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링컨 '탕평인사'의 엉뚱한 결말
생생 미국 리포트/ 링컨 '탕평인사'의 엉뚱한 결말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0.09.02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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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흔히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Immigration Nation)로 알려져 있다. 이민자의 유형은 세월 따라 변해 왔다. 과거에는 주로 남들이 종사하기 싫어하는 업종에서 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면, 현재는 능력 있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민법이 수정되어 왔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출신 이민자들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이민법을 손질한 나라까지 나왔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적인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민을 선택한 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어 연령 제한이 생겨나기도 했다.

노예제는 ‘한시적 계약 노동자’ 제도의 변질
1865년 드디어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해방 되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것이다. 그러나 폐지만 되었을 뿐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미국의 노예제도는 ‘한시적 계약 노동자’(indentured servant)라는 제도가 변질된 것이다.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최초에는 백인들이 ‘한시적 계약 노동자’라는 명목으로 들어와 개척을 시작했으나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이를 메꾼 것이 흑인 노예들이었다. 물론 한시적 계약 노동자들은 계약 기간 이후에는 자유인이 될 수 있었고 사유재산도 인정되었다. 

미국 독립전쟁(American Revolution) 당시 약 5000명의 흑인들이 참여하였고 독립 이후 주로 미국의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해방된 ‘자유 흑인(Free Blacks)’들이 등장한다. 미국 내 자유주(州)와 노예주(州)가 이때 갈렸고 결국 남북전쟁(Civil war: 1861~1865)의 불씨가 되었다. 

1807년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들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승인한 바 있었지만 미국은 엄연한 합중국(United States)이었다. 즉 연방(중앙)정부가 있지만 주정부의 권한과 법률을 존중해주는 전통이 건국이념 중 핵심이었기 때문에 각 주(State)의 정책에 대한 중앙정부의 규제는 느슨했다. 

링컨 사후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의 '헛짓'
1865년 1월,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 수정헌법 제13조(13th Amendment)가 하원을 통과하고 그해 12월 발효되면서 미국에서 노예 제도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완전한 종결은 아니었다. 

전쟁의 막바지,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은 ‘탕평 인사’(포용 인사)를 실시했는데,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링컨은 1864년 재선 당시, 남부 연고의 민주당 출신이면서 노예제를 반대했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그런 존슨은 링컨 사후(1865년 4월 14일)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남부 연방 출신 주들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해 버린다. 

전쟁 후 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 때문에 흑인 노예들은 ‘해방’만 되었을 뿐 남부 연방 출신 주들에서는 여전히 차별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노동력 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1840년대 금광이 서부에서 발견되면서 골드 러쉬(Gold Rush)가 일어났고 이 때문에 여러 공공사업이 필요했는데 1865년 노예제도마저 폐지되고 말았으니 대륙횡단 철도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중국인들로 대체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중국인들은 흑인들과는 달랐다. 단순 노동 외에 쓸모가 없었고 노예근성이 몸에 밴 흑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심지어 백인들의 일자리까지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노예 12년’

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이 주는 교훈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은 바로 이 혼란기 미국을 보여주고 있다. 1840년대 노예 수입이 금지된 이후 자유주(州)와 노예주(州)의 모순을 꼬집은 영화로,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에서 노예로 팔려가 12년 동안 사투를 벌인다. 

당시 미연방으로 새로 편입되는 주가 늘어나고 영토가 확장되면서 노동력 부족이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력이 부족한 노예주는 우선 급한 대로 자유인이었던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납치해 와 강제노역을 시켰다. 각 주별 상황으로 보면 ▷농업(면화, 담배 등) 중심의 남부지역 ▷비농업 중심의 북부지역 ▷건설 경기가 붐을 이뤘던 서부(이들 역시 자유주 전통) 지역은 각각 노동의 수요가 달랐다. 

미국은 독립 이전부터 흑인 노예들이 빈번하게 도망가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도주 노예법’(Fugitive slave laws)은 이 때문에 생겨났다. 남북전쟁 이전에 이 법은 주로 자유주와 노예주 간의 ‘타협점’ 같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이 법은 1864년 6월 28일이 되어서 폐지되고, 최초로 무효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자유주였던 서부의 주들이다. 이들에게 흑인 노예는 다른 주(대서양 연안)들의 이야기였고 태평양 연안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중국인들의 유입이 많았다. 이 때문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망을 가기는커녕 오히려 계약 기간을 채우고 서서히 주류사회의 일자리들마저 잠식해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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