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두 산악인이 남긴 삶의 지혜
일본의 두 산악인이 남긴 삶의 지혜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3.01.02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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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미 최고봉 매킨리(McKinley)로 불렸던 디날리(Denali).


“걸을 수 있는 동안 걷고 싶다”던 다베이 준코
“인생은 ‘8부 능선’부터가 재미있다”(人生は8合目からがおもしろい)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와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달성한 일본 산악인 다베이 준코(田部井淳子:1939~2016)가 남긴 말이다.(책 제목이기도 하다) 1975년 5월 16일, 35세의 그녀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이뤄냈다.  

후쿠시마현 출신의 다베이 준코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지점인 8부 능선부터 제대로 등산(삶)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철녀였던 그녀였지만 몸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2007년 여름이었다. 가슴에 뭔가가 잡혔다. 곧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베이 준코는 전이, 부작용 등 5년 간의 암 투병 끝에 2016년 10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생전 “걸을 수 있는 동안 걷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1분1초라도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歩けるうちは歩きたい。生きているうちは、1分1秒でも楽しく、やりたいことをやって生き抜けたい)고 말했다.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와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달성한 일본 산악인 다베이 준코(왼쪽). 전설적인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는 1984년 북미 매킨리 동계 단독 등정 성공을 달성한 후 하산 중에 실종됐다. 

매킨리에서 생일 다음날 실종된 우에무라 나오미
다베이 준코에 앞서 1970년 5월 11일 일본산악회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마츠우라 테루오(松浦輝夫)와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가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1차 공격조로 선발된 두 사람은 이날 아침 8513미터 지점의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우에무라가 앞서 나가면서 멀리서 정상을 바라봤다. 드디어 정상이 보였다. 우에무라는 뒤를 돌아보며 선배인 마츠우라가 먼저 등정하도록 권했다. 이에 마츠우라는 “아니야, 네가 먼저 가라”고 신호했다. 하지만 우에무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상에 올랐다. 오전 9시 10분이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모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메이지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세상 탐험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등반 그해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정(1970년) 기록을 세웠다. 몽블랑(유럽), 킬리만자로(아프리카), 아콩가구아(남미) 에베레스트(유라시아), 맥킨리(북미)순이었다. 

1970년대는 그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1971년 일본 열도 3,000km를 걸어서 종단했다. 홋카이도 왓카나이에서 규슈 가고시마까지 51일 만에 돌파했다. 1974년 12월부터 1976년 5월까지 1년 반에 걸쳐 개 썰매로 북극권 1만2,000km를 탐험했다. 1978년엔 개 썰매로 단독 북극 도달(세계 최초), 그린랜드 3000㎞ 종단(세계 최초)을 이뤄냈다. 

그런 우에무라의 모험은 1984년 멈췄다. 그해 2월 12일은 그의 43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세계 최초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 동계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2월 13일 텔레비전 취재 팀과의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실종이었다. 무선 교신 당시, 우에무라는 6000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을 찾기 위해 모교 메이지대학 산악부 OB들이 나섰지만 허사였다. 메이지대학은 2차 구조대를 파견해 매킨리 정상에 우에무라가 꽂은 일장기를 회수했다. 

우에무라는 생전 “모험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冒険とは生きて帰ること)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또 “나는 의지가 약하다.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 자신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몰아 넣는다”(私は意志が弱い。その弱さを克服するには、自分を引き下がれない状況に追い込むことだ)고도 했다. 산악인을 넘어 탐험가로 살다간 그의 삶을 대변하는 말이다. 

우에무라 나오미의 생애는 ‘우에무라 이야기’(植村直己物語)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에디터 이재우>

☞매킨리에 대한 Tip

1977년 9월 15일, 한국의 고상돈(1948∼1979)은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그는 2년 뒤인 1979년 5월 19일 매킨리를 등정하고 하산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고상돈과 비슷한 이력을 가진 일본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겨울철에 매킨리를 단독 등정했다가 실종됐다. 

매킨리(McKinley)는 미국 알래스카 주 남부의 알래스카 산맥 중앙부에 있는 산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원래는 디날리(Denali)라 불리던 산이었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언어로 ‘위대함’이라는 뜻. 

디날리는 엉뚱하게 매킨리로 불리게 됐다. 한 금광 채굴업자 탓이다. 1896년 윌리엄 매킨리가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가 되자 이 채굴업자는 지지의 표시로 디날리를 매킨리로 바꿔 불렀다. 산이 본래의 이름을 찾게 된 건 원주민들의 요청 때문이다. 2015년 8월 알래스카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산 이름을 다시 ‘디날리’로 공식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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