비판을 담아 장르를 혁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도에이의 작품 경향과 궁합이 잘 맞는 인물이었다. 우치다 도무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5부작 시리즈(1961-1965)라는 굵직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시리즈는 이나가키 히로시(稻垣浩)가 1955년 아카데미상 명예상을 수상한 이후로 일본 사극의 대명사로 손꼽혔으며, 영원한 무도인생의 스승이기도 했다. 사무라이 시대극인 ‘대보살 고개, 大菩薩峠, 1957~9) 3부작과 ‘죄와 벌’의 테마를 사회정치적으로 해석한 ‘기아해협’(飢餓海峡, 1965)이 대표작이었는데 전쟁 전과 전쟁 후의 시대극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그는 사실적으로 악(惡)을 묘사하고 인간의 차별과 업보, 비정함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도에이의 사극은 전쟁 전 만들어진 영화들과 달리 명랑하고 쾌활한 검극을 지향했는데 이러한 전략이 적중하여 시대극의 전후파를 출현시켰다. 도에이는 특히 나카무라 긴노스케(中村錦之助), 아즈마 지요노스케(東千代之介), 오카와 하시조(大川橋蔵) 등의 신인을 발굴하여 1930년대 닛카쓰를 능가하는 시대극 프로그램영화의 중심이 되었다. 가토 다이(加藤泰), 야마시타 고사쿠(山下耕作) 등을 발굴해 낸 것도 도에이인데, 야마시타 고사쿠의 경우는 훗날 붉은 모란(緋牡丹博徒, Red Peony Gambler)시리즈로 명성을 쌓게 된다.

‘붉은 모란’시리즈는 퓨전 시대극으로 액션, 범죄, 도박 등 다양한 요소를 담았다. 이들은 임협(任俠: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정의감) 영화의 전성기를 열기도 했는데 1963년부터 1973년까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위축 되었던 일본영화계에서 도에이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전통적 사극을 현대화 하면서 이 장르는 퓨전사극이면서 입협물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되는데 이 10년의 기간 동안 제작한 총 673편 중 235편이 임협 영화들이었을 정도다. 대중적 스타, 뛰어난 제작(기획)자와 뛰어난 감독 등 삼위일체로 이뤄 낸 성과였다.

이러한 시대극은 다시 야쿠자에이가(야쿠자 영화, ヤクザ映畵)와 닌자에이가(忍者映畵)라는 아류 장르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물론 야쿠자영화들의 경우에는 일본 마피아들의 보호를 받으며 일본 영화산업을 잠식시키기도 한다. 초기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구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마피아 영화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특히 홍콩 느와르 영화들은 이들 야쿠자에이가의 기본 개념에서 포맷을 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리닌죠’(義理人精)라는 개념으로 조직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과 야쿠자들의 인간적 성향간 대립을 의미하는 일종의 행동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의 원조는 도에이와 닛카쓰였는데 특히 도에이의 배우들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야쿠자 영화에는 실제로 영화로 새 인생을 살게 된 왕년의 야쿠자도 배출되는데 안도 노보루(安藤昇侠道伝)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거짓말처럼 유명해져서 안도 노보루의 실록영화가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1971년에는 ‘박도외인부대’(Gamblers in Okinawa, 博徒外人部隊)라는 영화에 출연도 하였다. 심지어 닛카츠 로망 포르노의 거장 다나카 노보루(田中登) 감독에 의해 ‘안도 노보루의 도주와 섹스의 기록’(安藤昇のわが逃亡とSEXの記録, Sex Life and Escape of the Gangster Ando Noboru, 1976)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야쿠자 에이가, 히스토리 오브 야쿠자 시네마’ (Yakuza Eiga, The history of yakuza cinema, Yakuza Eiga, une histoire du cinéma yakuza, 2009)가 만들어져 그때를 회상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이브 몽마외르(Yves Montmayeur)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안도 노보루는 물론 치바 신이치(千葉真一) 같은 야쿠자 에이가의 전설들을 고스란히 재조명했다. 치바 신이치는 훗날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Kill Bill, 2003)에도 등장할 정도였으니 ‘야쿠자 장르’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할리우드의 갱스터 영화와 서로 영감을 주거니 받거니 해 왔고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ビートたけし)에 의해 전승되어 발전되고 있다.

특히 도에이는 다카쿠라 켄(高倉健, 小田剛一, 일명 다카겐)이라는 독보적인 최고 스타가 존재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일본협객전 시리즈의 주인공답게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가장 남성적인 사나이로 명성을 누렸다. 그의 좌우명은 “가는 길을 정진하고 끝나면 후회 없다”였는데 시드니 폴락의 ‘야쿠자’(The Yakuza, 암흑가의 결투로 한국에는 알려짐, 1974)에서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과 열연을 펼쳤으며 후반 20분 동안의 결투장면이 인상적인 흥행영화였다.

그는 리들리 스캇(Ridley Scott)의 ‘블랙 레인’(Black rain, 1989)에도 출연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마이클 더글러스(Michel Douglas), 앤디 가르시아(Andy Garcia) 등과 열연을 펼쳤다. 야쿠자 두목을 압송해야 하지만 경시청의 비협조로 곤란을 겪는 미국인 형사를 돕는 오사카 경찰 강력 반장 ‘마스모도’역으로 나와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했다. 냉철한 그의 눈빛은 스크린을 압도했고 ‘도에이 하면 다카쿠라 겐’이었다. 야쿠자 영화는 종종 형사물로 포맷이 바뀌어 제작되기도 했는데 도에이가 특수촬영이 아닌 정극을 제작할 때는 이 장르들(시대극, 야쿠자 영화, 형사물)을 선호했다.

야쿠자 영화의 사촌격인 닌자 영화들은 정치적인 암시성을 지니고 16세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대항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는 특수요원들이 그 주인공인데 야마모토 사쓰오(山本薩夫) 감독의 ‘닌자’(A Band of Assassins, 忍びの者, 1962)가 그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마모토 사쓰오는 우리에게는 하얀거탑(白い巨塔, 1966)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런데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특별한 자기만의 ‘공식’을 창조해냈다.

그는 관객 친화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줄 알았다. 그의 공식이란 주인공이 점점 더 수세에 몰리다가 이제는 졌다 싶은 순간에 기가 막힌 ‘반전’을 이끌어 낸다. 서로를 경쟁시켜서 가장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닌자 궁극의 비법을 알아챈 것도 야마모토 사쓰오의 공로다. 오늘날까지 이 공식을 통해 수많은 아류작들을 생산해 낸다. 또한 닌자(忍者)의 초자연적인 모험으로 일본인들은 상상력을 키웠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은 곧 망가(Manga, マンガ, 漫畵)와 일본 애니메이션(Japaimation)으로 꾸준히 발전해 나간다.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시작이었다. <미국 LA=이훈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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